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목들의 향기에 취하다. 백두대간 24구간 (고치령-선달산-도래기재)
2008. 6. 8. (일) 맑음
꼭지와 둘이서
일출 05:09 / 일몰 19:41 / 음력 5.5
▣ 구간별 산행기록
05:15 고치령 -산행시작-
06:20 미내치
08:14-08:30 마구령(소형차 통행가)
10:30 갈곶산
10:47-11:10 늦은목이
12:30 선달산
14:35-15:00 박달령(소형차 통행가)
16:05 문수산 갈림길(내성기맥 분기점)
16:10 옥돌봉
16:25 550년생 철쭉나무
17:00 도래기재 -산행종료-
▣ 대간종주 거리 : 26km / 누적거리 454.42km (포항셀파 기준)
고치령→7.60←마구령→4.90←갈곶산→1.03←늦은목이→1.77←선달산→5.10←박달령 →3.00←옥돌봉→2.60←도래기재
▣ 총산행시간 : 11시간 45분 (26km) / 누적거리 : 490.42km
▣ 접근거리 : 없음
▣ 식수위치 : 박달령 샘터(식수충분)
▣ 위험구간 : 없음
▣ 교통 : 자가운전 서대구I.C-풍기I.C-순흥-고치령 / 차량운행거리 155km / 2시간10분소요
▣ 차량회수 : 도래기재⇒고치령 / 부석택시 35,000원 (011-538-3103) 풍기택시 45,000원 (011-533-6805)
▣ 추천식당(순대국밥. 삼계탕) : 풍기에서 죽령방향 ‘소백산관광쉼터’ 054-631-6631
********************************
하루 종일 숲길을 걸었다.
하늘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신갈나무 잎에 매달려 있었다.
거의 12시간 가까이 조망도 없는 산길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시간의 흐름은 우리의 마음보다 앞질러 갔다.
가끔은 뻐꾹새가 우리를 경계하며 뻐꾹뻐꾹 울기도 했고
홀딱벗고새는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며 ‘홀’딱‘벗’어~’라고 했다.
이름 모를 꽃들은 대간 길 내내 함께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었고
고도가 높은 선달산구간에서는
봄부터 피기 시작한 앵초가 여전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등로는 부드럽고 아늑하여 걷기가 좋았으며
짙은 녹음과 고산의 숲이 발산하는 그윽한 향기는 온몸을 정화시켜 주었다.
아름드리 신갈나무 숲속에 쭉쭉 뻗은 춘양목은 가는 길 내내 운치를 더하였다.
조망이 없다하여 결코 지루한 구간이 아니었다.
여름도 여름이지만 겨울에 지나면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고치령에서 도래기재 가는 길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구간으로 기억하고 싶다.
**********************************
고치령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오늘 구간은 26km, 거리가 약간 멀긴 해도 길이 좋아서 꼭지가 잘 걸을 수 있겠지만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꺼림직 하다.
계획은 자동차를 날머리인 도래기재에 주차하고 택시로 고치령에 이동하려 했으나
오후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든지 꼭지의 컨디션이 떨어진다면 중간에 탈출을 각오해야 함으로
고치령에서 출발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고치령 산신각
산신각에는 초라한(?) 행색의 두 남자분이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먹고 계시는지라
‘이 꼭두새벽에 산신각에 앉아서..?’ 아무래도 이상하여 힐긋힐긋 쳐다보다가
옆에 놓인 큰 배낭을 보니 산꾼은 분명해 보인다.
반갑기도 하여 인사를 드리고 “출발하지 않으십니까?”하고 물으니
“허허~ 우리는 태백에서 왔습니다.”라고 여유 있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헉~! 태백에서 언제 여기까지? 그렇다면 태백 신령님?” 우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래서 또 한 번 쳐다보니 옆에 사과박스를 가리키며
“산신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인데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세요.” 하며 막걸리를 흔들어 보인다.
