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리산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 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천왕봉-써리봉-새재)

산사랑방 2008. 12. 24. 11:54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 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천왕봉-중봉-써리봉-새재)



산행지 : 지리산 종주 (화엄사-천왕봉-중봉-써리봉-새재마을)

산행일 : 2005. 09. 11. (이슬비 내리는 일요일)

산행자 : 산사랑방 홀로

교   통 : 대중교통(기차-택시)

대구역(21:00) - 대전역 도착(22:57) 8,800원

대전역에서 ⇒ 서대전역 택시3,200원 소요시간 15분

서대전(23:42) - 구례구역도착(02:22) 11,200원

택시 ⇒ 화엄사들머리 02:40도착, 택시비 10,000원(합승)

귀가교통 : 새재마을까지 차량지원


02:45 화엄사 -산행시작-

04:00 국수등(화엄사3.5km 노고단3.5km)

04:35 집선대

05:15 무넹기

05:30 노고단대피소

07:00-07:10 임걸령샘 <식수보충>

07:40 노루목

08:00 삼도봉

08:20 화개재

09:00 토끼봉

10:15-10:40 연하천 산장 <식수보충>

11:35 형제봉

12:00-12:10 벽소령대피소

13:10 선비샘

14:00 칠선봉

14:30 영신봉

15:00 세석산장

15:17 촛대봉

16:12 연하봉

16:30-16:35 장터목산장 <식수보충>

17:30-17:40 천왕봉

18:05 중봉

18:45 써리봉

19:30 치밭목대피소

20:30 대원사갈림길(새재3km. 유평리, 대원사)

21:30 새재마을 -산행종료-


총 산행시간 : 18시간 45분(휴식포함)

총 산행거리 : 41.3km(화엄사→32.5km←천왕봉→8.8km←새재) 현지 이정표기준




화엄사코스 그 세 번째의 꿈


토요일 저녁,

집에서 꼭지(아내)와 주거니 받거니 “산사춘” 한 병을 비우고 나니 약간 취기가 돈다.

갑자기 지리가 눈에 아른거려서 견딜 수가 없다.

꼭지에게 넌지시 운을 띠운다.

“내 지리산 갔다 올란다.”

이 말을 던지고 나면 다음에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꼭지는 이미 알것이다.


"지금~~~?”


예상은 하고 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꼭지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술이 조금 과했나?

산사춘 한 병에 지리종주를 시작하다니...


나에게 화대종주는 작년부터 화엄사에서 두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다.

첫 번째는 야간산행에 묶여 세석에서 쫓겨났었고, 올해는 휴가를 이용해 2박3일 가족 모두 데리고 느긋하게 종주를 시도 했지만

태풍 때문에 벽소령에서 쫓겨나고, 이래저래 지리의 화엄사코스는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종주보다는 발길 닿는 데까지만 가기로 생각을 굳힌다.


“비록 오늘의 목표는 대원사지만 발길 닿는 데까지만 가자.”


혼자만의 독백, 뱀사골도 좋고 지난번처럼 벽소령에서 음정으로의 탈출도 좋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데나 탈출하는 거다. 단지 지난번처럼 반야봉은 오르지 않고 지나치기로 했다.

더이상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오를까 말까 갈등은 하지 않을 것이다.






화엄사에서 대원사 종주, “나에겐 정녕 이루지 못할 꿈이었던가?”



이번엔 꼭지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간단히 배낭을 꾸린다.

화엄사 그 숙제의 어려움, 꼭지에게도 아쉬움의 난제(?)로 남았는가 보다. 적극 만류하지 않는다.

준비물이래야 언제나처럼 간단하다. 우의, 자켓, 스틱, 랜턴2개, 만약을 대비한 위생함 그게 전부다.

먹을 것은 과일 몇 개와 얼음물 2병(1500리터),초코파이 몇 개, 김밥 몇 줄이면 충분하다.


9시 열차시간이 급해 택시를 타고 대구역으로 향한다. 김밥 살 시간이 없다.

비몽사몽 술기운에 의지해 한 시간여 잠자고 일어나니 벌써 대전역이다.

