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에 취한 지리산 가을종주 (성삼재-천왕봉-순두류-중산리)
▲촛대봉에 흐르는 새벽빛
▲중산리 하산 길의 단풍터널
산행일 : 2006. 10. 7 - 10. 8 (1박 2일)
산행지 : 지리산 (성삼재-천왕봉-순두류-중산리)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대중교통
산행일정 및 시간 정리
2006. 10. 07.(토)맑음
04:10 성삼재매표소 -산행시작-
07:00-07:20 임걸령샘터
07:50 노루목
08:30 삼도봉
09:40 토끼봉
11:10-12:00 연하천대피소
12:55 형제바위
13:50 벽소령산장
15:10-15:30 선비샘
16:30 칠선봉
17:30 세석산장 1박
2006. 10. 08.(일) 맑음
05:40 세석산장 출발
06:20 촛대봉 일출
08:25-09:25 장터목 아침식사(식은밥으로 우거지김치국밥)
10:40 천왕봉
11:50-12:00 법계사(로타리 산장)
13:00-13:30 순두류 아지트(마야계곡 초입)
14:00 순두류자연학습원 입구
14:35 중산리 매표소
15:00 중산리 버스정류장 -산행끝-
첫째 날 산행시간 : 13시간 20분 / 23km
둘째 날 산행시간 : 9시간 20분 / 13km
총 산행시간 : 22시간 40분 / 36km
대중교통 형황 (요금은 2인기준)
10/6 21:00 대구역 출발(17,600원)
23:00 대전역 도착
23:20 서대전역 도착(택시로 이동 3,500원)
23:42 서대전역 출발(22,400원)
10/7 02:17 구례구역 도착
02:50 성삼재(택시합승 15,000원)
10/8 15:05 중산리 출발(9,400원)
17:20 시외버스 진주출발(15,400원)
19:30 서부정류장 도착 집까지 택시 (5,800원)
총 교통비 : 89,100원
산장 숙박비 : 14,000원 모포5장 5,000원
산행전 이야기
6대종손의 맏며느리인 아내(꼭지)와 추석연휴에 지리산종주를 하러갑니다.
그것도 1박 2일 일정으로 간다는 것은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고
그랬다간 꼭지는 당장 보따리사서 친정으로 쫓겨났을 겁니다.
그동안 명절에 제대로 한 번 쉬지를 못한 꼭지를 위해 한 달 전에
열차표를 예약하고 또 산장예약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나 꼭지는
“명절준비 한다고 힘들어 죽겠는데 지리산종주까지 시킨다고??”
아예 잡아먹으라는 식으로 투덜댑니다.
그러면서도 따라나서겠다는 아리송한(?) 심보는 여전합니다.
이제 그 모든 일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가을날에 더욱 아름다운 지리의 품에 듭니다.
더구나 7일은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이라 더욱 의미 있는 지리종주가 될 것 같고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온 꼭지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대구에서 지리산까지 거꾸로 대전으로 돌아가는 그 멀고도 먼 길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에 겨운 투정일 뿐입니다.
성삼재에서 세석까지 ( 23km / 10-7 04:10~17:30 )
구례구역에 내리니 서늘한 새벽바람이 맨 먼저 마중을 옵니다.
바로 이 바람이 지리산의 향기 입니다.
택시로 성삼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매표소의 직원이 4시30분이 되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휴게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많은 산님들이 우르르 몰려듭니다.
공단직원도 어쩔 수 없었는지 4시가 되니 매표를 시작합니다.
지리산의 단풍소식을 산님들이 올린 산행기로 대충 보아왔지만
10월초 지리산에는 얼마만큼 단풍이 들었을까? 궁금증이 더해져 걸음이 빨라집니다.
돼지평전을 지나니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더니 동녘이 환히 밝아 옵니다.
노고단에 걸린 한가위보름달은 붉게 물들어 이름그대로 환한 달덩이가 됩니다.
해와 달이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달이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것은 오늘 첨봅니다.
▲임걸령 샘
▲노루목가는 길
▲노루목에서 바라본 노고단
▲화개재가는 계단길의 단풍터널
물이 먹고 싶지 않아도 꼭 들러보고 싶은 임걸령 샘터
오늘도 지난번 여름과 똑 같은 수량이 일정하게 흘러나옵니다.
사철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는 지리의 마음과 같아
힘들어하는 꼭지와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며칠 내내 꼭지가 명절 준비하느라 힘들었나 봅니다.
