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품지 않고서는 산을 볼 수 없다 '가야산 동성봉'
산은 멀리서 바라볼 때 진정한 산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산을 품지
않고서는 결코 산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멀리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를 더욱
혼미하게 할지 모를 일이지만 아름다움이란 꽉찬 것 보다 여백의 공간을 채우는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그 해답을 풀어주는 곳이 바로 가야산이다.
2011. 9. 4. 꼭지와 둘이서, 약 6시간
백운동 주차장-동성봉-칠불봉-서성재-백운동 주차장
동성봉은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라 발자국의 흔적조차 지우는 마음으로 다녀와야 한다.
대간할 때는 유명한(?) 곳은 대부분 금지구역이라 마음이 쓰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봉암사를 품에 안은 희양산을 통과할 때의 마음이 그랬는데 오늘 동성봉능선이 그렇다.
동성봉 들머리는
구조목 가야 05-02 <탐바로 아님>지점에서 시작한다. 마애불을 지나 동성봉 주능선까지는
30-40여분이 걸린다. 길은 뚜렸하기도 하고 때로는 희미하기도 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이 답사 산행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능선에 올라서니 곳곳에 산성의 흔적이 뚜렸하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이라고 전하는데 성안에
용기사가 있어서 용기산성이라고도 불린다. 고도 1000m높은 곳에 위치한 성터.. 이끼낀 돌 하나
하나에 그 당시 전쟁과 부역에 시달리던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든 듯 하다. 이러한 성터의
흔적은 동성봉까지 드문드문 이어진다.
국립공원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시멘트로 만든 이정표가 정겹다. 뒤면에는 화살표가
아래쪽으로 <해주암 0.8km>이라고 쓰여있고 키 큰 산죽이 길을 연다. 사실은 이 길이
백운동에서 칠불봉 오르는 가장 오래된 옛길이 아닌가 싶다.
서성재에서 오르는 길은
철계단을 설치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었지만, 이곳은 칠불봉까지 로프구간도 없을
뿐더러 겁이 많은 꼭지도 자연지형지물을 이용해 쉽게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955봉으로 추측되는 암반위에 앉았다. 첩첩이 이어지는 산들의 풍경에 취한 듯 푹 빠진 꼭지,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라 하면서도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니 그 심보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맞은편에는 만물상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뒤로는 오도산과 두무산,
비계산이 서로의 자태를 뽐내며 하늘아래 구름을 이고 섰다.
능선에는 이러한 묘지가 두 군데나 있다.
묘지를 지나 우거진 산죽길을 헤치고 올라서면 우측으로 바위암봉이 언듯언듯 시야에
들어온다. 짙은 녹음 때문에 지나치기가 쉽지만 우측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반석위
에 올라서면 이렇게 시원하고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산을 왜 멀리서 보아야 하는지..
낮으면서도 올랑졸망하게 아름다운 이러한 산들의 풍경은 가야산만의 매력이다.
꾾어질 듯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산들, 그 사이를 비집고 산허리를 감아도는 강과 푸른
들판이 빚어내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신선이 부러워하는 인간세계가 바로 저기
있건만 우리는 그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신선의 부러움을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닌지..
산과 산 너머로 겹겹이 늘어선 봉우리가 아침안개의 고요한 침묵속으로 잠겨든다.
하늘바위가 있다던데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발아래로는 가야산관광호텔과
이른 시간의 텅빈 주차장만이 휑하다.
꿈틀거리는 만물상 능선 뒤로는 그리움릿지 구간의 바위군상들이 사자봉을 향해
포효한다. 그 뒤로는 남산제일봉이 '나 제일이네' 하며 고개를 내밀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비계산은 길게 누워 늦잠을 즐긴다.
갑자기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청명한 하늘빛의 햇살이 쏟아진다.
아! 벌써 가을이네.
암벽사이로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쑥부쟁이가 꽃을 피웠다.
점점 가야산 정상이 가까워진다. 칠불봉은 운무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칠불봉 아래로 전면에 보이는 봉우리가 동성봉인가 보다
멀리서 보면 어디가 길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길은 더욱 뚜렸해지고
육감적으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따르다 보니 어느덧 동성봉이 지척이다.
길은 계속 우회길로 연결된다.
동성봉 사면에는 산오이풀이 실타래에 감긴 실을 풀어내듯이 한창 꽃봉우리를
풀기 시작했다. 산오이풀이 피었다면 가을의 전령 구절초도 가만있지 않으리라.
그러나 구절초는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거대한 바위군으로 형성된 동성봉 정상부, 공룡이 허리를 구부리고 기어내려가는 듯한 형상이다.
오르기가 까다로워 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동성봉은 가을꽃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동성봉을 내려서며..
가야할 운무속의 칠불봉과 멀리 우두봉(상왕봉)을 바라보니
신선세계가 다로 없어 보인다.
암벽아래에 다다르니 우측으로 우회하라고 빨간 페인트가 길을 안내한다.
여기서부터는 육감보다 빨간페인트가 우선이다.
암릉아래의 우회길은 대부분 너덜겅이라 길이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 간혹 리본이
보이긴 하지만 10~20m간격으로 안내하는 빨간페인트만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절벽의 바위사면은 온통 바위취로 물들었다.
바위취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지만
작고 여린 그 부끄러움에 차마 자세히 바라볼 수가 없다.
고도 1400m지점, 나무에 칠해진 빨간 페인트와 리본사이로 꼭지가 길을 연다.
동성봉에서 40여분이 걸린 것 같은데 고산식물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하다
보니 천혜의 원시림속에 갖힌 기분이다.
날머리를 벗어나니 상왕봉은 신선이 노니는 듯 신비스럽기만 하고
칠봉봉에는 상아덤을 바라보던 산오이풀이 고개를 돌려 반긴다.
칠불봉에서 뒤돌아본 동성봉 능선
칠불봉 바위틈으로 고개를 내민 쑥부쟁이와 순백의 구절초를 만났다. 한 줌의 흙에
뿌리를 내렸어도 한겨울 혹한의 추위와 타들어가는 뙤약볕을 견디고 꽃을 피웠기에
대견스럽고 장할 뿐이다. 그들을 두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우주의 막내둥이가
초롱초롱 눈을 떴다고...
그들이 내미는 가을의 초대장,
아! 드디어 가야산에 가을이 왔구나!
가야산 산행지도 / 출처 : 국제신문
ㅡ END ㅡ
'일반산행 > 가야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물상 비경속으로 (가야산) (0) | 2011.09.27 |
---|---|
가야산 산행안내도 (0) | 2011.09.07 |
숨겨둔 연인 '수도가야 종주' (0) | 2011.06.01 |
가야산 육대신장(六大神將) (0) | 2011.03.21 |
가야산 일출산행 (0) | 2011.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