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연인 '수도가야 종주'
2011. 5. 29. (일)
백운동주차장-가야산-두리봉-단지봉-수도산-수도암
산사랑방 홀로
수도가야는 나의 숨겨둔 연인이다. 그런만큼 1년에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과
포옹은 진하고도 슬프다. 2004년 첫 선 이후 매년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2007년과 2008년에는 대간에
미쳐서 잠시 헤어져야만 했고 작년에는 낙동이 발목을 잡아서 서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야만 했다.
그녀를 만난 햇수는 만 7년이지만 오늘로서 다섯 번째인 셈이다.
04:30 -------------- 성주 백운동 주차장
06:50 ------------------- 가야산 우두봉
08:18~08:25 ------------ 두리봉(1133m)
08:35 ------------------------- 분계령
10:40 -------------------------- 목통령
11:10 ------------------ 용두봉(1124봉)
12:20~12:50 ---------- 좌일곡령(1257봉)
13:35~13:45 ------------- 단지봉(1335m)
15:45 ------------------- 수도산(1317m)
16:30 --------------------수도암(1050m)
휴식포함 12시간(약 24km)
금년에는 4월말에 꼭 만나기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달이나 늦은 오늘에서야
길을 나선다. 올해 만큼은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고 흐믓하게 했다. 늘 그래왔듯이
숨겨놓은 애인을 만나러 가기에 꼭지를 떼 놓고 가는게 예의다. 그대신 꼭지는 나를 데려다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도대체 서방이 숨겨둔 애인을 만나러 가는데도 차로 태워주고 태워오는 마눌이
세상에 어디있을까. 꼭지가 고마울 뿐이다.
연록의 초여름 산빛은 만물상 능선을 타고 서성재를 지나 이미 정상부까지 부지런을 떤다.
해인사 방향을 바라보면 늘 마음이 설렌다. 지리산에서 힘차게 달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보이기 때문이다.
4시30분, 백운동 주차장을 출발하여 서성재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훤히 밝았다. 랜턴을 끄고
서성재를 올라서니 연분홍의 화사한 철쭉이 꽃길을 열어주며 반긴다. 4월말 진달래 필 때만 다녀오다가
가야산에서 만개한 철쭉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를 만날 때면 늘 꽃단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수도가야' 그녀가 나는 좋다.
수도가야의 매력은 이런 풍경이다. 끝없이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산사면을 곱게 물들이며 차오르는 신록의 산빛은 그녀의 고운 몸짓이다.
나는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다.
서로의 교감만 있을 뿐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닿아 길게 뻗어내린 지리산능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가야산에서 지리산을 보기는 쉽지 않다. 흐린날 인데도 불구하고 시계가 맑은 덕분이다.
칠불봉에 올라서니 구미 금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지맥 능선과 우측으로는 뻗어내린
유학산 능선은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더불어 선경을 연출한다.
칠불봉을 내려와 상왕봉 가는길은 온통 털진달래 꽃길이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지리산 세석고원에도 털진달래가 만개하였으리라는 생각... 애인을 만나러 와서
또 다른 애인을 꿈꾼다. 그렇다고 그녀는 질투하는 법이 없다.
이른 아침에 그녀가 건네는 꽃다발
꽃대문 뒤로는 또 지리산능이 비친다. 반 틈만 핀 철쭉, 그것 또한 여인의 마음이다.
가야산 우두봉(상왕봉 1430m)
우두봉 뒤로 돌아가면 암반위로 이렇게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나의 연인 수도가야 능선이다.
(2009. 4. 26.) 가야산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수도가야 능선
2009년에는 진달래는 물론, 4월말경인데도 눈꽃까지 동시에 피워주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위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4월말과 5월말의 산빛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갈색톤의 침묵하던
산빛이 5월에는 생동하는 신록의 물결로 가득찼다. 한폭의 수채화다. 이곳에서 수도산에
이르는 20여km의 산줄기가 꿈에서도 그리던 '수도가야' 나의 연인이다.
곱게 핀 털진달래가 내려다보는 금오산과 유학산 자락도 좋고
보고 또 보아도 수도가야 능선은 황홀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옹골차고 장쾌한 산줄기...
가야산에서 두리봉(1133m), 용두봉(1124봉), 좌일곡령(1257봉), 단지봉(1335m), 수도산
(1317m)으로 이어지는 능선뒤로는 덕유산 주능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산길은 평균고도 10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때묻지 않은 원시적인 숲길이다. 산죽과 잡목,
덩굴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발목을 낚아채기도 하고, 옷소매를 잡아당기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싸리나무로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기기도 한다. 이는 그녀의 별난 애정표현이다.