대전역앞 24시 김밥집에 들러서 김밥3줄을 사고 서대전역을 향해 택시를 탔다.

구례구역을 향한 익숙한 네 번째 길이다.



이슬비 내리는 구례구역


대구에서 대전을 거쳐 이렇게 지리산 가는 길은 <산그림자>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종주를 위해 토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그분이 생간나기도 한다.

이 길로 해서 두 부부가 처음으로 만나 지리산 서북능선을 산행하지 않았던가.


늘 지리에 마음을 두고 끝없이 지리를 사랑하시는 분, 설악에서 만났을 때는 사진 한 장도 남기길 거부했다.

산에서는 발자국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이 지금도 뇌리를 스친다.


오늘만큼은 종주를 해야지. 벌써 마음이 변했나? 발길 닿는 데까지만 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술도 깨고 머릿속이 영 말똥말똥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한 시간여 억지로 눈을 붙이고 구례구역에 내리니

“아니 이럴 수가.”

생각지도 않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진정 화엄사코스는 나에게 하나의 꿈으로 끝나는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없었는데...”

투털대며 구례구역사를 빠져나오니 지난번에 섬진강 재첩국으로 흥청대던 식당들은 모두 문이 굳게 잠겨있다.

꼭지가 새벽에 섬진강 재첩국 한 그릇 먹고 가라 했지만 어쩌랴 그냥 간다.


역앞 택시는 다행히 합승객이 있어 화엄사까지 10,000원에 태워주겠단다.

작년에 메타를 꺾으니 14,700원이 나왔었다.

돈 몇 푼이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도 한다.



성역의 화엄사를 도둑고양이처럼 지나며


산행들머리인 막다른 다리 입구에 나를 내려주고 택시는 횡하니 사라진다.

계곡의 커다란 물소리가 제일먼저 귓전을 때린다. 꾸지람인가. 택시의 불빛이 사라지니 갑자가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에워싼다.

도둑고양이처럼 이렇게 야간에 화엄사를 지나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세 번이나 지난다.

그 죄책감에 숨을 죽이고 반듯하게 깔린 돌길로 조용히 초입에 이른다.

 



 

다행이 이슬비는 그치고 키 큰 대나무 숲 사이로 비에 젖은 댓잎은 불빛에 반짝거리며 더욱 혼자만의 외로움에 떨게 한다.

대여섯 명의 산님들이 지나간다. 반갑다. 하지만 인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 분들은 쏜살같이 사라진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의 반 틈 거리인 국수등(노고단 3.5km지점)에 올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코재까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멧돼지가 울부짓는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이건 분명 고라니 울음소리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귓전을 때린다.


집선대(04:35)에 올라서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당연하다. 별 준비없이 술기운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종주였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꾸짖음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뿐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안개를 에워싸고 있어서 더욱 숨이 막힌다.


오름에는 자신이 있지만 그래도 코재는 너무 힘들다. "코재"는 코가 땅에 붙도록 가파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당연 힘들 수 밖에없다. 야간이라 힘들고 혼자라 외로워서 더 힘들다.

눈썹바위를 지나 10분여 마지막 힘까지 쏟아 부으니 무넹기다.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임도길과 만났으니 종주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오름과 내림이 연속되는 지리의 주능선을 걸으면 되니까 말이다.


노고단에서 일출을 기대했지만 변덕스런 지리산의 날씨에 그러한 행운은 접어야 했다.

임걸령샘터까지 걸음을 빨리한다. 운무 속에 잠긴 돼지평전, 지천에 피어난 하얀 구절초와 보라색의 산오이풀이 등로에서 반긴다.

첫 번째 휴식처 임걸령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망중한을 달랜다.


노루목과 화개재, 삼도봉, 토끼봉까지는 별 힘듦없이 진행한다.

토끼봉은 원래 힘든 구간이지만 이미 단단히 각오를 한터라 별로 힘든 줄 몰랐다.

우리의 인생사도 그럴 것이다. 각오하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으니 말이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임걸령 샘터

 




노루목에서 오늘은 반야봉을 오를까 말까 망설임 없이 바로 지나친다.





