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백두대간(완)

꽃들이 밀어를 속삭이는 함백산. 제26구간 (화방재-피재)

산사랑방 2008. 12. 24. 16:35



꽃들이 밀어를 속삭이는 함백산. 백두대간 26구간 (화방재-피재)



2008.   7.   6. (일) 맑음


꼭지와 둘이서


일출 05:15 / 일몰 09:45 / 음력 6.4



 

▲만항재의 범꼬리




▣ 구간별 산행기록


05:10 화방재(939m)   -산행시작-

05:56 수리봉 1214m

06:48-06:56 군사용 폐헬기장

07:06 만항재 1330m

08:28 함백산 1572m

10:30-10:40 은대봉 1442m

11:00 두문동재(싸리재 1268m)

11:30-11:50 금대봉 1418m

13:05 비단봉 1281m

14:00-14:10 풍력발전단지

14:23 매봉산 1303m

14:50 낙동정맥 분기점(1145봉)

15:10 피재(삼수령)  -산행종료-


▣ 대간종주 거리 : 21.45km / 누적거리 500.07km (포항셀파 기준)

화방재→3.45←만항재→2.85←함백산→5.40←두문동재→1.20←금대봉→6.00←매봉→2.55←피재

▣ 총 산행시간 : 10시간 (21.45km) / 누적거리 : 536.07km

▣ 교통 : 자가운전 (서대구I.C-영주I.C-현동-태백-화방재 215km / 3시간소요)

▣ 차량회수 : 피재-화방재 20,000원 (태백택시 011-372-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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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오늘부터 드디어 강원도로 넘어가는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발, 1시50분에 집을 나선다.

김밥 네 줄을 사고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영주I.C를 빠져나와 태백으로 향하니

길고 긴 대간길이지만 오늘하루도 꼭지와 함께 대간을 이어갈 수 있다는 행복감에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설레임과 기대.. 대간은 매력덩어리다.

떠날 때마다 숨어있던 또 다른 무엇이이 향기를 뿜기 때문이다.


작년 8월, 휴가를 내어 지리산에 시작한 대간이 벌써 이만큼 왔다. 그동안 우리 산하에서 펼쳐지는

4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현대문명의 이기에 망신창이가 되어가는 땅의 신음소리도 들었다.

오늘은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며 어떤 정경이 우리를 유혹할까.

우리는 무엇을 내 놓아야 할 것인가.


생각이 깊어질 즈음에 넛재를 넘는다. 바로 우측에 청옥산자연휴양림이 반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휴가 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이곳을 자주 찾았다.

대구에서 꽤 먼 거리지만 휴양림 계곡의 기온이

18~25도 정도였으니 여름날 35도의 찜통더위를 피하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지금은 봉화에서 춘양까지 4차선으로 확장되었고

현동의 노루재터널이 개통된 덕분에 2시간 30분이면 휴양림에 닿을 수 있다.

그때는 4시간 가까이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휴양림을 지나니 차가 만세를 부를 정도로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도 곧 터널이 뚫려 관통될 것이다.


태백시내를 지난다.

지난번 기차를 타고 올 때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아련한 풍경들은 찾을 수가 없다.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로등도 꺼지고 서서히 하늘이 밝아온다.

태백의 심장이 힘차게 뛰기 시작한 것이다.



05:10 화방재(어평재)


화방재에 도착하니 5시 정각이다. 3시간이 걸린 셈이다.

시내를 지나올 때는 날씨가 좋아보였는데 구름이 넘실대며 또 변덕을 부린다.

요즘 날씨는 변덕이 죽 끓듯 하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만약을 대비해 비닐우의를 챙겨 넣었으니 비가 온다 해도 걱정할건 없으나

지나는 먹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기세다.


오늘도 지난번 태백산구간처럼 운무속에서 조망 없는 산행이 될 것 같다.

조망이 좋으면 어떻고, 구름속에 빠지면 어떤가.

무엇인가 덜어내니 마음이 참 가벼워진다. 세상사가 다 그러할 것이다.

비움은..


화방재(939m)를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평재라고 부른다.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이다.”라고 해서 ‘어평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재’를 어평재라 불렀다는 유래도 있고,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화방재(어평재)

 


외딴집이 있는 폐가사이로 길이 열린다.

2주만에 만나는 대간길, 그 반가움에 안기듯이 얼른 산문에 들어선다.

더욱 푸르러진 낙엽송이 울창한 길로 등로는 이어진다.

끌어안고 포옹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잘 익은 산딸기들이 뾰로통한 입술로 추파를 던지는지라

그만 딸기의 유혹에 홀딱 넘어간다. 온통 딸기밭이다.

