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영남알프스

억새는 밤을 새워 운다 (배내봉-간월산-신불산)

산사랑방 2011. 10. 5. 07:10

 

 

 

 

06:20 배내봉에 올랐다.

찬란한 일출과 더불어 밤새 흐느껴 울던 억새는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어둠은 억새잎에 쓸려나갔다.

 

 

 

곧이어 햇살이 그 빈자리에 넘쳐흐르자

억새의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이 보석처럼 빛났다.

 

 

 

그 황홀한 광경을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산님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영남알프스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억새는 밤을 새워 운다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신불산-파래소폭포-배내골)

 

2011. 10. 02. (일)

 

꼭지와 둘이서 약 7시간 (05:40 - 12:30)

 

 

 

 

 

가을날 꽃으로 피어난 억새를 바라보면 웬지 슬프고 속이 빈듯이 허전하다.

 

꽃은 번식 본능으로 피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사랑이 없으면 쉽게 꽃을 피우진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조금만 자기에게 관심이 소홀하면 입을 삐죽거리다가

곧 시들시들해진다. 영남알프스에는 사계절 쉬지 않고 꽃이 핀다. 그것은 많은 사람

들이 영남알프스를 사랑하고 아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억새는 물론 쑥부쟁이와 구절초도 그 중의 하나이다. 특히 배내봉에서 간월산가는

길은 구절초 천국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억새도 좋지만 꼭 이 길을 걷고 싶어진다.

 

 

 

7년 전인가 그때는 비가 억수로 내렸다. 그래도 주저없이 꼭지와 우의 입고 우산

쓰고 이 길을 걸었다. 그래서 3시간 동안 알바하며 죽을 고생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만큼 배내봉에서 간월산 가는 길은 우리에겐 많은 추억이 깃든 길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혼자서 간월재에서 비박도 해보았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쓸쓸했다.

물론 꼭지가 없어서 외로웠겠지만 더 큰 허전함은 배내봉에서 간월산 능선의

가을꽃향기 때문이었으리라.

 

 

 

 

 

뒤돌아보면 그냥 밋밋한 능선일 뿐인데도 후회없이 걷고 또 걷고 싶은 길...

 

 

 

걸음내내 시야가 트여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등산로 곳곳에 핀

들꽃들은 발걸음을 잡고 늘어지는 곳, 억새가 피기 전부터 꼭지가 빨리 가자고

보채는 곳이기도 하다.

 

 

 

<간월산에서 바라본 울산 앞바다>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연휴기간에 영남알프스 억새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혼잡함을

피하려면 일찍갔다가 일찍 오는 것이 상책이라 하산은 파래소폭포를  거쳐서 배내골

로 잡았다. 12시쯤에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면 차량을 회수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으리

라 판단했는데 산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땡전 한 푼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간월재에는 텐트가 오색물결을 이룬다. 간월재 중간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어서 축제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피아노소리에 맞추어 억새가

춤을 춘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 싶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가을이 온다.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억새는 밤을 새워 울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영남알프스 이정표에는 시간이라든지 거리표시가 전혀 없다.

오직 화살표만 있을 뿐이다. 영남알프스는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하산할 때 혹시 스틱이 썩지 않았나 살펴볼 일이다.

 

 

 

 

 

간월재를 올라서면 억새너머로 영축산, 시살등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신불공룡능선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억새평원에는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다.

소슬바람에 억새는 춤을 추고 산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억새평원을 오른다.

 

 

 

드넓은 억새평원에 산객마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황량할 것인가.

억새 숲은 결코 혼자 걸어서는 안 된다. 혼자걸으면 너무나 외롭기 때문이다.

 

 

 

산거북이님은 어제 이곳에서 비박을 한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다.

얼굴이라도 보고 갈려고 전화를 했지만 연결 되지 않았는데 넘 지쳐서

집에 계신다는 문자가 왔다. 담아 갈 풍경들이 더 많아졌다.

 

 

 

영축산에서 오룡산-염수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은 환종주의 백미구간이다.

언제 또 걸어볼 수 있을지...

 

 

 

신불산을 뒤로하고 예정대로 파래소폭포로 하산로를 잡았다.

길은 능선의 암릉따라 이어지는데 계속 조망이 트이는 것이 매력이다.

 

 

 

능선에는 벌써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구절초는 마지막 향기를 흘린다.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영축산 억새평원>

 

갑자기 꼭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하산해서 회를 먹자고 한다.

"회를 먹으려면 바다로 가야지." 하며 바지 호주머니를 만지니 지갑이 없다.

으잉! 내 지갑? 어찌 이런일이... 어디서 잊어버렸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간월산 가는 길에 업드려서 들꽃을 찍을 때 바지에서 흘러내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회는 물 건너 갔지만 집에 갈 일이 더 걱정인듯...

사자평을 바라보는 꼭지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궁하면 통한다는데 어찌 되겠지' 꼭지를 위로한다.

 

 

 

그래도 산에 있는 지금 이순간은 행복할 뿐이다.

 

 

 

 

 

앙산한 나무가 사자평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나뭇가지는 삶에 대한 미련을 툭툭털고 열매만 대롱대롱 매달았다.

한 가지에 나고서도 잎들은 서로 가는 곳을 모른다며 누이를 잃은 슬픔을 토로한

월명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 또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무의 눈빛이 너무나 싱싱하고 맑게 빛나는 것을 보면 가을은 결코 슬프

거나 이별의 계절만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이 마지막 전망대다. 여기서 파래소폭포까지는 40여분 걸린다.

암봉을 내려서면 미끄러운 숲길로 이어진다. 임도를 건너 파래소폭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따라 내려서니 우측에서 계곡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신불산자연휴양림 파래소폭포>

 

 

 

버스시간을 확실하게 몰라서 산거북이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12시45분에

배내골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땡전 한 푼 없이 어떻게 버스를 탄다? 버스 기사에게

칼을 들이댄다? 어쨋거나 버스 시간까지는 가 봐야지 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배내골 버스정류소에 도착하니 12시 35분이다. 차 시간은 10분이나 남았다.

산거북이님이 혹시 버스를 놓지지 않았나 걱정되었던지 전화가 왔다. 일찍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고만 했다. 설마 기사에게 칼 들이댄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곳에서 서울에서 오셨다는 구세주 같은 산님부부를 만났다.

 

어제 신불재에서 비박하고 배내골로 하산했단다. 오늘은 죽전에서 사자평으로

산행을 한다고 했다. 우리의 사정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호쾌히 교통비를 건네주었다.

고맙다며 송금해드리겠다고 했더니 거듭 사양하면서 인연이 되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산에서는 모두가 한가족 같다. 작다면 작은 것이지만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같이 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 그분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배내고개에 내려 차량을 회수를 하고 도로를 곱게 물들인 코스모스를 보면서

우리의 삶의 향기 또한 가을꽃 향기만큼이나 따스하고 훈훈하다는 것을 느꼈다.

 

 

 

<배내골에서 배내고개-언양 방면 버스시간표>

 

 

ㅡ 끝 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