지리산에서 가장 가을답게 피어난 꽃, 구절초는 하루종일 산꾼에게 꽃길을 열어주며 동무가 되어주는 친구다. 




 

운무속의 삼도봉


 



화개재가는 길의 550계단




 


곰돌이가 지키고 있는 토끼없는 토끼봉

                                                          



연하천의 컵라면


드디어 두 번째 휴식처, 운무에 쌓인 연하천산장이다.

긴 머리 산장지기에게 컵라면을 하나 사서 김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굻게 쏟아진다.

또 우중산행이 되려나?? 약간의 불안이 앞서지만 이젠 덤덤할 뿐이다.


비를 피해 취사장으로 들어가 컵라면과 김밥 한 줄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오늘 또 연하천 컵라면의 끈기를 시험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나중에 알았지만 효과가 있었다.

그 후로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으니 말이다. 출발하려고 하니 비가 더욱 굵게 내린다.

우의를 꺼내 입고 귀룽나무에 물든 빨간 단풍에 눈길을 주며 길을 재촉한다.

벽소령에 도착해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야생화 꽃밭에 둘러쌓인 벽소령산장

 


지금이 12시, 비를 피해 잠간 휴식을 취하며 하산시간을 가늠해 본다.

이곳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부지런히 걸어도 3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2시간,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1시간, 열심히 걸어도 천왕봉에 도착하면 저녁 6시가 될 것이다.


중산리로 하산 한다 해도 저녁 8시 반쯤 도착할 것인데 그때는 진주 가는 7시 막차도 없을 것이다.

이왕 그렇다면 대원사까지 가는 거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혼자에게 반문하며 이젠 마음을 다잡고 확실한 결심을 한다.



꼭지(아내)의 고마움


꼭지에게 전화를 건다.

두 번이나 대원사를 갔고 지난번 새재에서 산행을 한 적이 있어서 대원사를 지나 새재로 올라오는 길은 꼭지도 알 것이다.

'삐리릭!'

깊은 계곡과 달라서 휴대폰 벨소리가 경쾌하다. 지리산 주능선에서는 어느 한 곳 터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꼭지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걱정 말고 천천히 산행을 하란다.


이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 있으랴. 갑자기 적토마를 탄 듯 힘이 솟는다.

벽소령을 지나니 지리산에도 이런 길이 있나 할 정도로 모처럼 좋은 산죽길이 이어진다.

선비샘을 지나면서부터 칠선봉까지 계속 힘든 길, 오다말다를 반복하던 이슬비도 이젠 완전히 그치고

칠선봉주위로 서서히 하늘이 맑아져 온다. 햇살이 안개를 밀어내며 등로를 비춘다.

“아름답다!”

그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한 마디 뿐이다.

 



물세레를 퍼붓는 산죽길, 그래도 좋아~~

 




칠선봉의 깊은 골

  






                                                              

영신봉 주변의 가을 빛




지금부터 힘든 만큼 지리의 비경이 천왕봉까지 이어질 것이다.

힘을 내자.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이미 영신봉사면엔 단풍이 물들고 있다.

앞으로 1~2주후면 주능선에는 단풍이 들겠지만 대부분 잎은 말라 떨어질 것이다.


다리는 천근만근 몸은 힘들어도 칠선봉의 깊은 골,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그 비경에 넔을 잃는다.

이젠 고통도 행복이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3시간여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나간다.

 




등산로는 온통 꽃길이다. 가을은 지리산에 있고 지리산은 가을빛에 젖었다.



  

하얀 운무속에 잠겨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세석산장  




“지리산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세석에서 천왕봉구간)


야생화 천국 세석평전을 지나 촛대봉을 오르며 또 감탄하다. 구절초,산오이풀,쑥부쟁이,흰진범,물봉선,투구꽃...

그야말로 야생화천국이다. 그 아름다움은 연하봉까지 환상적인 꽃길로 이어진다.

지금것 힘듦이 다 잊혀져 가는 순간이다. 가을은 지리산에 있고 지리산은 가을에 묻혔으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는 자 어찌 눈이 시리지 않으랴.