“막걸리 권하는 신령님도 계시네..@@”
그렇다고 감히 신령님과 대작을 할 수는 없는 일 고맙다는 인사로 점잖게 사양하고 산문에 들어선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옆에 놓인 사과박스만 시야에 들어온다.
...............................??
초반부터 가파른 오름길이겠지 예상했는데
5분여 오르니 헬기장이고 이후부터는 계속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다.
고도는 800~900m를 유지한 채 큰 오르내림이 없어 걷기는 편하다.
키 큰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하늘을 가리고 있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영 심상찮다. 길게 심호흡을 한다.
초목도 기를 뿜어낸다고 하더니 그런가 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하고 신선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고치령에서 미내치 가는 길
좌측에서 햇살이 비춰든다.
대간이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인의 속살을 탐하듯 햇살은 부드러우면서도 빨려들듯이 숲속을 파고든다.
비록 조망은 없어도 매력적인 산길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깨끗하고 맑기만 하다.
자전거를 타고도 얼마든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은 부드럽고 순한데다가
보송보송한 낙엽까지 깔려있어서 밟는 감촉이 너무나 좋다.
500m마다 어김없이 구조목과 이정목이 세워져 있어서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는 곳이다.
어디서 울어대는지 모르지만 정겨운 새소리는
우리를 꾸중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군락을 지어서 계속 꽃길을 열어준다.
우산나물과 젓가락나물(홀아비꽃대)도 등로 사면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둘 다 식용이 가능하지만 우산나물은 독초인 삿갓나물과 생긴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어느덧 미내치를 지나 마구령에 닿는다.
▲우산나물과 젓가락나물(홀아비꽃대) 군락지
▲마구령 가는 길
08:14 마구령
고치령에서 8km의 거리인데 꼭지의 느린 걸음으로도 3시간이 걸린 셈이니 길의 유순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해발 810m인 마구령은 옛날 장사꾼들이 말을 타고 넘었다하여 마구령이라 부르는데
요즘은 자동차로 생생 넘을 수 있느니 세월의 무상함이 따로 없다.
한 쪽 옆에는 커다란 표석이 세워져 있고 나무 장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산님 한 분이 쉬고 있고, 우리보다 조금먼저 고치령을 출발했는데 1박2일로 화방재까지 간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름도 특이한 갈곶산을 오른다.
울창한 신갈나무사이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아름드리 춘양목도 눈에 띤다.
고산특유의 향기가 더욱 짙어진다.
갈곶산에는 정상석이 없고 이정목아래에 어느 분이 갈곶산이라 표기해 놓아서 짐작할 뿐이다.
우측은 봉황산을 거쳐 부석사로 하산할 수 있고 대간은 리본이 많은 좌측이다.
▲갈곶산 (부석사 갈림 길)
▲늦은목이
해발800m인 늦은목이에 내려서니 많은 산님들이 모여 있다.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망태기와 꼬부랑하게 생긴 호미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산꾼은 아닌 것 같고
약초 같은 것을 캐러 다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곳은 쉴만한 데가 없어서 조금 위로 올라가 시원한 숲속에서 때 이른 점심을 먹는다.
여기 늦은목이까지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이곳을 지나면 소백산국립공원에서 벗어나지만 여전히 500m마다 구조목과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백두대간을 위해 쏟아놓은 흔적이 뚜렷하다.
지리산에서 지금까지 진행하여 온 중에 이번구간이
관리가 제일 잘 되어있는 것 같고 등산로 주변에는 쓰레기도 보이지 않는다.
소문으로는 구간마다 청소를 한다고 하였는데 사실인 것 같다.
물푸레나무과 층층나무, 물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곳이다.
아름드리 신갈나무와 굴참나무도 많다. 쭉쭉뼏은 춘양목이 더러 등로 주위에 많이 보이지만
옛날 재선충의 영향인지 잎이 말라들고 있어서 그 많은 소나무가 곧 고사위기에 처할 것 같이 보인다.
