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두타 청옥을 넘다. 백두대간 28구간 (댓재-백봉령)
2008. 8. 17(일) 흐리고 비 약간
꼭지(아내)와 아들 셋이서
일출 05:41 / 일몰 19:13 / 음력 7.17
▲아들과 함께 고적대를 내려서면서 바라보는 갈미봉능선
2008. 8.17.(일)구간별 산행기록
04:18 댓재 -산행시작-
04:42 햇댓등
06:16 통골재
07:30-08:00 두타산
08:43 박달재
09:28-09:42 청옥산
10:10 연칠성령 (무릉계곡 6.7km)
10:51-11:00 고적대
11:27 고적대 삼거리 (무릉계곡 6.5km)
12:50-13:13 샘터
14:00 이기령(알바 10분)
14:37 가짜 상월산 (헬기장)
14:58-15:05 970봉 상월산 (장의자 있는 곳)
15:30 원방재
16:33-16:40 1022봉 헬기장
18:31 백복령 -산행종료-
▣대간종주거리:29.10km / 누적거리 573.77km (포항셀파 기준) 댓재→6.30←두타산→3.35←
청옥산→2.20←고적대→4.00←샘터→2.25←이기령→1.60←상월산→1.60←원방재→7.80←백복령
▣총 산행시간:14시간 13분 (29.10km) / 누적거리 : 609.77km
▣식수위치:두타산, 청옥산, 고적대에서 4km지점
▣위험구간:없음
▣차량회수:무릉계곡⇒댓재 30,000원 (택시 연락처 : 동해개인택시 011-9901-1222 / 018-355-8297(심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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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5(금) / 귀네미골-댓재 구간
출정식(?) 서두 이야기
8월 15일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연휴를 이용하여
지난번에 남겨놓았던 귀네미골에서 댓재 6.2km 구간과, 댓재에서 백복령 29.1km구간
백복령에서 삽당령 18.5km구간을 끝내기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댓재~백복령구간은 꼭지가 하루에 끝낼 수 없는 장거리구간이라
중간쯤인 이기령 가기전에 있다는 샘터에서 비박을 하기로 하고 배낭을 꾸리니
텐트며 침낭, 하룻밤의 살림살이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기예보는 계속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다.
아무리 대간에 미친 부부라고 하지만 우중에 비박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대간을 하면서 마른자리 진자리 가릴 수도 없는 일...
이저래 머리도 무거운데 배낭을 드니 그 무게의 중압감에 산행도 하기 전에 쓰러질 것 같다.
때마침 말년휴가 나온 막내가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어른 눈에는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지만 아이들은 그것도 공부라고 항변한다.
‘그렇지! 저 놈을 데리고 가야겠구나.’
“아들아! 산에 가자.”
“....?”
뜬금없는 아비의 말에 아들이 고개를 돌리며 멍하니 쳐다본다.
“아빠 무거운 배낭 좀 지고 가자.”
“.......?”
그냥 산에 가자면 안가겠지만 배낭 들어달라면 기꺼이 들어줄 아들..
막내는 고등학교 다닐 적에 월악산, 가야산에도 함께 오른 경험이 있어서 등산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지만 큰놈은 산이라면 질색이다. “내려올 산 왜 힘들게 올라갑니까?” 어쩌고저쩌고..
인생도 살다보면 내려올 날이 있을 터인데..
그래서 짐꾼(?) 막내를 데리고 집을 나서니 시계는 밤10시를 넘어서고 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대구에서 태백은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이지만 이제는 출근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길이 되어버렸다. 피재에 도착하니 새벽2시, 삼수령이란 이름에 어울리듯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빗님 대가족의 이별.. 이럴 때는 읽기예보가 좀 틀려주면 좋겠지만..
그러나 희망사항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피재정자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에 지난번에 남겨놓은 귀네미골-댓재 구간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정자에는 이미 불빛이 어른거린다. 우중에도 어느 대간꾼이 벌써 비박을 하시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비좁은 승용차 안에서 새우잠으로 새벽을 맞이한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물가족의 장단소리가 흥겨운 밤..
처음부터 비는 우리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작년 이맘때 지리산에서 대간을 시작할 때도 비와 친했고
가을에는 거의 전 구간에서 비를 홀딱 맞으며 진행했다.
