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시름을 잊다. 백두대간15 (갈령-속리산-늘재)
2008. 2. 24 (일) 맑음
꼭지(아내)와 둘이서
일출 07:04 / 일몰 18:15 / 음력 1.18
▲형제봉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 구간별 산행기록
06:40 갈령
07:24 갈령삼거리
07:45-07:55 형제봉
08:40 피앗재
11:02 대목리 갈림 길
11:25-11:35 천황봉
12:40 신선대
13:25-13:45 문장대휴게소
13:55 문장대
14:00 헬기장
16:20 견훤산성 갈림길
16:45 밤티재
17:20 696.2봉
18:15 늘재
총 산행시간 : 11시간35분 (20.62km)
▣ 대간종주거리 : 19.42km / 누적거리 283.96km (포항셀파 기준)
갈령→1.2←갈령삼거리→0.7←형제봉→1.56←피앗재→5.66←
천황봉←2.58→신선대←1.17→문장대←4.45→밤티재←3.3→늘재
▣ 접근(하산)거리 : 갈령-갈령삼거리 1.2km
▣ 총산행거리 : 20.62km / 누적거리 312.16km
▣ 식수위치 : 신선대, 문장대휴게소
▣ 위험구간 : 문장대~밤티재 암릉구간
▣ 교통 : 서대구I.C-화서I.C-화령재-갈령 1시간30분(122km)
▣ 차량회수 : 늘재⇒갈령 10,000원 ( 011-803-6463 )
산행개요 (갈령-형제봉-천황봉-문장대-늘재)
오늘 진행하는 갈령에서 늘재까지의 속리산 구간은
날씨가 쾌청하여 조망이 좋아 속리에 걸 맞는 선경의 풍경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문장대에서 늘재 구간을 지날 때는 죄인이 되어 속죄하는 심정으로 통과하였고
밤티재를 넘을 때까지 혹시나 싶어 긴장감이 감도는 산행이었다.
속리산의 유래는
신라 선덕여왕5년인 784년에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는 것을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 하였는데, 여기에서 속세를 버리고 수도한다는 뜻으로
속리산(俗籬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천년고찰 법주사를 품고 있어 더욱 유명해진 속리산은
우리나라 12宗山의 하나이며 朝鮮八景의 하나로 금강산에 빗대어
小金剛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철 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산이다.
속리산 천황봉은 한강,금강,낙동강 즉 3대 강 發源地이라 이를 삼파수(三破水)라 부르며
안성 칠장산으로 이어가는 한남금북정맥 줄기가 나누어지는 분지점이기도 하다.
속리산에는 8개의 이름(속리산,구봉산,소금강산,광명산,지명산,미지산,형제산,자하산)과
8개의 봉우리(천황봉.비로봉.길상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묘봉.수정봉)
그리고 8臺(문장대.입석대.경업대.배석대.학소대.신선대.봉황대.산호대)가 있으며
8石門(내석문.외석문.상고내석문.상고외석문.비로석문.금강석문.상황석문.추래석문)이 있고
물줄기는 속리산 아홉 구비 돌고 돌아 흐르는데 여기에 놓여진 다리가 8개라고 한다.
유난히 8자(?)가 많은 산, 그래서 속리에 들면 팔자를 고친다?
어쨌든 속리의 8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열반에 들기 위한 여덟 가지 바른길
즉 8正道를 일컫는데 불교색채가 짙은 그 8자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형제봉에서 뒤 돌아본 봉황산과 대궐터산(좌)
▲천황봉에서 바라본 구병산 방향
▲천황봉에서 문장대 가는 길...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방향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가야할 암릉 구간과 늘재 건너 보이는 청화산
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07:55-11:25 형제봉에서 천황봉)
오늘은 늘재까지 가야한다.
문장대에서 이어지는 암릉구간은 출입금지구역인데다 다음주부터는 산불경방까지 합세하니
아무리 간뎅이가 부은 대간꾼이라 해도 지나가기 힘들 것이다.
아니면 산불경방이 끝나는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음이 더욱 다급하여
혼자라도 다녀 올 생각으로
“문장대에서 밤티재구간은 굉장이 무서운(?)구간이라고 하던데 혼자 갔다 올까?” 하고
꼭지에게 넌지시 말을 붙이니
“나도 갈란다. 가다가 못가면 산에서 죽지 뭐~” 꼭지의 대답이 이외로 당차다.
산에서 죽다? 이래서 또 한 사람의 ‘산죽’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진짜 ‘산죽’님이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그래서 속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출발을 한다.
이것이 대간 병?
궂이 병이 아니어도 속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꼭지의 컨디션이 좋다하더라도 늘재까지 가려면 12시간 정도가 예상된다. 보통은 10시간 정도 걸리던데..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빨리 출발해 일출 시작 전에 산행을 하기로 하고
5시에 집을 나서 갈령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다.
