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이 어우러진 운무속의 소백산, 백두대간 23구간 (죽령-고치령)
2008. 5. 25. (일) 맑음
꼭지와 둘이서
일출 05:14 / 일몰 19:32 / 음력 4.21
▣ 구간별 산행기록
05:00 죽령 -산행시작-
07:10 천문대
07:15-07:25 연화봉
08:13 제1연화봉
09:25-09:30 비로봉
11:00-11:30 초암사 갈림길
11:45 국망봉
12:05-12:15 상월봉
14:35 연화동 갈림길
16:11 마당치
16:35 형제봉 갈림길
17:10 고치령 -산행종료-
총 산행시간 : 12시간10분 (24.83km) / 누적거리 : 464.42km
▣ 대간종주 거리 : 24.83km / 누적거리 428.42km (포항셀파 기준)
죽령→6.25←천문대→4.43←비로봉→3.08←국망봉→8.27←마당치→2.8←고치령
▣ 접근거리 : 없음
▣ 식수위치 : 확인 요
▣ 위험구간 : 없음
▣ 교통 : 자가운전 서대구I.C-풍기I.C-죽령 / 차량운행거리 140km / 1시간50분소요
▣ 차량회수 : 고치령⇒죽령 / 단양대강택시 40,000-5,000원 (011-485-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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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개요
소백산구간은 철쭉개화시기에 맞춰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만 세상사 뜻대로 되면 사는 재미가 없지요.
철쭉축제를 하는 5월말경이나 6월초에 가면 철쭉이 절정일 테지만 다음 주에는 사정이 있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소백산 구간 디데이로 잡았지요.
토요일에 비가 내리고 하여 일요일은 날씨가 좋으리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니 밤안개가 자욱하더군요. 그래서 꼭지에게 한 마디 했죠.
“오늘 땡잡은 날이네.”
“왜~?”
“시내에 안개가 낀 날은 산에 가면 거의 운해를 보거든.”
“......??” 꼭지의 표정이 어째 시큰 둥 합니다.
소백산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운해를 보여주겠다며 꼭지에게 큰 소리 빵빵 쳤습니다.
고맙게도 안개는 차 운전을 못할 정도로 계속 따라 오는 겁니다.
군위, 안동을 지나니 안개는 더욱 짙어져서 차창에 물방울이 맺히곤 했습니다.
“그래, 계속 따라오너라.” 중얼거렸죠.
말이 씨가 된다더니 풍기I.C에 내려 희방사입구를 지났는데도 안개는 계속 쫓아왔습니다.
“이제 그만 와라~~!” 했지만 말을 안 듣더군요.
이쯤에서 안개가 그쳐주었으면 멋진 조망과 운해를 볼 수 있었겠지요.
그건 희망사항 이었습니다.
죽령에 올라서니 더욱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짙은 운무였습니다.
어쩝니까.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일
비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비로봉을 지나니
조금씩 운무가 걷히고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행운이었죠.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철쭉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하더군요.
철쭉이 만개하지 않은 대신에 운무와 하늘이
그 부족한 자리를 채워주었고 그 안에 꼭지가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죽령에서 고치령까지는 약 25km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아내가 잘 걸어주었습니다.
걷기 전에 꼭지가 미리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가더니 그 영향인지 알 수는 없네요.
때로는 대간이 꼭지를 잡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온전히 호강시켜주는 주는 날도 있네요.
저만 다리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그래도 행복한 대간 길이었습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 1
▲비로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 2
▲비로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 3
▲국망봉을 오르며... 나의 영원한 모델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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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와의 숨바꼭질
05:00 죽령(689m)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지독한 안개가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다.
모든 것은 소백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죽령에서는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시멘트 길을 오른다.
여기저기 철쭉이 무리지어서 피어있고 점점 고도가 높아질수록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배가된다.
천문대를 지나니 큰 삼각대를 짊어진 출사꾼이 한분 내려온다.
아마 연화봉에서 일출사진을 찍으려다 운무 때문에 포기하고 가는 것 같다.
▲천문대 가는 길..
▲운무속의 연화봉
07:15 연화봉에 올라선다.
운무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 아래에는 희방폭포와 함께 희방사가 자리하고 있다.
4년전 초가을에 해병대와 구인사까지 종주할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그때는 일출이 아름다웠고 희방사의 동종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이 새롭다.
희방사는 1400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에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보은에 얽힌 호랑이와 두운조사에 관한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때는 깊은 겨울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어느 날, 지금의 사찰자리 허름한 초가에서 대사가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갑자기 크크킁~~?? 하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호랑이 목에 비녀가 꽂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사 왈
“이놈아, 잡아먹을 짐승이 그렇게도 없어서 하필이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잡아먹다 이 꼴이 되었느냐!” 하고
꾸짖으며 비녀를 빼내주었다. 그 후 호랑이는 대사의 은혜를 갚고자
멧돼지를 한 마리 물고서 찾아온다.
이를 본 대사 왈
“이놈아 명세기 나도 중인데 어찌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 너나 갖고 가서 실컷 쳐 먹어라”
하고 욕을 하며 꾸짖어 보냈다.