눈을 뜨니 새벽5시, 빗소리는 여전하다.
휴게소 자판기에서 커피한 잔 빼먹고는 지난번 하산했던 귀네미골로 향하는데
새벽 어둠과 안개로 인하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마을입구를 지나쳤다가 다시 백 하여 버스정류장이 있는 <귀네미로>마을 입구를 찾았지만
마을에서 안부까지 올라서는 임도길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어서 찾기가 힘이 든다.
지난번에 택시타고 내려온 길이지만 안개 속에서 몇 번 헤매고 나서야 능선안부에 도착한다.
06:00 운무 가득한 귀네미골
댓재까지 6.2km,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꼭지를 위로하지만
우의를 입고 산문에 드는 내가 안쓰러운지 염려하는 꼭지의 눈길을 애서 외면한다.
아들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물 한 병만 넣은 간단한 배낭차림으로 산문에 든다.
무성하게 자란 잡풀과 싸리나무가 지난번에 왜 꽁지를 뺏느냐며 물 폭탄을 퍼붓는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더위 탓이여~~.’
변명을 늘어놓아도 소용이 없다.
10분여 수풀을 헤치고 진행하니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임도길이다.
좌측으로는 배추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운무가 가득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임도 따라 내려서니
달맞이꽃과 개망초가 함초롬히 피어서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10분여 임도길을 내려서니 ‘큰재’ 이정표가 나오고 등로는 우측산길로 접어든다.
빗속의 무장공비 같은 내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지만 밀린 숙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짐을 벗어내듯이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이렇게 행복한 무장공비도 있었을까.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있는 낙엽송들의 부대끼는 소리를 들으며
운무속에서 더욱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장목 숲을 지나 황장산에 오른다.
정상석 대신 <댓재 0.6km, 큰재 4.4km> 이정목이 반갑게 맞아주나
신갈나무와 잡목이 산 사면을 메우고 있어 맑은 날에도 조망이 되지 않아 보인다.
이곳에서 댓재까지는 10분여 포근한 산길로 이어진다.
▲황장산 가는 길
▲황장산
▲댓재휴게소
그 후
댓재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기다려보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우중에 꼭지와 아들을 데리고 두타, 청옥을 넘어 비박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셋이서 삽당령구간을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라 동해바다로 향합니다.
"가자! 동해바다로.. 비오는 날은 바다가 최고!"라며 대간하다 말고
삼척해수욕장으로 기수를 돌려 휴가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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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하다 말고 추암 촛대바위에서 망중한
대간하러온 것도 잊은 채 삼척해수욕장에서 실컨 놀다가
저녁 6시쯤 댓재휴게소에 도착하니 빈방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시 동해시로 그 꼬부랑길을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근처에 숙박할 때가
없느냐고 물으니 하장읍내에 가면 모텔이 하나 있으니 거기 가보라고 한다.
하장은 댓재와 백복령, 삽당령에서 접근하기도 좋다.
15분여 걸려 하장읍내 한 모텔에 도착하니 빈방이 하나 남았다고 하는데 시설은 별로지만
가격(30,000원)도 적당하고 댐 아래에 위치해서 계곡으로 조망도 좋다.
모텔이 해발고도 640m에 위치하다보니 아예 방안에는 에어콘이 없었고
밤에는 추워서 뜨끈뜨끈한 보일라를 틀어 줄 정도였으니 하장에서 에어콘 장사했다간 말아먹기 십상일 것 같다.
결국 비박대신 이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댓재에서 삽당령까지 47km의 산행을 마치게
되니 대간하면서 처음으로 모텔에서 뜨거운(?) 밤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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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2008. 8. 17(일) / 댓재-백복령 구간
연일 터지는 금메달 소식...
감격스런 올림픽뉴스를 보다가 모텔에서 밤늦게야(12시경) 잠이 들었지만
긴장한 탓인지 휴대폰 알람소리에 얼른 눈이 떠진다. 새벽 3시,
창밖을 보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어제 백복령-삽당령 구간을 마친 덕분에 마음은 홀가분하고 몸도 가볍다.
두타 청옥만 넘으면 나머지구간은 차량접근거리와 대중교통이 좋아서 이어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기에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타 청옥을 넘고 집으로 가야한다.