해가 뜨려면 30분이나 남았다. 하지만 새벽달이 막바지 빛을 발하고 있어서 랜턴을 켜지 않아도 된다.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길이다. 기온은 영하 10도
그러나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새벽바람은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고 신선하다. 바람 또한 품위와 신선도가 다른가 보다.
처음부터 급경사지만 꼭지가 힘들이지 않고 잘 오른다.
갈령에서 갈령삼거리로 향하는 접근로는 몸을 풀기에도 적당한 1.2km에 거리에
드문드문 기암괴석과 늙수레한 소나무가 어우러져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또한 작약지맥이 지나는 길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고 걸음 내내 속리산 주능선이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대궐터산 능선위로 하늘이 터질 듯한 붉은 기운이 감돈다.
일출이 시작되고 있나보다.
갈령삼거리에 도착하니 이미 부지런한 햇살이 먼저 파고들어 따스함이 능선위에 가득하다.
컨디션이 좋아 형제봉까지 20여분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먼저 천황봉방향으로 눈길이 간다. 능선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동살이 비치는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빛에 타는 듯한 속리의 속살.. 하지만 능선들은 그 빛을 다시 토해낸다.
자연은 이렇듯 한 없이 베풀기만 한다.
부드럽고 찬란한 황금빛.. 어느 화가가 시시각각 변하는 저러한 빛의 색을 그려낼 수 있을까?
빛은 투명하지만 그 속에는 무한한 색이 숨겨져 있다.
능선들이 더욱 또렷해진다. 온 몸이 짜릿한 전율로 휩싸인다.
형제봉에서 조망이 좋다는 것을 익히 들었지만 이처럼 아름다운지는 몰랐다.
처음 형제봉에 올라선 기분, 마치 숨이 멈추는 기분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여~~
▲형제봉 막내의 벌서기
▲형제봉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들
▲상주 화북면 방향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방향
▲화북 도장산 방향
옛 성인들이
이와 같은 아름다운 정경 앞에 서면 두 손을 모아 읍을 하였다고 한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이 숭엄한 장면 앞에서 나는 자신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과연 저 산야를 바라보는 지금의 넓고 황홀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나 하고..
나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지나온 봉황산과 걸어온 대간길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걸어온 만큼 눈에 보인다고 했다.
대궐터산과 도장산도 끼워달라며 손짓을 한다.
구병산은 멀리서 병풍처럼 듬듬하게 속리를 에워싸고 있다.
천황봉까지 7.2km, 3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저 부드러운 능선은 30시간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형제봉을 내려와 무명봉에서 바라본 구병산
▲피앗재
수도-가야종주를 할 때 힘들게 단지봉에 올라 뒤 돌아보는 수도산까지의 능선도 이와 닮았다.
이른 새벽 동살의 그 능선 빛이 좋아 1년마다 한 번씩 봄이면 수도-가야종주를 하곤 했는데
작년에는 ‘실크로드92’에 푹 빠져서 빼먹고 말았지만 오늘 그때의 행복을 맛본다.
걸음 내내 천황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걸어도 걸어도 다시 또 걷고 싶은 포근한 능선이다.
피앗재에 내려서니 철판이정표가 붙어있다. <형제봉1.6km / 천황봉 5.8km>
다정님의 산장 안내판은 한 쪽 구석에 떨어져 있다. 이정표를 보니 다정님을 뵌 것처럼 반갑다.
다시 주워서 이정표에 매달아 놓는다.
지난번에 ‘피앗재산장’에 들러서 다정님 부부를 꼭 만나고 싶었지만 접근거리가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아쉽지만 언젠가는 만나 뵐 날이 있으리라.
세속의 짐을 벗다 (11:35-13:55 천황봉에서 문장대)
등로는 잔설이 얼어서 미끄러운 곳도 있지만 대체로 부드럽고 양호하다.
죽쭉뻗은 적송들이 운치를 더하고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굴참나무 그 앙상한 나뭇가지사이로
언듯언듯 비쳐드는 주위산세의 풍경은 세상 다 잊게 해준다.
오늘은 꼭지의 발걸음도 가볍게 보여 안심이 된다.
전망이 좋은 묘지를 지나 10여분 내려서니 대목리 갈림길 안부다.
고도계는 920m, 천황봉의 고도는 1058m, 앞으로 20여분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할 것이다.
북사면은 빙판이라 미끄럽다. 조심조심 나무뿌리를 붙잡으며 오른다.
뒤를 돌아보면 도장산방향의 능선들이 시야에 들어와 가슴이 확 열리는 듯 하다.
▲대목리 방향의 조망
▲구병산 방향
▲천황봉 오름 길
▲천황봉에서 바라본 법주사 방향
두런두런 위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저 위가 천황봉인가 보다.