지루하게 여겨졌던 구간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음은 삼림욕효과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걸어도 걸어도 아늑한 숲길이다.
▲대간 선답자들의 흔적들..
12:30 선달산
1236m의 선달산 정상부는 잡목을 베어내어 조망이 트이게 해놓긴 했으나 멀리 산마루만 겨우 조망될 뿐이다.
신선이 놀았다 하여 선달산이라 했다는데 신선이 놀만한 조망처는 되지 못한다.
선달산을 내려서니 소리소문없이 소백산에 간 해병대에게서 전화가 온다.
국망봉에서 고치령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는다.
3시간정도라고 했더니 고치령으로 오겠다고 한다. 3시간 만에 올 수 있을까 모르지만..
나중에 만났더니 5시간이 걸렸다고 투덜대는지라
“아저씨! 해병대 맞어?”
꼭지의 걸음으로도 5시간 걸리는데 해병대는 당연히 3시간 안에 도착해야지
그렇게 한바탕 웃고 넘겼다.
▲박달령 가는 길
▲박달령
▲박달령 샘터 (지저분해 보여도 시원한 물맛이 최고)
14:35 박달령
단체 산님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여기저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달령에는 정자가 있어서 쉬어가기로는 참 좋은 곳이다.
물이 부족할 것 같아서 헬기장 50m 아래쪽에 있는 샘터로 내려가니 샘터가 시골의 옹달샘처럼 생겼다.
나뭇잎이 떨어져 지저분하게 보였지만 물이 계속 흐르고 있어서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아
한 모금 마시니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물처럼 시원하고 맛이 좋다.
오랜만에 맛보는 산중의 짜릿한 물맛이다.
박달령에서 옥돌봉 가는 길은 고도 1100~1200을 유지한 채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동쪽에서부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문수산 갈림길(내성기맥 분기점)을 지나 5분여 올라서니 옥돌봉이다.
이곳 또한 조망은 없고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린다.
▲옥돌봉 가는 길
▲문수산 갈릴 길(내성기맥 분기점)
▲옥돌봉
처음에는 배낭카바만 쉬우고 진행하다가 천둥소리도 들리고 빗방울이 굵어지는지라 우의를 입는다.
꼭지는 번개가 우리에게 내리칠까봐 걱정을 한다.
번개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큰 나무가 적어서 여긴 떨어지지 않는다며 안심시킨다.
그래도 재수 없게 번개가 스틱에 떨어질까 꼭지의 스틱을 받아들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전화통화가 되지 않아서 해병대부부가 고치령에 잘 도착했는지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550년생 철쭉나무를 지나
도래기재에 내려서니 빗줄기가 잦아든다.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는 550살 철쭉나무
▲도래기재
그후
택시를 타고 고치령으로 이동하여
해병대부부를 만나니 옛날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를 만난 기분이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 마침 오늘이 꼭지의 생일이라
풍기에서 희방사 가는 길에 있는 ‘소백산관광쉼터’에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한다.
풍기인삼을 넣은 삼계탕과 금장순대국밥이 유명하다는 식당인데 겉보기와는 달리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해병대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대구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긴 시간이었지만 대간의 행복에 흠뻑 젖은 하루였다.
- 끝 -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9정맥 > 백두대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들이 밀어를 속삭이는 함백산. 제26구간 (화방재-피재) (0) | 2008.12.24 |
---|---|
행운의 네잎크로바.. 제25구간 (도래기재-태백산-화방재) (0) | 2008.12.24 |
철쭉이 어우러진 운무속의 소백산, 제23구간 (죽령-고치령) (0) | 2008.12.24 |
가는 봄이 서럽네. 백두대간22 (저수령-도솔봉-죽령) (0) | 2008.12.24 |
충주호에 떨어진 매화.. 제21구간 (차갓재-황장산-저수령) (0) | 2008.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