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속의 정원 덕유산 (삼공리-향적봉-백암봉-빼재)
2007. 6. 17 (일) 흐리고 맑음
산사랑방 홀로
▲하늘속의 정원
-산행경로-
02:30 삼공리 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04:00 백련사
05:25 향적봉
05:40-05:50 대피소
06:20 중봉
06:40 백암봉(송계삼거리)
07:45 횡경재
08:05 싸리덤재
08:40 못봉(지봉)
09:00-09:10 월음령(달음재)
09:50 대봉
10:20-10:30 갈미봉
10:56 헬기장
11:15 빼봉(?)
11:45 빼재 890m (신풍령/수령) -산행종료-
13:40 삼공리 주차장
총 산행거리 : 휴식포함 9시간 15분 / 21.62km (삼공리→10.6←백암봉→11.02←빼재)
일출 05:08 / 일몰 19:45
차량이동경로 : 117km (서대구-거창I.C-빼재-삼공리주차장)
차량회수 : 빼재에서 구천동까지 도로따라 걸어서 회수 ( 9km / 1시간 50분소요 )
아마 BP20 덕분인 듯.~^^
상오정마을에서 구천동행 버스시간 : 11:10 / 13:20 / 16:40 / 18:40
식수위치 : 송계삼거리(백암봉)에서 빼재까지는 없음
산행개요
북진하는 백두대간은 덕유산구간을 지날 때 주봉인 향적봉을 외면한 채
백암봉(송계삼거리)에서 빼재로 바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대간을 시작하면 언제 또 보려나 싶어 오늘은 향적봉에서의 일출과
덕유평전의 야생화도 만나볼 겸 미답지인 횡경재에서 빼재까지 답사해 보기로 한다.
육십령에서 빼재까지는 32.5km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라 보통 삿갓대피소에서
1박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하루에 끝내야 할 수도 있다.
그때는 할미봉구간이 아니면 이 구간에서 야간산행이 불가피하므로
주위의 아름다운 산군들을 미리 보아두고 싶기도 하다.
대간 고수님들 왈,
대간이라는 것이 늘 변수가 많고 어느 한 구간 쉽게 지나는 데가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사전답사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대간이란 것이 악천후에 알바도 하며 생고생도 좀 해야
대간 맛이 날건데 너무 알아도 재미가 없지 않겠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든다.
나에게만은 비켜가기를 바랐던 대간병(?)
처음 덕유종주 때처럼 설레고 긴장되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뜨니 12시
이 꼭두새벽에~~? 나에게도 서서히 대간병이 드는가 보다.
병(?)중에 대간병이 제일 무섭다던데~~~~@
24시김밥집에서 김밥을 사고 한적한 88고속도로를 원 없이 밟는다.
거창I.C에 내려서 무주방향 37번 국도를 타고 삼공리에 도착하니 02:30
주차관리소와 탐방안내소에는 예상대로 인적이 없어서 안심을 한다.
예전에 꼭지와 이 시간에 매표소를 지나갈 때는 행여나 잠자는 직원이 깨어나 야간산행 어떻고 하며
잡히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이마에 불도 끄고 발뒤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처럼 조용히 통과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자판기의 커피까지 빼먹으며 한 것 여유를 부린다.
5시까지 향적봉에 올라야 일출을 볼긴데 싶어 커피 잔을 손에 든 채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일기예보는 흐리고 구름 많다고 했으나 구천동 하늘에는 별빛만 초롱하다.
“역시 일기예보는 틀려야 재미있어..” 혼자 중얼거리니
‘구천동 수호비’가 어둠을 뚫고 우뚝 서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구천동의 슬픈 이야기
1951년 7월 구천동..
경찰과 주민들은 빨치산의 총 사령관이었던 이현상 주력부대가 무풍면 철목리에서
벌한재로 넘어온다는 정보을 입수하고 벌한재로 매복을 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도착한 이현상부대가 공격을 가하여 대부분이 전사하였다고 한다.
그해 9월 사방봉의 전투에서도 이현상부대에 패하고, 11월 안지들 전투에서도 패하여
고향을 지키겠다던 구천동 주민들이 거의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천동에는 한 날 한 시에 수 십 가구에서 제사를 지내는 애석한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또한 반동분자의 처자식이라며 현두식소위의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저지른 빨갱이들의 만행은
너무도 끔직하여 차마 여기 글로도 옮길 수가 없을 정도이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칠봉약수와 칠봉 들머리인 인월담과 인월암의 입구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천수만 형상의 바위가 어우러진 구천동 계곡
오늘도 역사의 애달픈 슬픔을 씻어내려는 듯 물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달빛아래에서야 제 빛을 드러낸다는 월하탄도 슬픔에 잠겨 숨어버렸고 인월담을 안내하는
두 장승만이 어둠속에서 긴 그림자로 객을 맞이해준다.