안부에 올라서니 정겨운 산죽길이 반겨준다. 좌측으로는 출입금지 팻말도 보인다.
저 너머로 한남금북정맥 또 하나의 산줄기가 떨어져 나간다. 걷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지금은 그쪽으로 눈 돌릴 여유가 없다.
서둘러 천황봉에 오른다.
두 분의 산님들이 식사중이다. 서로 반갑다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분들께 부탁하여 꼭지와 둘이서 정상석을 끌어안고 사진도 찍는다. 속리의 정기를 듬뿍 받아야지..
천황봉!
그 이름을 놓고 “천황봉이 맞네, 천왕봉이 맞네.” 하며 시름이 많았던 봉우리이기도 하다.
최근, 박성태님까지 나서서 천황봉은 일제의 잔재가 아니고 예로부터 서로 혼합하여 쓰여 왔으며
둘 다 순수한 우리의 산봉우리 이름이라고 하니 더 이상의 논쟁은 없었으면 싶다.
천황봉이면 어떻고 천왕봉이면 어떠랴.
지금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그러한 논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문장대, 묘봉으로 흘러드는 산세가 너무나 아름답다.
법주사 방향 멀리 하늘끝에서 부터 첩첩히 몰려드는 산군들의 조망.. 저것이 다 이 세상의 그림이란 말인가.
형제봉에서 놀라고 이제는 천황봉에서 또 놀란다.
역광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형제봉과 지나온 산군들은 안개 속으로 숨어드는 고깃배 같다.
가야할 비로봉과 신선대, 문장대로 이어지는 기암들과, 관음봉, 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신비감마저 감돈다. 잠시 숨 막히는 적막감에 휩싸인다.
▲지나 온 형제봉과 백두대간
▲법주사 방향
▲문장대 가는 길의 주 능선
▲관음봉과 묘봉 방향
왕초보(?) 시절인 2003년 6월
푹푹찌는 더위를 잊기 위해 구운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며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올랐다.
극락도 싫다며 하산하자고 보채는 꼭지를 달래어
“백두대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우리 함 걸어보자며 지친몸으로 천황봉까지 고~~ 했다가
“아예 백두대간 하고 살았뿌라.” 하며 꼭지에게 호되게 당한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 백두대간을 지금 꼭지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천황봉까지 3시간이나 걸렸었는데..
꼭지는 문장대까지 어떻게 갈까 걱정하지만 오늘은 2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산님들로 시끌벅적한 신선대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며
감자전 한 접시를 비우고 화장실뒤쪽으로 간다. 문선배님이 뒤쪽 조망이 좋다고 했다.
앞이 탁 트인 넓은 암반위에는 많은 산님들이 식사중이다.
속리의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칠형제봉, 화북방향의 산군들은 한폭의 산수화다.
신선대라는 이름에 참 어울리는 곳이다.
▲비로봉
▲입석대
▲법주사 방향
▲속리산 칠형제봉
▲계단만 나타나면 힘들어하는 꼭지
문장대로 향한다.
국립공원 속리의 명성답게 많은 산님들이 등로를 가득 메운다.
문장대휴게소 밖에는 이미 않을 자리가 없다. 안으로 들어간다. 장의자와 원목 테이블이 멋있다.
시레기국을 두 그릇 시켜서 가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전투(?)를 위해서..
막걸리도 한 사발 들이킨다. 간을 키우기 위해서..
넌지시 꼭지의 의중을 물어본다.
이곳에서 화북 시어동매표소로 하산할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꼭지의 대답이 시원하다.
“늘재까지 가야지 뭐.” 컨디션이 좋아보였기에 이미 예상한 답이다.
혼자 가기에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또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들일텐데..
힘이 솟는다.
죽어도 부부가 함께 죽는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문장대는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일명 운장대(雲藏帶)라 한다.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있지만 오늘은 다르다. 극락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선답자들이 말하는 빨간 모자?
혹시나 헬기장에 빨간 모자가 떳나 안 떳나? 먼저 그곳에 눈길이 간다.
다행이 빨간 모자도 사람도 아무도 없다. 식사시간이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문장대에는 양쪽으로 철계단이 두 개 설치되어 있다.
하나는 내려오고, 하나는 올라가는 극락과 속세의 양면을 보여준다.
얼른 문장대에 오른다.
동서남북 막힘없이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속리산의 주봉을 문장대로 착각할 만큼..
관음봉과 묘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법주사방향은 또 어떤가? 산은 첩첩으로 파도처럼 이어진다.
가야할 암릉구간에는 3개정도의 봉우리가 뭉쳐져 있다. 저곳에 위험과 스릴의 로프구간이
숨어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 옆에는 칠형제봉이 서로의 미모를 자랑한다. 멀리 청화산도 어서오라며 손짓한다.
