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만물상
백운동 주차장-만물상 능선-서성재-백운동 주차장
07:20~12:00 (4시간 40분)
금강산 만물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붙여진 가야산 만물상,
만물의 군상들이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저 마다의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능선은 성주 백운동에서 서성재에 이르는 약3km에 이르는 탐방로다.
만물상 능선은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연보호 등의
명목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끈질긴 요구로
지난 달 12일에 개방되었다. 만 38년만에 일반인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만물상 능선이 개방되기 전에는 성주 백운동에서 출발하던지
해인사에서 출발하던지 원점회귀밖에 할 수 없는 단조로운 코스였으나 만물상
능선 덕분에 성주 백운동 코스가 최근에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듯하다.
하산 했을 때는 백운동 넓은 주차장에 이중삼중으로 차들이
빼곡히 들어찼을 뿐만 아니라 도로까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앞으로
넘쳐나는 등산객들로 인해 만물상코스에 일방통행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2008.8.24. 칠불봉 하산길에 바라보았던 만물상 능선>
그동안 정상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는 언제 저 능선을 걸어볼까 하며
아쉬움을 달래다가 개방된다는 소식에 많이도 기뻐했었다. 개방 되는 날 바로 가자며
꼭지와 약속했으나 한 달이 지난 오늘에야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탐방안내소 맞은편, 만물상 들머리>
벼르고 별른 산행이었건만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창에 빗방울이 맺히더니
이슬비가 소곤소곤 내린다. 우의를 입기는 어중간하여 배낭 카바만 쉬우고 들머리에 올라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38년만의 만남, 비를 흠벅 맞아도 좋겠고 오름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은 즐거울 것만 같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달콤하고 짜릿하게 느껴진다.
돌계단과 미끄러운 마사토 흙길이 30여분 이어진다.
지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코가 땅에 붙을 정도로 급경사다. 꼭지가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들어하더니 40여분 올랐을까 드디어 더 이상 못올라가겠다며 주저 앉는다.
이러다 정말 쓰러지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에 혈색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8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등산객이 엄청 많이 올라온다.
등산로가 좁아서 올라오는 산객들 때문에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지의 상태가 호전되길 기다리며 묘지 옆의 빈터에 앉아 한참동안 휴식을 취한다.
10분 쯤 지났을까 꼭지가 기력이 회복되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지 능선을 지났지만 힘든 만큼 고도가 쉬 올라가지 않는다.
고도계를 보니 750m, 들머리에서 이제 겨우 250m 정도 올라온 셈이다.
상아덤까지는 앞으로 300m 더 올라가야 되지만 꼭지에게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길이 수훨해진다며 스틱으로 잡아 끈다.
숲길의 좁은 암릉구간 사이로 오름과 내림이 이어진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이르자 억년의 세숼을 풍미했던 만물상 기암들이
하나 둘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발뒤꿈치로 살짝만 건드려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기암
꼭지가 바위를 밀며 장난을 칠 정도로 이제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산은 가끔 우리를 무섭게 채찔질 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우유빛 안개때문에 몽롱하기만 했던 산빛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드디어 하늘이 움직이고
솜털같은 구름이 바람결에 흩어지며 비경을 연출한다.
"와~!구름이 걷힌다."
갑자기 산객들이 외친다. 우리 마음도 환하게 밝아지고
만물상은 잠자리 날개 같은 하얀 속옷을 한 겹 두 겹 벗어 던진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탄성을 지르고 신빛은 더욱 푸르러진다.
때로는 혼자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석문을 통과하기도 하고,
나무둥치를 붙잡고 바위를 타넘기도 한다. 까다로운 곳은 나무 계단과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산행하는데 위험한 곳은 없어 보인다.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생긴 만물의 형상들.. 거대한 코끼리바위,
부처를 닮은 바위, 책바위, 토끼바위, 남근바위, 소바위, ,두꺼비바위, 고릴라바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오만가지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뒤돌아 온다.
정견모주!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그녀는 가야국의 여신이었다.
가야산은 6가야국의 주산으로서 이곳 상아덤에는 높고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 착한 마음을 지닌 정견모주라는 여신이 살고 있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기로 큰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해 정성으로 소원을 빌었다.
여신의 정성에 감동한 하늘신 '이질하'가
어느 봄날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이곳 상아덤에 내려와 정견모주와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를 낳았다. 형의 이름은 '뇌질주일'이라 하였고
아우는 '뇌질청예'라 하였다. 형 뇌질주일은 자라서 대가야국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 뇌질청예는 금관가야국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출처 : 상아덤 안내문>
<상아덤>
상아덤에서 가야국의 전설을 뒤로 한 채 서성재에 내려섰다.
이슬비는 여전히 소근대고 안개는 더욱 짙게 깔렸다. 오늘 우리는
산 속에서 산을 훔쳐보며 행복해 한 하루였다.
2010. 7. 4. 꼭지와 둘이서
'일반산행 > 가야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야산 육대신장(六大神將) (0) | 2011.03.21 |
---|---|
가야산 일출산행 (0) | 2011.01.04 |
매화산 남산제일봉 (0) | 2010.03.24 |
4월에 핀 서리꽃과 함께한 환상의 수도산-가야산 종주 (0) | 2009.04.27 |
일출보려다가 가야산에서 동태 될 번한 이야기 (0) | 2009.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