비장한 각오..
꼭지와 막내를 깨워서 짐을 차에 옮기고 모텔을 빠져나온다.
새벽 4시, 도로에는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오늘처럼 안개가 낀 날은 환상적인 운해를 보던지
아니면 아무것도 못 본채 운해 속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댓재-백복령구간은 거리(29.1km)도 멀지만 결코 쉬운 구간이 아니다.
보통은 배낭을 가볍게 하여 당일에 끝내지만 꼭지에게는 무리라는 생각에 비박을 하며
1박2일로 느긋하게 잡았으나 비 때문에 하루를 까먹어버렸다.
그래서 꼭지와 아들은 연칠성령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여 차량을 회수하고
나를 태우러 백복령으로 오기로 하였으나 아들이 중도에 마음을 바꿔 아빠따라 끝까지 종주하겠다고 한다.
때문에 계곡으로 하산한 꼭지가 홀로 무서움에 떨며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꼭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앞으로 낯선 길에는 절대 꼭지를 혼자 보내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7일간의 사랑
댓재에 도착하니 4시15분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한 대 정차되어 있지만 산꾼은 보이지 않는다.
비박용 큰 배낭은 차에 실어두고 꼭지의 배낭은 아들이 지고 꼭지는 유산객 차림의 가벼운 배낭을 지고 간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짐이 될 때도 있고 서로의 짐을 덜어줄 때도 있다.
그것이 가족인 것이다.
▲댓재의 이정표 (04:18)
대간은 철쭉나무사이로 이어진다. 드디어 두타의 품에 드는 시간..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떠나는 길이 두타행이라고 했으니 걸음걸음 소흘할 수가 없다.
짙게 내려앉은 밤안개로 2~3m 앞도 분간하기 힘들지만 길이 뚜렷하여 알바 할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한동안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더니 '햇댓등'에 닿는다.
직진은 돌로 막아놓았고 대간은 9시방향으로 급하게 꺾이며 경사를 내려선다.
고도가 조금 떨어지더니 안부에 닿는데
이정표에는 두타산이란 표기는 없고 통골-댓재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를 확인하니 두타산은 통골 방향이다. 이정표를 지나니 길은 다시 오름으로 이어진다.
힘든 오름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행여 일출을 보려나 싶어 바삐 능선에 올라섰지만 예상대로 운무로 인하여 조망이 되지 않는다.
▲3일만에 맛보는 따스한 햇살 (06:11)
▲통골재 (06:16)
얼마나 벼르던 두타산이었던가.. 아쉬움이 밀려온다.
대부분 두타 청옥에서 멋진 운해를 보았다고 했지만 우리는 복도 많아서 운해 속에 묻혀서 간다.
이것도 복이라면 복인가 보다. 아름드리 적송들이 온 몸으로 애교를 부린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만큼 아름다운 나무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들이 그러한 나무들을 보며 신기해한다.
이른 아침의 투명한 햇살이 그들 사이로 한없는 부드러움을 풀어놓는다.
3일 만에 맛보는 빛의 향연이다.
매미도 신이 나는지 입이 째져라 울어댄다.
오늘을 위해 7년을 기다린 매미는 겨우 7일을 살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간다.
어찌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으랴.
"그래, 마음 것 울어라."
가는 여름이 야속하고 서러울 테지만 목청 것 외치는 사랑의 노래소리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아~ 뜨겁던 7일간의 사랑이여~~
두타의 사랑이여~~!
두타 청옥을 만나기 위해 3일을 기다린 우리.. 아니 50년을 넘게 기다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도 매미와 다를 바 없으리라.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떠나는 두타행
두타산에 오르니 맨 먼저 묘지가 눈에 띤다.
그 뒤에는 듬직한 정상석이 반기고 <두타산성 경유 무릉계곡 6.1km>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두타산성을 거쳐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고 쉰움산(683m) 능선으로 하여 동해로 내려서는 길도 있다.
쉰움산의 뜻은 쉰(50)개의 움(우물)이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바위와 소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하니 언젠가 이 길도 꼭 걸어보리라 생각을 한다.