거기다가 무박으로 달려왔으니 잠이 쏟아지고 피곤하다며 기진맥진합니다.
도저히 더 이상 걷지도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얼굴을 보니 핏기도 없고 창백하여
“어이구! 진짠가 보네.”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잔디에 눕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 하였더니 잠이 듭니다.
다행이 춥지는 않다는 말에 탈진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10분여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드는지 가자고 합니다.
▲토끼봉의 새로운 이정목
▲불타는 하늘
▲명선봉에서의 조망
임걸령을 지나니 주 능선의 고운단풍들이 꼭지를 위로합니다.
서서히 꼭지의 얼굴에도 홍조가 띠고 웃음이 번집니다.
노루목에 올라서니 지나온 능선들이 아침햇살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예 반야봉을 생략하고 바로 삼도봉으로 향합니다.
아쉬움이 따랐지만 체력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의 목표는 반야봉이 아니라 세석이기 때문입니다.
화개재 내려가는 목계단과 토끼봉에서 명선봉에 이르는 능선에는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쉬운 여름의 잔상과 가을의 단풍이 서로 어울려
두 계절이 공존하는 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식수가 풍부해 산님들로 초만원인 연하천산장
▲형제바위와 그 위에 올라 선 아슬아슬한 산객들
▲벽소령가는 길
11:00 드디어 연하천입니다.
연하천은 늘 식수가 풍부하게 흘러나오니 대부분의 산님들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오늘도 산님들로 넘쳐납니다.
여름종주 때보다 1시간 늦게 출발했는데도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셈입니다.
이정도 속도라면 아무리 꼭지의 걸음이 느려도 세석까지는 문제없을 것 같아 안심을 하고
라면 두개를 끓여 햇반 하나를 넣고 포식을 합니다.
삼각고지를 지나 형제봉에 올라서니 형제바위 너머로 천왕까지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 특유의 탁 트인 조망이 가슴을 후련하게 합니다.
당단풍의 붉고 노란 빛과 상수리나무의 황갈색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가을의 수채화에
지리산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선비샘
▲칠선봉가는 길
▲드디어 칠선봉이 지척입니다.
▲노란단풍이 물든 너덜길을 에돌아나가면 칠선봉입니다.
▲칠선봉의 선녀??
벽소령을 지나 단풍터널 속으로 파고드는 따스한 햇살 속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꼭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행복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매번 장거리 산행을 시키면서 마누라 죽인다고 엄살을 떨지만 한 번도 따라나서기를 거부한 적이 없으니
그 놀부 심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초등학생을 동반한 가족들..
자기키보다 더 높은 배낭을 짊어진 애리한 아가씨들..
산에 와서도 티격태격 싸우는 정겨운 부부들..
그렇게 마주 오는 산님들과 인사하며 종주구간 중
가장 힘들다는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코스도 오늘만큼은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칠선봉을 돌아나오니 백무동방향의 조망이 또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영신봉가는 길
덕평봉을 넘어 선비샘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힘든 너덜 길을 에돌아 나가면 칠선봉입니다.
칠선봉의 아름다움에 취하다보니 영신봉이 지척입니다.
토끼봉에 이어 꼭지가 또 힘들어하는 구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름길이지만
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는 단풍터널속이라 오늘은 꼭지의 걸음이 가볍게만 느껴집니다.
세석에 도착하니 오후 5시30분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셈입니다. 예약한 침상을 배정받고 취사장에 내려가 밥을 하고
우거지국에 김치와 참치캔을 넣고 찌개를 끓여 반주로 소주한잔..
그렇게 세석에서의 하룻밤을 맞이합니다.
한가위 보름달은 촛대봉능선에 걸터앉아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고
밤하늘의 별은 우수수 떨어져 산장을 융단처럼 덥습니다.
촛대봉일출과 중산리 하산길 ( 13km / 10-8 04:40~15:00 )
너무 일찍 잠이 들어서인지 3시쯤에 잠이 깨어
화장실에 가기위해 산장밖에 나오니 지리특유의 찬바람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처마아래에는 예약 못한 많은 산님들이 비박을 하고 있는데 그 또한 장관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늦게 또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휴대폰이 “덜덜” 침상을 흔들어 댑니다.
“머 하노 아직도 자나??” 꼭지의 호통이 이어집니다.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약속시간인 새벽5시입니다.