봄에 빨간 딸기꽃이 피었을 때는 정말 산 사면이 꽃방석이었지 싶다.

딸기를 따먹으며 세월아 네월아 땡땡이치는 사이에 한 분의 대간꾼이 우리를 추월해 사라진다.


오늘은 대간이 일용할 양식도 주네. 주절대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수리봉이다.

다른 분들은 무척 힘들었다던데 우리는 딸기덕분에 그냥 수월하게 올라온 것 같다.

조망은 없지만 시원한 그늘 아래로 작은 반석이 있어 쉬어간다.

 



▲수리봉












 

수리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잡목이 우거진 원시림속이다.

대간이 아니라 한적한 지맥 길을 걷는 기분이다. 바지와 신발이 이슬에 젖어들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녹음 짙은 숲길을 40여분 걸으니 군사기지로 쓰였던 흉물스런 시설물과 헬기장이 앞을 막아서는데

그곳에도 온갖 야생화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들이 있어 아름다움이 남는 곳이다.

범꼬리와 초롱꽃, 꿀풀, 토끼풀..

야생화가 만발한 임도길을 내려서니 낙엽송이 운치 있는 만항재다.






꿀풀






초롱꽃




                                                                                           

▲만항재





꽃들이 속삭이는 만항재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포장도로로 고도가 무려 1,330m이다.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재로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리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는데 수리봉(1214)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고개가 산보다 높으니 만항산(?) 이라 해야 하나?


낙엽송군락지에는 범꼬리가 지천에 피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지리산 화개재에서, 덕유산 서봉에서, 특히 비슬산에서 만난 범꼬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비슬산 대견봉에서 비가 그친 후, 운무속으로 덕유산을 향한 범꼬리의 아름다움은

감동 그 자체..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만항재의 범꼬리 군락지 




                                                                     

▲비슬산 대견봉의 범꼬리 (2006. 7. 23)



범꼬리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초목, 저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수많은 언어를 갖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내면세계는 인간을 추월할지도 모를 일, 태초부터 그들은 인간보다

더 영리하게 종자를 번씩하며 세상을 살아왔다. 또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살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기도 하다.

죽어있는 주목은 물론이고, 수 천 년의 나이를 몸에 새기며 세월을 풍미하는 바위들에도

아마 그들만의 영혼이 존재할 것이다.

 




 

 


만항재에서 만난 범꼬리는 그들만의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는 듯 했다.

갑자기 놓인 출사꾼의 삼각대와 카메라가 그들에게 괴물 같은 우주선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해진다.

바람에 일렁이는 몸짓 하나하나에는 무한한 언어의 속삭임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귀를 기울인다.

어릴 때, 소라껍질에 귀를 대면 파도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귀를 댄 적이 있다.

오늘이 그와 같다.

무슨 소리가 들릴까?


“야! 야~~!  우주선이다.”

 




 


그들에게 정신이 팔려 한참을 머문다.

길이 휴게소가 있는 방향인가 싶어 터덜터덜 올라가니 꼭지가 부른다.

대간은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란다. 마치 하산하는 길 같다.

운무 때문에 산마루가 보이지 않으니 무의식적으로 높은 곳으로 가게된 것이다.

도로 따라 50m정도 내려가니 우측으로 길이 열린다.


함백산은 태백산과 더불어 ‘밝고 큰 산’을 의미한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는 길도 부드럽고 밝은 빛이 돈다. 하늘을 향한 기린초의 몸짓이

우리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옅은 운무가 분위기를 돋우어주기도 한다. 

함백산 가는 길에는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이 발걸음을 잡는다.





                                                                            

▲함백산 가는길의 기린초


 



가끔은 가파른 나무계단이 꼭지를 힘들게 하지만 스틱으로 당겨달라는 소리를 않는다.

그러고 보니 꼭지를 스틱으로 당겨본 적이 까마득한 것 같다.

‘다정’님이 대간을 하다보면 꼭지가 더 잘 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 때는 믿지 않았었다.

요즘은 꼭지가 생각 외로 잘 걸어서 장거리구간도 안심이 된다.

임도를 가로지르고 또 산길로 든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몇 명의 산님들이 내려오며 인사를 건넨다.

 






                                                                                 

▲함백산 가는 길








 


                                                                                        

▲1,572m 함백산 정상, 바람에 꼭지가 날려갈판~~ 

 

 


‘밝고 큰 산’ 함백산


가파른 오르막이 20여분 이어지더니 드디어 함백산이다.