 





 

세석평전과 촛대봉  


 





연하봉 가는 길, 지리 10경의 하나인 '연하선경'                                                          

 


밀짚모자를 쓴 한 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화폭에 스케치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공단직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리산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다. 카메라를 맨 출사꾼은 보았어도 연하봉에서 스케치로 지리의 속살을 담는 여인이 있다니...

그 밀짚모자사이로 가려진 얼굴이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그 화폭에 비치는 지리의 모습은 또 어떠한 모습일까?

무척 궁금해 들여다보고 싶지만 행여나 방해가 될까 조용히 지나간다.


 



연하봉 능선에서 밀짚모자를 쓴 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지리산을 스케치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공단직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하봉에서 장터목 가는 길  





여름 성수기와는 대조적인 조용한 장터목산장  

                                  



여름 성수기에는 시장 통처럼 북적대던 장터목, 오늘은 몇 몇의 산님들만이 옹기종기 앉아 예전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샘터에 내려가 마지막으로 물을 충분히 보충한다. 장터목에서 제석봉 오르는 초입부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그냥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제석봉을 오르면서 제석봉의 고사목과 사면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 그 황홀한 풍경에 또 넋을 잃는다.

석양이 물드는 제석봉에 앉아 오이와 김밥 몇 개로 속을 달래며 천왕을 향한 걸음을 뗀다.

 




제석봉에서 장터목을 향해 뒤돌아본 풍경 







제석봉의 하늘과 풍경들... 하얀 구절초와 산오이풀이 지리산의 가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내려오는 산님들이 인사를 건넨다.

“참 좋은 시간에 오르시는군요?” 

“감사 합니다.”

일출이상으로 일몰이 아름답던 천왕봉에 오를 수 있는 황금시간의 티켓 한 장, 아마 하루 중에서

석양이 물드는 바로 지금 이순간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천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얀 운무와 더불어 가을빛이 스며드는 지리산의 계곡은 언제 보아도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구름위에 우뚯 솟아있는 반야봉







산 산 산... 그 위에 우뚝 선 천왕의 모습


석양사이로 서서히 운무가 걷힌다.

중산리는 지금도 운무속의 궁전이지만 멀리 반야는 구름위에 당당히 서 있다.

맑은 하늘사이로 지리산의 아름다운 비경들이 운무 속을 뚫고 하늘에 펼쳐진다.

반야를 향한 주능선엔 파도처럼 운무가 넘나든다.


감격이 복받친다. 지금까지의 모든 힘듦과 고통이 값진 보석처럼 다가온다.

한동안 정상석을 포옹하며 그 따뜻한 기운에 몸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천왕봉에 남은 사람은 모두 네 사람뿐,

꿈결같은 달콤한 시간들이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조용히 흘러간다.

 




칠선계곡과 초암능선의 조망




노고단에서 부터 걸어온 지리산 주 능선의 조망



 

중봉에서 바라보는 동부능선


천왕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비경을 놓치고 싶지 않지만 하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중봉을 향한 길은 올해 1월1일, 서리꽃(상고대)이 하얗게 핀 중봉을 오를 때가 생각난다.

그 감동에 지금도 중봉에는 애정이 가는가 보다. 그때 서리꽃이 하얗게 맺혀있던 구상나무는 진녹색으로 물들어있고

철쭉나무는 이미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여 가을색이 완연하다.


하산로가 여의치 않아 중봉을 찾는 이가 적지만 중봉에 서서 바라보는 동부능선은 너무 환상적이랄까?

하여튼 여기서 동부능선과 웅석봉에서 이어지는 달뜨기 능선을 바라보면

누구든지 자신도 모르게 태극종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중봉을 오르며 뒤돌아본 천왕봉      


                        



중봉 (1674m)  

                                                                         




가야할 우측의 써리봉과 좌측으로 하얀 점으로 보이는 치밭목산장  

                      


 


자신과의 싸움, 중봉에서 새재까지


하봉으로 출입금지라 막아놓은 팬스를 보며

저 넘어 헬기장을 지나 비경의 조개골로 하산해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지리산에서 야간에 비 지정등산로로 하산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의 길이 될 것이다.

