2011. 3. 27.
이른 아침, 함지산에서 봄을 만났다. 땅에는 서릿발이 돋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노란꽃을 피운 생강나무가 팔공산에 기대어 객을 반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만남과 시작을 의미하지만, 봄은 너무나 잠깐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래서일까. 옛 선인들도 목메어 봄을 기다렸음이니
그 대표적인 시인이 정지상(鄭知尙, ?~1135)이다.
송인(送人)2
ㅡ 鄭知尙 ㅡ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孤夢月明時 (고몽월명시)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뜰 앞에 잎 하나 떨어지고
마루 밑에 온갖 벌레 슬피우는데
홀홀히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유유히 가면서 어디로 향하는가?
한 조각 마음은 산이 끝난 곳으로
외로운 꿈은 달 밝을 때에나
남포에 봄 물결 푸를 때면
그대는 훗날의 기약을 잊지 말게나.
국문학자들에 의하면 위의 시가 천년을 두고 품격있고 아름다운 시로 인정받고 있는
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작품에 쓰인 운(韻)을 보면 '悲', '之', '時', '期', 가
모두 평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支'자 계열에 들어가는 글자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2, 4 , 6, 8 구의 끝자는 운을 맞추어야 한다는 한시의 구성원리를 철저히 지킨 작품
이라는 평가다.
또한 위의 시는 기승전구도 모두 대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어서 첫구 나뭇잎
지는 것과 벌레가 우는 소리는 시각과 청각의 대구를 이루고, 다음은 남음과 떠남이 대구
를 이루고, 마지막 전구는 하늘과 땅, 꿈속과 현실이 서로 맞짝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한시의 오묘함
정지상의 '送人'을 '천년의 사랑'으로 고쳐 부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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