무서운 꼭지 벌써 배낭매고 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촛대봉에서의 해돋이 (천왕의 웅장한 모습)
▲촛대봉에서의 일출
▲사람과 해오름의 산
▲도장골과 거림방향
“우쉬~~ 해뜨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쩝니까. 꼭지 성질 건드려서 집에 가자하면 큰일이니 비몽사몽간이지만
서둘러 배낭을 챙겨 세석을 출발합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그러나 촛대봉에 오르자 묵직하던 머릿속이 갑자기 텅 빈 듯 환해집니다.
천왕!!
그 웅장한 거산의 암영이 하늘을 뚫을 듯이 불끈 솟아오르고
멀리 달뜨기 능선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합니다.
해가 돋으려는 것입니다.
하늘과 구름을 열어젖히며 오묘한 새벽빛이 지리산 아흔아홉골에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지리산이 잠에서 깨어나는 활홀한 순간입니다.
수양산에서 웅석봉에 이르는 산 능선엔 달 대신 해가 떠오르고
여기저기 산님들의 환호소리가 촛대봉에 메아리칩니다.
▲장터목가는 길의 새로 단장한 이정목
▲뒤돌아본 촛대봉
▲연하봉가는 길과 젊은이
▲연하선경1
▲연하선경2
▲연하선경3 (반야봉)
▲연하선경4 (도장골)
▲연하선경5
▲연하선경6
이제 지리10경의 하나인 연하선경구간입니다.
봄과 여름엔 온갖 야생화와 운무가 선경을 연출하고 가을엔 구절초와 단풍이 아름다운 구간
오늘은 구절초와 쑥부쟁이, 산오이풀이 시들하여 야생화꽃길의 아름다움은 반감되지만
주위의 고운 단풍들이 운치를 더하여 여전히 선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흐르는 땀, 힘겨움에 꼭지가 잠시 바위위에 올라서 시원한 바람에 잠깁니다.
멀리 반야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야에 들어오고
소녀 같은 설렘으로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봅니다.
그 뒤에 머물고 있는 눈빛하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일 뿐입니다.
가늘 길 내내 시야를 떠나지 않는 일출봉능선과
그 아래 펼쳐진 굽이굽이 이어지는 희뿌연 안개속의 도장골을 바라보노라면
차라리 고사목이 되어서 천년을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어집니다.
언제까지나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장터목에서 바라본 백무동 방향
▲장터목에서 바라본 반야봉
▲제석봉과 고사목
▲천왕봉가는 길1
▲천왕봉가는 길2
▲천왕에서 바라본 반야봉
장터목에서 바라보는 반야의 풍경과 백무동으로의 조망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오후가 되면 역광이 되어서 이러한 풍경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지요.
장터목에서 우거지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천왕을 향해 제석봉을 오릅니다.
초입부의 가파른 오름 때문에 꼭지가 투덜대는 구간이지만
오늘은 한 마디도 투정부리지 않고 잘 오릅니다.
결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천왕을 만날 수 없으니까요.
민족의 애달프고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고사목
그 구상나무의 고사목이 있어서 아름답고 막힘없는 조망 때문에 더욱 걷고 싶은 곳..
오늘은 반야의 엉덩이가 엷은 안개 속으로 신비감을 더해주고 고사목너머로
흐르는 고운 가을빛 때문에 저절로 걸음이 멈추어 집니다.
▲중산리 하산 길1
▲중산리 하산 길2
▲중산리 하산 길3
▲중산리 하산 길4
천왕봉에서 중산리 하산 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과 단풍이 한데 어울린 풍경은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법계사에서 어디로 하산해야 할지 잠시 갈등을 하다가 순두류로 방향을 잡습니다.
길도 부드럽고 유순한데다 순두류아지트가 있는 중봉골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연학습원에서 마지막 시멘트길이 30-40분 지루하겠지만
택시가 있으면 타고 없으면 그냥 걷기로 합니다.
점심은 로타리 산장에서 구입한 백도하나와 가져간 미숫가루로 대신합니다.
▲순두류 가는 길
▲순두류아지트에서 바라본 마야계곡(중봉골)
봄에 올랐던 마야계곡의 초입인 순두류아지트에 내려섭니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에 신발을 벗어 발을 담그고 괴째째한 얼굴을 씻으니
아~~! 일상의 세속입니다.
이틀 동안 지리에 머물렀던 천상의 시간.. 그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고
걸어온 머나 먼 길에 놓인 아름다운 풍경들은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세속의 일상을 향한 걸음이 왠지 무거워 다시 돌아보지만
인생살이 또한 무거워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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