그리고 두타산성에도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이 백두대간을 넘어 강릉을 거쳐 동해로 쳐들어왔을 때
바닷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두타산성으로 피난 와서 의병을 조직하고 왜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왜군 5천명중에서 살아간 자 고작 몇 백 명에 불과했지만
피아간 일만 여명이 사망하면서 산성아래 무릉계곡은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내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넓은 정상부에는 희고 노란 들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그때의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무릉계곡방향에서 올라오신 산님이 한 분 쉬고 있어서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고 가져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는다.
어제 저녁에 강원도쌀로 밥을 지었더니 밥맛이 너무 좋아 도시락 두 개를 게눈 감추듯이 비운다.
샘터에 내려가 식수를 보충하고 청옥산을 향해 길을 나선다.
▲두타산 (07:30)
▲박달재 가는 길 (08:23)
▲박달재 (08:43)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언제 저놈이 저 만큼 컸을까.
아들 어깨위에 세상의 어떤 무거운 짐이 내려앉는다 하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성큼성큼 지고 갈 것 같다.
산길에서의 고요한 시간들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온전한 자신을 만나게 해준다.
오늘 아들도 두타의 뜻을 가슴속에 새기며 갈 것이다.
두타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깊은 숲속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하였듯이
산길을 걷는다는 것 보다 자신의 수양에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박달재에 내려서니
우천시에는 계곡유수가 급격히 불어나 위험하니 계곡으로 하산하지 말고
댓재로 하산하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숲길을 지나 미끄러운 너덜길을 올라서니 청옥산이다.
조망은 없지만 새둥지같이 생겨서 포근한 느낌이 드는 산이다.
靑玉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청옥산이라는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청옥은 불교의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7가지 보석중의 하나라고 하니 정말 깨끗한 기운을 가진 산일 것이다.
▲청옥산 가는 길의 너덜 (08:57)
▲청옥산 학등(학등경유 무릉게곡 6.7km) (09:26)
▲청옥산 인증샷 (09:30)
▲수랑이 풍부한 청옥산 샘터
넓고 편안한 느낌의 청옥산정에는 산님 두 분이 쉬고 있다가 인사를 건넨다.
우리가 힘들어 보였는지 시원한 물 한잔하라며 물병을 내미시는데 그 말 한마디가 고맙고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 같은 이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샘터로 내려간다.
다음 샘터(이기령 2km전)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여기서 식수를 충분하게 확보해 가야한다.
산림청에서 세운 산림욕 안내판을 보면서 아들에게 삼림욕의 효과를 얘기해준다.
산림욕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주고 스트레스를 다 날려 주는데 그 신비한 효능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피톤치드(러시아말로 phyton(식물)과 cide(다른 식물을 죽인다)의 합성어)'라는 정유물질에서 나온다고 한다.
나무는 자기 특유의 향기와 신선한 산소를 내뿜는데 이것이 바로 자기 방어물질인 '피톤치드'라는 것이다.
피톤치드는 수목들이 각종 병균과 해충, 곰팡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쉴 새 없이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이지만 우리 인간에게도 유익하여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신진대사 및 심폐기능을 강화하며 신경조직의 이완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길을 걷는 다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비법인 셈이다.
고적대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아들도 이제 조금씩 산에 동화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연칠성령 안부에 도착한다.
이정표에는 ‘연칠성령정상’이라도 표기되어있고
<↓사원터 경유 무릉계곡 6.7km / ←청옥산 1.3km / →고적대 1km > 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원래 아들과 꼭지를 이곳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시키기로 계획했지만 아들은 끝까지 종주하겠다고 한다.
잠시 갈등을 한다. 아들을 엄마 따라 억지로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꼭지를 혼자 보내기가 염려가 되지만 꼭지를 믿자.
100m에 가까운 대야산빙벽의 로프구간을 내려올 때도 믿음대로 잘 해주었다며 자신을 위로한다.
나중에 힘들어할 아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고통가운데 있음이니
그러한 아픔도 겪으며 인내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배낭을 점검하고 자동차 키와 휴대폰 밧데리가 조금밖에 없다하여 아들의 휴대폰도 건네준다.
준비는 끝났다. 그 대신 아들과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백복령까지 가야한다.