이곳은 칠봉약수와 칠봉을 오르는 들머리이기도 하여 눈여겨 봐 둘 필요가 있다.
04:00 백련사에 도착했으나 승방은 모두 어둠 속에 잠겨있고 가로등 하나가
있는 힘을 다해 희미한 빛을 발하며 절간을 지키고 있다.
혹시나 스님들의 단잠을 깨우지나 않을까 이마의 불을 끄고 발걸음조차 죽이며 산문에 들어선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름 길, 향적봉까지는 1시간여 땀깨나 흘려야 한다.
▲야간산행.. 어둠과의 교감
▲찰라의 순간에 떠오른 해
몸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호흡소리가 연신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세상사 시름 그 속에 다 묻혀져가니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 또한 행복인 것을..
어떤 분들은 야간산행이 참 좋다고 하던데 난 아직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진정한 산꾼이 되려면 어둠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덕유산 향적봉
▲무주리조트 때문에 길도 없어지고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칠봉
▲향적봉에서 바라본 남덕유방향
▲요술부리는 하늘
향적봉이 가까워지자 반짝이던 별빛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하늘을 덮은 검은 구름띠만이 속을 태운다.
비록 동녘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기는 하지만 구름에 가려 오늘도 일출은 기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일출산행을 위해 몇 번이나 덕유에 올랐으나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일출을 본 적이 없다.
언제 쯤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혼자 투덜거리니
실타래 뽑아내듯 요술을 부리며 낮게 깔린 운무가 향적봉을 휑하니 넘어간다.
하늘정원에 핀 야생화
대피소에서 백도하나와 김밥 한줄로 아침을 대신하고 이제는 무념무상, 하늘정원 덕유의 꽃밭에 든다.
노랗고 하얀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어 반겨주고 그들은 산등성이위로 피어오르는 운무와 더불어 선경을 연출한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덕유평전은 들꽃들의 향연으로 산꾼들을 위로할 것이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덕유의 주 능선은 차라리 선경이다.
▲주목 넘어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
▲덕유의 꽃밭에서 바라본 안성방향
▲야생화 만발한 중봉에서 바라본 송계삼거리(백암봉)
운무에 가려 남덕유와 서봉은 시야에 보이지 않으나
뾰족 솟아오른 삿갓봉까지의 환성적인 마루금과 멀리 파도처럼 굽이치는 산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해병대와 종주를 하면서 중봉에서 남덕유까지 끝없이 펼쳐진 마루금을 바라보며 감격한 적이 있었다.
돌이 되어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중봉에서 바라본 대간의 마루금
▲중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주 능선과 하늘도 찌를듯이 오똑솟은 삿갓봉
▲백암봉(송계삼거리 이정목)
▲뒤돌아본 중봉
백암봉에서 횡경재를 지나 지봉아래 싸리덤재까지는 돌부리 하나 없는 편안한 육산이다.
그래서 짙은 녹음 때문에 조망은 없지만, 대간 길 마주 오는 산님들과의 인사도 좋고 초여름의 숲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도 좋다. 키 작은 산죽과 부드러운 낙엽길이 어우러진 등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어 걷는 맛이 참으로 좋은 곳이다.
▲가야할 빼재방향의 대간 길
▲빼재까지 이어지는 편안한 낙엽길
▲남쪽 북상면과 시루봉방향의 조망
송계사 갈림길인 횡경재를 지나 싸리덤재까지는 유순한 길이 이어지는데 싸리나무가 유난히 많다.
그래서 그런가, 재의 이름도 싸리덤재라고 한다. 이정목은 목을 길게 빼어 인사를 건네고
구천동 방향으로는 ‘등산로 아님’ 표지목이 세워져 오히려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좌측 사면의 처녀치마 군락지를 지나 고도250m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30여분 힘들게 치고 오르면
향적봉과 칠봉이 지척에 보이는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올라서면 아주 조망이 멋진 못봉(지봉)이다.
▲송계사 갈림길인 횡경재
▲싸리덤재
▲못봉(지봉)
▲뒤 돌아본 멀리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마루금
옛날에 이곳에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못은 아마 헬기장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연못속으로 흰구름이 흘러가면 마치 연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여 못 池자를 써서
지봉이라고도 한다는데 정상석에는 『못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는 칠봉과 운무에 싸인 향적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군들의 조망이 너무나 좋다.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거창의 산군들..