호랑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만히 생각하다 “그렇지!”하며 머리를 탁 친다.
ㅎㅎ~~~ 왜 그랬을까?
제 딴엔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서 한건(?) 큰 거 하지만 또 욕만 실컷 얻어먹고 쫓겨나게 된다.
소백의 칼바람 몰아치는 야심한 밤
갑자기 마당에 또 “쿵~!”하는 소리가 들려 대사가 황급히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어느 양가집 어여쁜 규수를 물어다 놓았다. 이번엔 대사가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왜냐면 먹도 못하는 것만 자꾸 물고오니 화가 날 수밖에
ㅋㅋㅋ~ 대사가 노발대발한다.
“이놈아~~! 나를 여색을 탐내는 땡중으로 아느냐”며 호랑이를 향해 고래고함을 지르며 꾸짖어 보낸다.
어쩌랴, 기절한 규수를 따뜻한 방으로 옮겨 의식을 회복하게 해주니 깨어난 처녀는
혼례식을 올리던 날 이렇게 저렇게 하여 호랑이에게 물려오게 된 자초지종을 얘기해 준다.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의 무남독녀였는데 경주호장은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 하고자
이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지었다고 한다.
어쨌든 미물인 짐승도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안다는 교훈이다.
희방사는 월인석보와 훈민정음으로 유명한 절이었지만 보관되어오던 월인석보 판목은 6.25때
불에 타 없어졌다. 하지만 훈민정음 목판본은 잿더미 속에서도 온전하게 발견되었다고 하니
고치령 산신각에 계시는 단종대왕이 지켜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철쭉을 가슴에 품다.
희방사의 전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이 연화봉을 내려선다.
조망이 좋은 곳이지만 낮게 드리워진 운무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고 추워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일기예보는 30도라 했지만 산정의 기온은 14도를 가리킨다.
연화봉아래 바람이 잔잔한 나무계단 옆에서 간식을 먹으며 먼 길을 위한 휴식을 취한다.
발갛고 노랗고 하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
노란색깔이 고운 피나물과 미나리아제비, 쥐오줌풀, 미나리냉이도 보인다.
철쭉은 대부분 50%정도 피었으나 능선에 칼바람을 맞는 곳의 철쭉은 아직 봉우리만 맺혀있다.
소백산의 철쭉은 바래봉과는 다르다.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꽃을 피워줘야 한다.
그 칼바람을 견디며 저 정도라고 피워내는 것이 대견스럽다.
▲제1연화봉을 오르며 힘들어하는 꼭지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부부로 보이는 듯한 산님과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남자분이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그 아이의 표정이 고통에 다 일그러져 있다. 저 아이에게 산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억지로 걸어가는 아이에게
내려가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가야한다며 아버지는 엄포를 놓는다.
천동리까지 아이에게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닐 것이다.
제1연화봉을 오르는데
운무속의 철쭉이 참으로 아름답다. 꼭지가 탄성을 지른다.
하늘이 조금만 더 열려준다면..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속의 눈이 바라보는데 따라 다르다.
그런데 저 아이의 눈에도 꽃이 아름답게 보일까.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것 같다.
▲잠깐 햇살이 비추며 위로를...
▲비로봉 가는 길 1
▲비로봉 가는 길 2
▲비로봉 가는 길 3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주목관리소
푸른 초원위의 주목관리소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년.. 주목은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주목 옆에 꽃봉오리를 튼 철쭉이 애처롭다.
흰 구름이 세찬 바람을 타고 비로봉을 넘는다. 겨울에는 칼바람으로 서 있기도 힘든 비로봉
사면의 철쭉은 이제 겨우 처녀 젓꼭지크기의 봉우리로 맺혀있다.
철쭉은 다음주 후쯤에나 만개할 것 같다.
09:25 비로봉(1,439m)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칭호인 비로(毘盧)라는 이름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이듯 비로봉 역시 소백산 그 자체가 아닌가.
조선시대 최고의 풍수학자인 남사고는
이 산을 보고는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나온 연화봉도, 가야할 국망봉도 운무속에 숨어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운무가 걷히기를 기다려보아도 계속 구름만 몰려온다.
▲소백산 비로봉 1439m
▲뒤돌아본 주목관리소 방향
▲죽계계곡 방향
▲국망봉 가는 길 1
▲국망봉 가는 길 2
천상의 화원에서
조망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비로봉을 내려선다.
칼바람 부는 겨울에는 계단을 내려서는 것조차 힘들었었다.
어의곡리 갈림길을 지난다.
칼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겨울 밤
이곳에서 3명의 산님들이 불과 100m거리인 비로봉을 넘지 못한 채 조난당하여
한 여인이 숨진 사고가 있었다.
서로가 번개산행으로 초암사에서 올라 주목관리소에서 비박하기로 했지만 그곳까지 건너가지를 못한 것이다.
당시의 칼바람은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날려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쭉은 곱게 피었다.
소백산을 그토록 사랑했기에 그분의 영혼은 아마 저 철쭉으로 피어났으리라..
