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국 조차도 아름다운 곳
청암사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 가는 길>
성주에서 무주가는 30번 국도변 대덕 10km지점에
위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좌측길로 들어서면 "ㅓ"자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면 청암사 가는 길이고
좌회전하면 수도암 가는 길이다.
도로 옆 표지석에서 마을을 통과하여 자동차로 5분여 달리면
운치있는 잣나무가 도열해 있고, 곧이어 꼬부랑길을 돌아서면
'불영산 청암사'라는 일주문이 반긴다.
자동차는 일주문 옆 간이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것이 좋다.
스님들이 대빗자루로 곱게 쓸어놓은 길을
자동차로 밟고 지나간다는 것은 산사를 찾는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암사는 빗질자국 조차도 아름다운 곳이다.
<청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인 김천 직지사의 말사로
현판은 근세명필 김돈희(1871~1936)가 쓴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150년전 통일신라 헌안왕2년(858년)
고려왕건의 출생을 예언한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오래된 역사와 인현황후의 한이 서린 청암사는
불에타고 새로짓기를 여러번 반복하였으나
1897년 고종때는 폐사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에 대운스임이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어서
그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일대 계곡의 바위에 항상 이끼가 끼어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푸른바위란 뜻으로 청암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물어도 계곡의 물이 마르지않고 흘러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청암사의 암자인 수도암의 샘터도
창건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마른적이 없었다고 하니
진정 산수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웬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벽을 허물어야지 해탈에 이르듯이...
.............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이 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스님들이 곱게 쓸어놓은 빗자국을 보면서
일상의 번뇌도 잡념도
다 씻겨져 나가 온 몸이 깨끗해짐을 느꼈다.
우비천(牛鼻泉)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우측에 있다.
청암사는 풍수상 소가 왼쪽으로 누워있는 와우형(臥牛形)의 터라고 입을 모은다.
이 샘은 소의 코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우비천 또는 코샘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 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암사는 물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하였으며,
이 물을 먹는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새해가 소띠해이니 더욱 효험이 있을 것 같다.
.....
하지만 재물을 멀리하는 스님들은 이 샘을 지날 때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그러한 몸짓으로 이 샘터를 지나칠 수 있을까.
..............
아니다.
샘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모두 한 모금씩 목을 축이고 부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해병대부부도 꼭지도 새해에는 모두
부자가 되길..
우비천을 지나 대웅전 가는 길
대웅전은 다리를 두 개를 지나야 만날 수 있다.
........
저 계단을 올라서면 좌측에 공중전화가 있다.
학생으로 보이는
아직은 앳된 얼굴의 비구니스님들이 내려와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고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공중전화는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통로일 게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우체통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푸르러야 할 바위에 웬 낙서?
글들이 모두 범상치 않아 보이지만 보기가 흉하다.
요즘도 화장실에 가면 낙서를 더러 볼 수 있는데
옛 성인들은 바위만 보면 그냥 쿡쿡 두드려 새기고 싶어졌는가 보다.
근심을 푸시는 방법이 특이하다.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에는
현재 약120여명의 비구니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다.
다층석탑 너머로 보이는 것은
'육화료'라는 특이한 이름의 건물로 108평이나 되는 갈之자 모양이다.
청암사 승가대학의 중심을 이루는 곳
..........
육화란 깨달음을 구하고 여섯가지 깨끗한 행을 닦는 것을 말하지만
속인이 어찌 그러한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으랴..
'청암사 대웅전'과 '청암사다층석탑'(靑巖寺多層石塔)
조선후기의 탑으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주군 어느 논바닥에 버려진 것을
청암사 주지였던 대운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
하얀 연기가 육화료에서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젊디 젊은 비구니스님 한 분이 대웅전을 지나 찻상을 들고 '육화료'로 가시는데
그 맑고 깨끗한 모습이 천상의 선녀같다.
잠깐 눈빛을 마주한다.
이곳에서는 카메라로 스님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정법루'
무엇일까..
경전을 논하는 곳? 아님?
'보광전'
'보광전'은
1689년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황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폐위되자
서인의 몸으로 청암사에 잠행하여
3년동안 극락전에 은거하면서 복위를 기원하던 원당(願堂)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1911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그 이듬해 다시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극락전이다.
이렇듯 극락이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않는가...
인현황후가 기거했던 극락전
하얀점으로 보이는 번호아래에는 털신이 조금의 흐트러짐없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극락전을 멀리서 바라보니
아담한 한옥 형태다.
저곳에서 인현황후는 복위를 꿈꾸며 3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그 3년이
인현황후에게 가장 정갈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구중궁궐이 여인에게는 결코 영화로운 곳만은 아니니..
극락전에서 내려다본 대웅전(뒤쪽 중앙)
대웅전의 지붕도 청암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청색이다.
좌측이 '육화료' 중앙은 '정법루'
우측의 화려한 탑은 고봉스님의 부도탑이고
뒤쪽에 작은 지붕이 보이는 건물이 해우소(뒷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몇 안되는 푸세식 해우소중의 하나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곳으로 '푸세식해우소' 하면 선암사가 떠올려진다.
처리 방식은 선암사해우소와 비슷한 것 같다.
이곳 분뇨도 여러과정을 거쳐 농작물의 퇴비로 쓰인다고 한다.
수도산 산행을 마친 후
하산길에 다시 돌아본 대웅전 방향
두 계곡을 사이에 두고
우측은 대웅전, 중앙에는 극락전과 보광전, 좌측에는 백련암
보기드문 가람의 배치가 아닌가 싶다.
............
2008. 12. 28.(일)
꼭지와 해병대부부 넷이서 수도산 가는 길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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