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우리말과 옛글

변안열의 '불굴가' 외 (고려말 시조)

산사랑방 2011. 4. 27. 17:49

 

 

우탁(1262-1342) '탄로가嘆老歌'

 

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지근듯 빌어다가 불리고자 머리 위에

귀 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니,

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조년(1269-1343)의 多情歌(다정가)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데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이루어 하노라.

 

 

이존오(1341-1371)

 

구름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 있어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여 광명한 날빛을 가려가며 덮나니.

 

 

[감상]

귀밑의 서리라 한 수염일랑 봄바람을 빌어다가 녹이고,

늙어가는 길은 가시로 막고, 백발은 막대로 쳐서라도 가는 세월을

잡아두고 싶다는 나이듬을 한탄하는 우탁의 탄로가,

 

배꽃에 달 밝고, 은하수까지 기울어 조용하기만 하지만

두견새와 함께 잠 못 드는 심경을 토로한 이조년의 다정가, 비록

多情이라 표현하였지만 그 속에 담긴 왕에 대한 충성심,

 

이존오의

광명한 햇빛을 구태여 가리는 구름에 대한 원망,

 

그러나

새 왕조가 탄생되는 단계, 격변기에 이르러서의 시조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바로 최영과 변안열, 정몽주로 이어

지는 사상적 자아와 행동과의 일치성이다.

 

 

 

<영축산 극락암의 극락영지와 홍교>

 

 

최 영(1316-1388)

 

綠駬霜蹄(녹이상제)를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씻어타고

龍泉雪鍔(용천설악)을 들게 갈아 둘러메고

장부의 爲國忠節(위국충절)을 세워볼까 하노라.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하다 처형된 무인의 마지막 자존심, 최영 장군의 시조는 어찌

보면 용천보검의 칼날보다도 더 예리하고 날카롭다.

 

[풀이]

녹이綠駬 :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주나라 목왕의 준마,

상제霜蹄 : 굽에 흰털이 나는 명마

용천龍泉 : 보검의 이름, 설악雪鍔 : 날카로운 칼날

 

 

이 색(1328-1396)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러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사대부의 사상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이색의 작품은

'석양에 홀로 서서...' 라며 새 왕조 창건에 선뜻 동조하지

못한 복잡한 심경을 잘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1389년 10월 11일 (공양왕 원년), 정몽주와 변안렬은 이성계의 생일날에

초대되었다. 이자리에서 이방원은 何如歌로 "우리 함 잘 살아보세." 하며

두 사람의 마음을 잡아보고자 하였으나 변안열은 '불굴가'로,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하며 자아와 행동의 일치를 보였다.

 

 

이방원(1367-1422)의 何如歌(하여가)

 

이런들 어떠 하며 저런들 어떠 하리

萬壽山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 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변안열(1334-1390) 不屈歌(불굴가)

 

가슴팍 구멍 뚫어 동아줄로 무주 꿰어

앞 뒤로 끌고 당겨 감켜지고 쏠릴망정

님 향한 굳은 뜻을 내 뉘라고 굽히랴.

 

 

정몽주(1337-1392)의 丹心歌(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 줄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