만항재에서 1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바위가 많은 모양은 태백산과 닮았다.

바람이 세차다. 역시 조망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쉬움도 없다.


자신에 대한 위안인지도 모르지만 흉물스런 철탑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밝고 크다‘는 함백의 의미만 갖고 가고 싶다.

조망의 아름다움은 운무 속에 묻어둔 채 바람을 뚫고 길을 나선다.

두 어장의 꼭지 사진을 남기고..




                                                           

▲함백산 바위 가족들... 운무속에서 무슨얘기들을 하고 있을까? 


 



                                                            

▲주목은 늘 말이 없다. 그 옆에서 박새꽃이 하이얀 아양을 떨지만...


 




                                                                           

▲사마귀? 가족...  키 큰 엄마에게 뛰어오르며 엄마! 엄마! 불청객이 왔어~~.


 



                                                                

▲반생반사의 주목..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주목쉼터


 



                                                                        

▲운무속으로 은대봉 가는 길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들  





계속 운무속이다.

정상에서 5분여 내려서니 보호림으로 지정된 주목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함백산에서 대덕산과 금대봉구간은 생태, 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무법자가 나타났다.

바로 멧돼지다.


파헤쳐진 흙의 상태를 보니 멧돼지가 사람을 피해 금방 숲속에 숨어든 느낌이 든다.

그들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며 중얼거릴 것이다.

“상대는 둘, 만만치 않으니 먼저 덤비지 않는다.” 혹시 그들이 있나 숲속을 응시한다.

어디에 숨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긴장감이 흐른다.

 





                                                                  

 


생태보전지역이 멧돼지천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

태백산호랑이가 돌아와 그들을 혼낸다면 모를까.

갑자기 아이가 된 기분이다.

과연 우리 땅에 호랑이는 존재하는 것일까.




11:00 두문동재


이름도 아름다운 은대봉을 지나

범꼬리와 고사목이 운무속에서 처연한 모습을 드러내는 안부를 내려서니 두문동재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려왕조를 섬기던 신하들이 불사이군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정선 두문동으로 숨어들어

마지막 공양왕을 그리며 읊은 시가 정선아리랑의 시원이라고 한다.

그 사연이 깊은 곳이 두문동재다.

 





                                                                          

▲백두대간 은대봉(1,442m)




 





                                                                              

▲은대봉에서 두문동재 가는 길


 







                                                                                

▲백두대간 두문동재1


 



                                                                            

▲두문동재2 (산행 안내문)

 



감시초소 옆을 지나니 스르륵 창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방명록을 내밀며 인적사항을 적으라 한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났더니 입산허가가 떨어진다. 금이 많다는 금대봉을 오른다.

“금대봉에 가면 정상석이 금으로 되어있단다.” 했더니

“그럼, 빨리 가서 그거 들고 가삐자.” 꼭지의 심보가 고약하다.

 




                                                                            

▲금대봉 가는 길


 



                                                                              

▲백두대간 금대봉 (1,418m) 

 


사면에는 나무와 로프를 연결해 팬스를 쳐 놓았다.

생태계보호를 위함이란다. 이곳에도 범꼬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긴다.

정상에 도착하니 꼭지의 표정이 어째 시큰둥하다.

“금이 아니고 돌이잖아?”

“~ㅠㅠ”

"ㅋㅋ~~당연하지, 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으니 금이 돌로 보이는 거지 뭐..." 

 




                                                                               

▲비단봉 가는길의 이정목





                                                                               

▲비단봉에서 뒤돌아본 금대봉 




금대봉에서 ‘비단봉’가는 길은 이름그대로 비단결 같은 고운 길이다.

등로는 부드럽고 걷는 내내 꽃향기로 즐겁다.

“비단봉에 가면 비단이 짝 깔려 있겠네.” 꼭지가 비꼬기 시작한다.


비단봉이 이름값을 하는지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더니 작은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오늘 처음열리는 조망에 바라보는 눈길이 황홀하기만 하다.

지나온 길이 참 부드럽다.

펑퍼짐한 모습의 은대봉과 금대봉, 그 능선은 은 빛깔을 닮아 더욱 부드럽게 보이나

함백산은 하늘 속으로 숨어버렸다. 어디쯤인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멀리 가야할 매봉산이 손짓하고 그 옆으로 풍력발전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좌로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매봉산


 



                                                                                     

▲태백방향

 



배추의 위대한 승리 


비단봉에서 20여분 내려서니 거대한 산 사면이 도두 배추밭이다.