▲연화봉부터 계속 꽃길을 열어주며 반기는 앵초
하늘이 열리더니 죽계계곡으로 흘러드는 봄빛이 햇살에 녹아내린다.
얼마나 애타게 찾던 빛이던가.
그 전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빛의 오묘함이 이런 것인가 보다.
드디어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고 반쯤 핀 철쭉과 더불어 소백산의 진면목이 조금씩 드러난다.
11시쯤 초암사 갈림길의 한 바위모퉁이에서 점심을 먹는다.
노란 괭이눈 가족도 끼어달라며 자리를 함께한다. 조령산에서 만난이후 처음이다.
운무가 걷히면서 국망봉과 상월봉이 숨바꼭질하듯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한다.
▲피나물도 하루종일 동무가 되어주고...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국망봉과 상월봉
▲괭이눈 대가족
▲국망봉
▲뒤돌아본 비로봉 방향
▲가야할 상월봉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린 소백산 국망봉
11:45 국망봉
겨울철에는 설경이 아름다운 곳이고 맑은 날은 비로봉을 향한 조망이 일품이다.
신선봉과 상월봉 바라보기도 그만이다.
또한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의 전설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신라회복에 실패한 마의태자는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걸치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이곳에 도달하여 경주를 향하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후 월악산에 머물고 있던 덕주공주를 찾아
금강산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국망봉이라 불렀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예천에서 오셨다는 남자 한분과 상월봉까지 동행을 한다.
비로사에서 출발했는데 상월봉까지 갔다가 원점 회귀한다고 하니 상월봉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상월봉 가는 길
▲상월봉에서 바라본 순흥방향.. 아래 바위는 상월암?
▲가야할 대간 마루금
▲상월봉에서 뒤돌아본 국망봉
소백산 최고의 구간을 꼽으라면 비로봉-국망봉-상월봉구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불경방 때는 통제되는 구간이라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상월봉은
꼬부라진 바위가 특이하여 어디서 보든 매력이 넘친다.
정상에 올라본 사람은 탁 트인 조망에 넋을 잃어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것이니
그냥 지나치면 절대 후회하게 되는 곳, 꼭지는 아래서 기다리라 하고 상월봉에 오른다.
비로봉은 여전히 운무속에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나 상월바위 너머로
펼쳐지는 순흥방향의 풍경도 아름답다.
신선봉은 운무속에 잠겨있으나 가야할 대간 마루금은 희미하게 조망된다.
고치령은 멀기만 하네.
상월봉을 내려와 이어지는 대간은 녹음이 우거진 숲길이라 주위산세가 조망이 되지 않는다.
등로는 부드러운 오솔길이다.
을금5km 마당치6.5km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늦은맥이재,
고치령 이정표는 없으나 대간은 마당치 방향이다.
이곳에서 조금만 지나면 신선봉갈림길인데 이정표는 없고 리본이 양쪽으로 걸려있다.
좌측은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가는 길이지만 지금은 통제된 구간이다.
등로 주위에 피어난 야생화군락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숲길이라 시원하긴 하지만 똑 같은 길이 반복되니 지루하다.
꼭지가 오늘은 신기하게도 쉬자 소리도 없이 잘 걷지만 난 다리가 아파서 자주 쉬자고 한다.
대간꾼은 보이지 않고 동네주민인지 나물 뜯는 사람만 만난다.
이런 한적한 길에서는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다. 아마 멧돼지를 만나더라도 반갑다며 인사할 것이다.
▲계속되는 꽃길..
▲개불알꽃(복주머니란) 요렇게 이쁜 개불알(?) 보셨나요?
▲꼭지의 무거운 발걸음.. 고치령 가는 길
14:35 연화동갈림길에 도착하니 <연화동3km, 고치령6.1km>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가야하는 대간 길 지루해도 어쩌랴.. 고치령까지는 3시간가까이 걸릴 것이다.
마당치 가기 전 암봉에 올라서니 소나무사이로 형제봉이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상월봉에서 고치령까지 조망은 그것이 전부였다.
500m지점마다 119구조목이 세워져 있고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형제봉갈림길<고치령1.9km>을 지나면서 지난번에 이용했던 대강택시에 전화하니
50여분 소요된다고 한다. 고치령에 도착하니 17시10분, 12시간이 걸렸다.
어찌 보면 12시간이나 선경에 머물렀던 시간들.. 목장승이 커다란 눈방울로 어서 오라며 반긴다.
지리산에서 이곳까지 무사히 대간을 이어올 수 있었음을 산신각에 계시는
단종대왕과 금성대군께 감사드리며 인사를 올린다.
20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영주방향에서 택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 구간은 도래기재..
그 행복을 잠시 고치령에 남긴다.
▲조망은 없으나 고치령까지 이어지는 편안한 오솔길
▲마당치 가기 전 암봉에서 바라본 형제봉
▲마당치와 형제봉 갈림 길
▲고치령 산신각에 계시는 단종대왕께 감사 인사 드리고...
- 끝 -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9정맥 > 백두대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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