시계는 이제 겨우 10시를 가리킨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온 것 보다 더 먼 17km, 8시간을 더 가야할 것이지만 마음은 가볍다.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를 해동삼봉이라 일컫지만 그 중에 고적대도 영동의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두타가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 고적대라고 하니 어찌 고적대를 올라보지 않으랴.
오늘 구간 중 최고의 전망대인 고적대, 여기까지 와서 꼭지가 이곳을 놓칠 수는 없다.
그래서 꼭지더러 고적대까지는 우리와 함께 올랐다가
연칠성령으로 뒤돌아가 하산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꼭지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연칠성령 10:10 (고적대 1km, 무릉계곡 6.7km
▲가파른 고적대 오름길
▲고적대 오르는 작은 암봉에 선 아들 (10:24)
▲고적대 사면에 핀 가을의 천사 쑥부쟁이
고적대 오르는 길이 만만하지 않다.
아들이 처음으로 힘들다고 투덜거릴 정도로 바위가 많고 가파르다.
조망이 좋은 곳을 오를 때는 원래 힘이 더 드는 법이라며 아들을 다독거린다.
바위사이로 곱게 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보면서 벌써 가을이 저만큼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고적대는 봉우리지만 속리산 文藏臺처럼 대자가 붙은 산임으로 당연히 조망이 으뜸이다.
서쪽으로는 파도처럼 넘실대며 다가오는 산마루가 참 아름답지만 동쪽은 운무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몇 조각의 빵으로 간식을 먹으며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꼭지는 연칠성령으로 우리는 백복령으로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길을 나선다.
▲두타 청옥과 더불어 해동삼봉이라 일컫는 고적대 (10:51)
▲고적대에서 바라본 정선방향
▲고적대를 내려서며.. 운무가 휘감아도는는 갈미봉 능선 (11:13)
고적대를 10분정도 내려서니
하늘을 뒤덮었던 운무가 갈미봉능선을 휘감으며 선경을 연출한다.
아들이 내려서다가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멈춘다.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요동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구K2산악회에서 매달아놓은 비닐표지가 있는 갈미봉을 내려서니 아들이 힘들어하며 자꾸만 걸음이 뒤로 처진다.
내로라하는 대간 꾼도 아닌 병영생활만 하던 아들에게는 29km의 대간거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산길은 부드러워 걷기는 좋다. 운치 있는 소나무숲길을 지나니 백복령에서 시작했다는 세분의 산님을 만난다.
오늘 처음만나는 대간꾼이다. 반가워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어디서 출발했는지 묻는다.
우리와 같은 시간에 백복령을 출발했다고 하니 앞으로 7시간은 더 가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7시간? 이제 반 틈? 아들이 아찔하던지 한숨을 짓는다.
▲고적대 삼거리 (무릉계곡 6.5km) (11:27)
▲갈미봉 (12:04)
▲갈미봉에서 이기령 가는 길 (12:08)
계속 꼭지와 통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 된다.
좌측사면으로 한참동안 이어지던 돌너덜이 끝이 날 즈음에 꼭지와 겨우 통화가 된다.
잘 내려갔다고 하니 마음이 안정되어 다리에도 속도가 붙는다.
곧이어 장의자가 두 개 놓여있는 샘터에 닿는다. 선답자들의 리본이 많이 걸려있는 곳이다.
웅덩이 샘터라 물벌레도 보인다. 하지만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맛이 시원하고 좋다.
라면을 끓여서 점심을 먹고, 식수를 충분히 보충하여 길을 재촉한다.
산에만 오면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빨리 내려가려고 안달을 하니 내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샘터 가기전의 긴 너덜 (12:36)
▲이기령 2km전방에 있는 샘터 (12:50)
▲샘터에 있는 선답자들의 흔적들
가장 힘들었던 이기령에서 백복령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예보는 저녁부터 내린다고 했는데 벌써부터 비가 오다니 투덜대며 우의를 입는다.
잡풀과 싸리나무가 많아서 스틱으로 빗물을 털어내면서 진행한다.
소나무숲길이 번갈아 나타나더니 이기령에 당도했지만 이곳에서 알바 아닌 알바를 하게 된다.
5분여 상월산을 오르다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길이 맞나 의심이 든다.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상월산 오르는 길이 동쪽 이기동으로 하산하는 길로 착각하고 만다.