면적은 45만평에 이른다고 하는데 학교 대운동장 150개에 달하는 면적이라면 상상이 될까싶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올 김장배추가 1,250m의 고산에서 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돌 반 흙 반인 척박한 땅에서 자라고 있으니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이로운 배추의 힘! 아니 우리 농부들의 힘이다.

나아가서 우리 대한민국의 힘이다.


산을 아예 대머리깎듯이 박박 밀어버렸다.

운동장 150개 넓이로..

저 배추는 땀의 결정체다. 저 넓은 돌밭을 일구며 흘린 땀의..

 




                                                         

▲거대한 배추밭을 통과하여 가야할 매봉산


 



                                             

▲이곳의 배추는 물이 아니라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을 먹고 자랄 것 같다.

 



지도상 늦통목이재 안부를 지나

임도 따라 올라서니 비료를 뿌리는 농부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문득 이곳에서 자라는 배추는 물이 아니라 농부들이 흘리는 땀방울을 먹고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땅은 바삭 말랐는데도 배추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우주도 흔들 것 같은 그들의 땀 앞에서는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김장배추 한 포기, 그저 평범한 채소로 치부해 넘기기에는

그들의 땀방울이 너무나 소중하다.

 














                                                                     

▲매봉산 철탑이 보이는 바람의 언덕을 넘어..


 



                                                                                      

▲지나온 길... 

 


매봉산

원래 이름은 천의봉,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흘러들도록 물줄기를 만들어 주는 산으로

부산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을 떨구어 내는 산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매봉산(천의봉)


 



                                                                      

▲태백방향으로 잠시 전망이 트이고


 



                                                                         

▲피재가는 길의 돌반 흙반인 배추밭 


 



                                                                                  

▲뒤돌아본 매봉산

 


매봉산은 풍력발전기와 배추밭으로 자기 몸둥이를 다 내어주고 겨우 한 귀퉁이만 붙여놓았다.

정상부는 강원 동부의 최고봉답게 세찬바람이 불고 있고

8개의 발전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날개소리 때문에 귀가 멍할 지경이다.

배추들은 날마다 저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것이라 생각하니 이 또한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는 배추에 귀를 대면 윙윙하는 발전기소리가 들릴 것 같다.


매봉산에서 20여분 내려서니 낙동정맥 분기점이다.

또 하나의 산줄기가 떨어져나간다. 속이 쓰리지만 지금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 구간을 다녀온 후 꼭지에게서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나보다. 얼토당토 않게 내 뱉는다. 

“대간 끝나면 낙동인가 뭔가 그거 하자.”

".......???"

 




                                                                                 

▲언젠가 낙동할 때 다시 와야 할 <낙동정맥 분기점>

 


‘낙동정맥’은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가족의 사랑을 외면한 얄미운 놈이다.

피재(삼수령)에서 엄마는 한강, 아빠는 낙동강, 아들은 오십천으로 빠뜨려 흘려보내고

빗물가족을 평생 이산가족으로 만들어 만나지 못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신기한 것은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물줄기다.

한쪽은 백두대간이, 한쪽은 낙동정맥이 되는데 경북과 경남, 동해안과 낙동강유역의 내륙을 가로질러

이 지역의 교통과 문화를 가르고 산경표의 원리대로 물을 건너지 않으며

부산 몰운대까지 410여km를 힘차게 달리는 올 곧은 산줄기가 바로 낙동정맥인 것이다.

얄미워도 만나고 싶다.

 




                                                            

▲낙동이 맥을 다하는 부산 몰운대 바다 (2003. 4. 6.)


 



                                                                                    

▲피재(삼수령)

 


5년 전에 진해 시루봉산행이 취소되어 몰운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간이 무엇인지 정맥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그냥 산이 좋아 산으로 다녔었는데

‘신경수’님께서 “낙동정맥 끝부분을 했으니 낙동정맥 완주를 한 셈이네요.ㅎㅎ”

웃으시며 농담을 하신 적이 있다.

오늘 그 시작점에서 처음과 끝을 연결하였으니 5년 만에 낙동을 졸업한 셈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신경수님 정맥 완주법?


‘산꾼 중의 산꾼’ 나는 그분 내외를 그렇게 부른다.

지금도 그분들은 길도 없는 어느 한적한 산속에서 지맥을 답사하고 계실 것이다.


잠시 기억에서 벗어나

두어 번 도로를 가로지르니 피재가 보인다.

피재(삼수령)에는 세 개의 빗방울을 형상화한 상징탑과 아름다운 정자가 세워져 있다.

빗물가족의 슬픈 전설을 음미하면서 오늘의 대간 산행을 마감한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