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우리말과 옛글

秋夜雨中 / 與隋將于仲文詩

산사랑방 2010. 8. 31. 08:00

 

 

우리나라 한시의 본격적인 진전은 통일신라 때, 東國文宗으로 꼽히는 최치원(857~)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2세에 당나라로 유학가서 18세에 賓貢科에 급제, 중국에

文名을 떨쳤다. 현존하는 그의 시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은 한국 最古의 문집으로 알려

져 있다. 명문장으로 유명한 黃巢의 난 때 그가 쓴 '토황소격문'이 계원필경에 실려있다. 

 

아래는 최치원의 유명한 시 秋夜雨中(가을밤 빗속)인데, 그가 이역만리에서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서 애써서 시를 읊지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회한과, 신라의 혼탁한

정치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여 이미 기울기 시작한 신라에 대한

연민과 세상밖으로 멀리 떠나고 싶은 시인의 인간적 고뇌가 녹아있는 시라고 알 수 있다.

 

 

 

 

'秋夜雨中'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애써 시를 지으나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서 날 알아주는 이 없으니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 밖에는 한밤의 빗속이요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 앞엔 만리를 달리는 마음뿐이네.

 

 

 

 

 

우리나라의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한시는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612년

을지문덕의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는 시(與隋將于仲文詩)로 알려져 있다.

 

6세기 말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등장하여 남북조를 멸망시키고 隋(수)의 2대 황제 양제

는 113만 대군을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 오기 시작하였다. 고구려군과 백성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끝내 요동성이 무너지지 않자 해군과 함께 우중문, 우문술이 이끄는

별동대 30만을 고구려 안으로 들여보내 도읍이었던 평양성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별동대가 압록강 서쪽에 이르렀을 때,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청해 적진으로 들어가

적의 약점을 알아내고 이에 계책을 세운 후 싸움에 패하여 도망하는 척 하였다. 隋軍은

계속 졸졸 따라오다보니 결국 평양성 근처에까지 이르렀고 지친 나머지 전의마져 상실

한 隋軍은 후퇴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희롱의 뜻

을 담은 시 '與隋將于仲文詩'를 지어보내 군대가 물러날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퇴각하던 隋軍이 살수(청천강)를 건너려 할 때 일대 반격을 가하니 별동대 30만 가운데

살아 돌아간 자는 겨우 270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수나라는 끓임없이 우리 고구

려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수나라는 결국 전쟁으로 국력을 소진하고 내부의 반란

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與隋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통한 계책은 天文을 헤아리며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꾀는 地理를 꿰뚫는구나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싸움마다 이겨 이미 공이 높았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족한 줄 알고 그만둠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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