▲야간 산행때 달그림자가 아름다울 것 같은 월음령(달음재)
▲월음령에서 바라본 가야할 대봉
거창의 산군들.. 그 조망이 아름다운 대봉
달빛이 아름답다는 월음재, 그곳에서 바라보는 북상면의 시골풍경도 정겹다.
여기서 대봉오름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키 작은 잡목이 많아 남쪽으로 드문드문 조망이
트이고 거창의 아름다운 산군들도 아른아른 눈 속에 잠긴다.
그들을 바라보며 40여분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이름에 딱 어울리는 ‘대봉’인데
조망이 그야말로 기가 막힌 곳이다.
▲멀리 기백산과 금원산 그 아래 현성산도 시야에
▲하얀 찔레꽃 너머로 좌측은 갈미봉 우측은 호음산
▲대봉에서 뒤돌아본 못봉(지봉)과 멀리 남덕유산
▲보아도 보아도 황홀하기만한 기백 금원산 방향의 산군들
지나온 대간따라 눈길을 돌리면 삿갓봉까지 덕유의 주 능선이 선명하고 남덕유산과 서봉은
운무속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그 아래 월봉산으로 이어지는 칼바위와 금원산과 기백산라인이 참 좋다.
좌측으로는 가야할 갈미봉이 오똑하다. 갈미봉에서 대간은 좌측으로 틀어져 빼재로 향하게 되고
우측 호음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금방이라도 달려오라는 듯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가야할 갈미봉과 거창의 내 노라 하는 명산들의 조망
▲특별한 조망권이 없는 갈미봉
별 조망이 없는 갈미봉을 내려서면 대간은 뚝 떨어지는 급경사 비탈길로 변한다.
너무 급경사라 조심조심 내려선다. 20여분 내려섰을까 편안한 낙엽길이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오름길이 없겠다 싶었는데 또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꼭지와 함께 온다면 “또 오르막이야.” 하며 무척 투덜거릴 구간이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끝까지 쉬운 곳이 없다더니 역시 대간 길이로구나.
어느 분이 마지막에 빼봉이라는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던데 여긴가 보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봉우리를 내려서니 멀리 절개된 빼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많은 무리의
산꾼들이 지나간다. 아마 빼재에서 출발한 분들 같다.
이때부터 빼재까지는 유순한 숲길이 이어져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
▲빼재에서 뒤 돌아본 빼봉(?), 그 뒤로는 갈미봉
▲빼재에 세워져 있는 「수령(秀嶺)」표지석
빼재의 유래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수령(秀嶺)」즉 뛰어난 고개라는 뜻의 고상한
이름을 붙여서 현재는 「수령(秀嶺)」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휴게소는 폐업을 하여 을씨년스럽고 대중교통 한대 지나가지 않는
이 홀대받는 고개를 이름만 고상하게 짓는다고 뭐 달라질게 있을까마는
듣기는 약간 거시기 해도 ‘빼재’라는 이름이 정겹게 들린다.
개인적으로 옛날에 빼다귀 많던 곳이라 하니 그냥 빼재라고 부르고 싶다.
빼재(수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안내비’에는 빼재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빼재”라는 이름이라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BP20의 효과(?)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무주쪽으로 4km거리에 있다는 상오정마을에 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정보도 있고,
시간도 남아돌고, 앤돌핀 팍팍솟는 유산소운동이 걷기이고, 거기다 산꾼은 걷는 게 전문인데 싶어
도로 따라 스틱을 휘두르며 털래털래 걸어 내려가기로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보통 20여km의 산행을 하고나면 다리가 아프고 무릎이 얼얼하여 10분도 도로를 걷기가 싫어져
금방 택시를 부르곤 했었는데 오늘은 다리도 무릎도 전혀 아프지가 않다.
오히려 다리에 힘이 남아도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싶어 원인분석을 해보니
아마도 lockey™님의 BP20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상오정 마을까지만 걷기로 했으나 1시간이나 있어야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기도 뭐하여
아예 삼공리까지 걷기로 한다. 하늘에도 구름이 가득하여 덥지도 않고 걷기는 딱 좋는 날씨다.
이곳저곳 시골풍경을 구경하며 1시간여 걸으니 삼공리 주차장이다.
유명하다는 전주식당에 들러 버섯찌개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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