녹음짙은 숲을 빠져나와 헬기장을 올라서면 가야산이 잘가라며 잠깐 얼굴을 내민다.
수도지맥 갈림길인 두리봉은 조망이 없어서 아쉽다.
여기저기 군락을 지은 앵초가 햇살을 삼킨다. 벌써 여름인가 보다.
언제부턴가 분계령에 출입금지 팬스가 쳐졌다.
2008~2017년까지 분계령에서 가야산까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지 않던가? 죄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목통령에 내려서니 단지봉이 5km 남았다고 알려준다. 그녀와 헤어질 시간도 얼마남지 않은듯...
용두봉에 오르니 가야할 좌일곡령과 단지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그냥1124봉이라
부를 때는 산님들이 오르기도 까다롭고 하여 그냥 지나치곤 했다. 동네 주민들이
여자 젖꼭지 같이 생긴 봉우리라 하여 용두암봉이라 이름짓자 그 후론 산꾼들이 앞다투어
봉우리에 올랐다. 길이 반질반질하다. 애인의 젖꼭지를 무턱대고 밟고 다니면 안되는데...
가야산에서 두리봉 그리고 목통령...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준희'님이 용두봉이라는 팻말을 걸어놓았다. 바위가 크면서도 앙증맞은 젖꼭지 형상이다.
좌일곡령가는 길은 너덜지대가 많아서 제법 험하다. 아직 한번도 그녀와 키스를 한적이 없
었는데 오늘 첫키스를 했다. 잠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돌에 걸려 땅바닥에 넘어진 것이다.
포옹하고 키스하고... ㅉㅉㅉ
좌일곡령에서 뒤돌아본 가야산... 저 능선을 걸어온 것이다.
수도산과 우측 산중턱에 자리잡은 수도암도 보인다. 수도암은 이곳에서 3~4시간 거리에 있다.
한없이 부드러운 능선 가야할 단지봉의 철쭉군락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서 오란다.
단지봉에서 지나온 가야산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정도의 시야가 전부다.
철쭉나무와 싸리나무가 키가크기 때문이다. 철쭉은 70% 정도 개화한 상태다.
예전에는 '민봉'이라는 작은 정상석이 아래쪽 헬기장 위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큰 정상석이 새로 생겼다.
정상부는 철쭉으로 화원동산을 이루었다.
두리뭉실한 단지봉의 철쭉
단지봉을 내려서면 덩굴나무가 길을 막고 자꾸만 옷깃을 잡아끈다. 헤어지기 싫어하는 그녀의 앙탈이다.
수도지맥인 양각산 능선이 가까워진다.
중촌리 방향
뒤돌아본 단지봉
고도가 서로 비슷한 단지봉과 좌일곡령, 가야산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수도산 뒤로 하늘을 경계짓는 덕유산라인이 시원스럽다.
수도산과 가야산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수도산에서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을 보고 홀딱 반했었다.
2004.4.25 (06:16) 첫 만남 때의 풍경
이른 아침 동살이 낮게 비쳐든 수도산에서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이 풍경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상에 저렇게 곱고 부드러운 능선도 있구나' 감탄사를 연발했다. 4.5km의 능선이 막 피어오르는 봄빛과
더불어 한 폭의 그림같았기 때문이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저 생동하는 산길을 걸을 수 있다면...
'그래 우리 1년에 딱 한 번만 이맘 때에 만나자' 그녀와의 약속,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막바지 오후 햇살이 비쳐든 지금의 능선은 이른 아침처럼 평온하고 아련한 느낌은 없다.
원래는 '수도가야'라는 이름대로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종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금지구역이 생겨나면서부터는 쉽지않게 되었다.
산행 종착지 수도암은 859년(신라 헌안왕3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수도암은 수도산자락 1050m 고지대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 1250년이나 된 고찰인 수도암에
도착해서 딴전을 피우며 잠시 그녀와의 이별할 시간을 갖는다. 보수중인 대적광전도 둘러보고
삼층석탑에 다가가서 부처님께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를 여쭙기도 한다. 탑 너머로 한송이
연꽃처럼 피어오르는 가야산이 신비로워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삼층석탑(보물 제297호)의 몸돌 감실에 도드라지게 새긴 여래좌상>
홀로 외롭게 서있는 석등앞으로 다가섰다. 화려하지 않아 이름은 없지만 연화문이 새겨진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석물이다. 창건이래로 하루도 꺼지지 않는 등불을 간직한 석등,
그 사각의 작은 문에는 파란하늘과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림이 넘쳐든다.
고개를 돌리니 이미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소리없이...
ㅡ END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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