왔던 길을 다시 내려와 이기령에서 임도 쪽으로 길을 찾아보아도 표시기도 보이지 않고 발자국 흔적이 없다.
아들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우리가 올라갔던 길이라며 다시 올라가자고 한다.
휴대폰도 불통지역이라 누구한테 물어볼 때도 없어 더욱 불안해지는데 그때 계곡방향으로
리본과 이기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보인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길은 대간이 맞는 것이다.
아들 말이 맞았지만 내려왔다가 또 올라가는 해프닝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아들이 마음이 불안했는지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기령 가기 전 이정표 (13:40)
▲이기령의 이정표 (14:00)
▲헬기장인 가짜 상월산 ((14:37)
▲진짜 상월산 (14:58)
이기령에는 전방으로 임도가 가로지르고 있지만 임도는 대간길이 아니다.
임도 옆에는 간이 야영장이 있고, 대간은 임도를 건너지 않고 바로 우측 산길로 붙는다.
한 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야 960봉 헬기장에 오른다.
상월산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만 이곳은 상월산 전위봉으로 가짜다.
헬기장을 내려가 다시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면
고목이 쓰러져있고 그 열에 장의자가 설치된 970봉이 진짜 상월산으로 보인다.
북쪽으로는 시야가 트여 조망이 좋아 보이나 운무 때문에 시계는 제로상태
상월산을 내려서니 고도는 걱정스럽도록 계속 떨어진다.
얼마나 떨어 질려나 가는데 까지 가보자 하며 포기할 쯤에야 원방재가 허리를 내놓는다.
▲상월산에서 원방재 가는 길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15:18)
▲고도 640m의 원방재 (15:30)
고도(손목시계)가 겨우 640m의 원방재
“아빠 나 더 이상 못가겠어.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 드디어 우려하던 아들의 목소리
아직도 8km, 4시간이나 남았는데 큰일이다.
장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1022봉까지 400m에 이르는 고도를 또 끌어 올려야 하는데 과연 아들이 잘할 수 있을까.
아들을 믿자.
아들에게는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젊음이 있고
그 젊음 하나면 지옥 끝에 있더라도 살아나올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을 취하며 쉬엄쉬엄 간다 해도 어둡기 전인 7시까지는 도착할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내 몸은 금방금방 피로가 회복되어서 컨디션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아들의 배낭을 다 짊어져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답자들이 힘들다고 한 것을 보면 앞으로 남은 구간은 틀림없이 오르내림이 심할 것이다.
어느 산이든지 후반부의 빨래판능선은 매우 힘든 법이다.
▲1022봉 헬기장에 세워진 이정표 (16:33)
▲1022봉 헬기장에서 힘들게 마지막 이륙준비를 하는 아들 (16:33)
원방재를 올라서니 한동안 유순한 길로 이어지다가 가파른 나무계단이 진을 빼기 시작한다.
헬기장인 1022봉에 오르니 “아~! 무슨 산이 이래.” 하더니 아들이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백복령까지 5km, 시간을 얘기하면 아예 질릴가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한다고 아들을 위로한다.
비는 그쳤지만 빽빽한 싸리나무와 산죽이 빗물을 쏟아 부어서 등산화가 질퍽거린다.
오히려 그 감촉이 시원하다.
능선은 예상대로 오르다 내리다를 반복하니 파도타기가 따로 없다.
987봉을 오르는데 가파른 나무계단에서 아들이 걸음을 멈추며 또 쉬어가자고 한다.
배낭을 아빠가 지고 가겠다고 해도 아들은 괜찮다며 극구 만류한다.
계속 물만 마시더니 이제는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것을 보니 탈진은 하지 않을 것 같다.
남은 식빵 세 조각에 잼을 발라 아들에게 주었더니 맛있게 먹는다.
그것을 먹고 나서야 체력이 회복되는지 그때부터는 뒤쳐지지 않고 따라온다.
<백복령3.5km> 이정표를 보면서 이제는 기어서라도 가겠구나 하며 걸음을 재촉하지만
그 이후에도 봉우리를 두세 개를 더 넘고서야 백복령에 도착한다.
반가워하는 꼭지의 마중을 받으며
아들이 “이제 다 왔어~~!” 하고 만세를 부른다.
▲오늘 두타행의 종착지 백복령 (18:31)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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