잠시의 엉뚱한 생각을 접고 우측으로 써리봉을 향해 내려선다.


끝 보이지 않는 깊은 골자기, 저 깊은 계곡을 어둠속에서 잘 내려갈 수 있을까?

이 시간엔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이라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제는 모든 상념을 접는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해가 지려면 아직 30여분이나 남았는데도 써리봉에는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더욱 체력이 떨어지니 써리봉에서 치밭목대피소 가는 길도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하산길이지만 40여분 땀깨나 흘려야 한다.


 


 

써리봉 (1602m), 써리봉에서 대원사까지 9.5km, 하산길이지만 오름과 내림이 심해 3시간 가까이 걸린다. 

                                                                   


랜턴을 꺼내 점검하고 물기에 젖은 돌들을 조심조심 밟으며 내려선다.

이미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찍어 엉덩이가 얼얼한 상태다. 체력이 떨어져 다리에 힘이 없으니

중심을 잃기가 쉽고 그래서 쉽게 넘어지고 잘못하다간 발목을 접질린다. 꼭지대신 든든한 해병대가 오기로 했으니

다른 걱정은 없다. 어쨌든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온 신경을 하산로에만 집중한다.


하늘에 걸려있는 또렷한 반달은 휘영청 밝기만 한데 깊은 숲속이라 랜턴불빛을 끄면

먹물 속에 잠긴 듯 산야는 어둠기만 하다. 좁은(?)하늘 공간에서 간혹 별들이 초롱초롱 눈길을 보내주며 위안을 준다.

드디어 치밭목 대피소의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하지만 날 밝을 때 같으면 느긋하게 대피소벤치에 앉아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고 가겠는데 오늘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잠시 쉬지도 못하고 조용히 대피소를 통과한다.

야간산행? 대장님의 무서운 호통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걸음아 날 살려라!”


조금만 내려서면 새재 갈림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계곡 길을 뒤뚱뒤뚱 아무리 내려서도 갈림길이 없다.

혹시 어두워 이정표를 보지 못했나? 엉뚱한 불안이 엄습한다.


500m구간마다 설치돼 있다는 119구조목이 보이는 것을 보니 길은 맞는 것 같지만 웬지 불안하다. 

또 후회가 앞선다. 왜 이런 고통을 자초해서 하는지 두 번 다시 이렇게 무리한 종주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물론 그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가 없다.

지리산은 늘 그러하듯이 오라하지 않고 가라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미치면 가고싶은 곳이 지리산이다.




 

치밭목대피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새재갈림길 이정표 


                  

대피소에서 계곡길을 1시간이나 내려서서야 반가운 이정표를 만났다.

<새재3.0km 대원사 5.3km>

에구 이런, 아직도 새재까지 3km가 남았다. 체력은 이미 바닥나서 걷는 것 자체가 죽을 맛이다.

하산이 걱정이 되는지 꼭지도 여러 번 전화가 온다.


기다리는 해병대를 생각하니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비에 젖은 좁은 산죽길이 통로를 열어준다. 지금은 그 좋아하는 산죽도 청량제가 되지 못한다.

능선을 넘고 계곡길로 이어지다 또 산죽길로 다시 능선을 넘고 계곡길로...

그러기를 여러번, 서서히 길이 완만해지고 들깨밭이 보이는 것을 보니 새재마을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깻잎을 한 움큼 따서 코에 갖다 댄다. 그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진동한다. 내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하늘아래 첫 동네 새새마을의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드디어 낯익은 철다리가 반겨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에 젖은 산죽 길  

                                             



 

새재마을의 계곡 철다리

 


"다 왔구나!"


철다리를 건너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끝없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던 하산 길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해병대와의 조우, 꿈에 그리던 화엄사에서의 종주,


그 대미의 흥분을 해병대와 나눌 시간도 없이 대구로 향한다.

너무나 피곤했다.

그러나 그 피곤함을 털어내기도 전에 지리의 아름다움이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


"다시는 지리종주 하나봐라."

맹세했지만, 돌아서면 늘 지리산은 나를 유혹한다.

"너, 언제 또 올거냐며~~."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