오늘로서 우리는 두 번째 문장대에 오른 셈이다.
세 번이 아니라도 이미 속리에 든 순간 우리는 극락에 온 것이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문장대'
▲악명높은(?) 암릉구간 너머로 가야할 청화산을 바라보며
▲들머리인 헬기장과 아름다운 칠형제봉
속리의 산신령님(?)을 만나다 (13:55-18:15 문장대에서 늘재)
문장대에서 돌계단을 내려와 출입금지팻말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길이 반질반질하다.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 갔나보다.
이때는 누구 눈치볼일도 망설일 일도 없다. 무조건 고개를 들이밀며 발걸음을 옮긴다.
대간을 하고부터는 커진 것이 간인데..
한 쪽 공터에는 가족 산객들이 식사중이다. 그들을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금줄을 넘어선 동지가 생겼으니..
들머리인 헬기장에 올라선다. 문장대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오뉴월 햇볕처럼 너무나 따갑다.
애서 시선을 외면한다. 초입부에 리본이 두개 보인다.
억세게 간 큰사람이 걸어놓았나 보다. 출입금지 목책을 넘어간다. 이제부터는 죄인이다.
그러나 가야한다. 대간꾼은 피하지 않는다.
무사 통과를 기원하며 “속리의 산신령님, 인사 올립니다." 꾸벅.~^^*
가지 말라는 팻말을 넘으며 속죄하는 심정으로 속리의 신령님께 인사를 여쭙는다.
“신령님, 한 번만 용서해주이소.” 꾸벅~~넙죽 ^^*
고개를 숙이는데 아늑한 산죽길이 몸을 숨겨준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고수님들이 괜히 무섭다며 뻥을 치다니 혼자 속으로 실소를 머금는다.
10분여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져서 좋아라했는데 “일단 정지!” 하며 좁은 석문이 나타난다.
좌우 양쪽은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이곳 아니면 지나갈 때가 없다.
아하~ 요것이 일명 “개구멍”이구나.
그 소리에 신령님이 가소롭다는 듯이 한 마디 한다.
신령님 왈 “대간꾼들은 이런곳을 '개구멍'이라 하더군. 좀 유식하게 불러주지... 배낭을 벗게.”
배낭을 벗는다. 그래도 안돼서 꼭지의 엉덩이를 밀어 올린다. 바닥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오늘 지은 죄 값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겨우 통과하여 암반위에 올라서니 이제는 하강 로프구간과 빙판길이 기다린다.
세 번째는 내려가기가 약간 애매하고 까다로운 구간이다.
양발을 양쪽 바위에 붙이고 균형을 유지한 채 내려가야 한다. 내가 앞선다.
꼭지도 실수 없이 잘 내려온다. 또 암반에 올라서니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속리의 백미가 여기 다 모였구나.” 탄성을 지른다.
“꼭지, 대충 넘어와. 밉다고 안다리까지 걸 필요야...” 신령님이 핀잔을 준다.
“흐흐흐~ 끝이 아니야. 밤티재 지나면 개구멍(?) 또 하나 있지.”
문장대도 계속 시야에서 떠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 모두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 하다.
빨리 숨어야지. 또 로프를 탄다. 이어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1시간여 계속 로프구간이 이어진다.
어떤 때는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처럼 계속 내려가다가 “이거 알바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쯤 리본은 다시 위로 이어진다. 다행인 것은 드문드문 리본이 걸려있고
리본을 걸 수 없는 곳에는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마지막 암봉에 올라서니 밤티재 건너편의 696봉과 그 너머 청화산이 손짓한다.
“이제 반 틈 왔으니 느긋하게 조망도 즐기며 마음을 놓게.”
“다 와 가네 그려, 저기보이는 봉우리는 ‘청화산’ 일세.”
신령님이 친절도 하시지.~^^*
암봉을 내려서니 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길은 솔가지 폭신한 오솔길로 변한다.
곧이어 이정표대신 바위에 페인트로 표시해놓은 견훤산성터 갈림길이다.
산신령님 이제는 잔소리까지 한다.
“쯧쯧~ 앞으로는 바위에 낙서하지 말게. 이게 뭔가?"
"죄송하옵니다." 극적~~~
“바보! 너들이 가야할 청화산은 그쪽이 아니고.”
“이 쪽이야.”
“이제 다 왔으니 요것만 넘으면 암릉은 끝일세. 길은 좌측에 있으니 앉았다 쉬어 가.”
“여긴 밤티재야. 초소에 인기척 있나 없나 잘 보고(?) 내려 가. 걸리면 나 책임 못 져.”
밤티재에 내려서니 감시초소는 비어있다. 다행이다. 철망이 막혀있어 들머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좌측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대충 능선을 보고 사면으로 붙는다. 아뿔싸 길이 없다.
동물이동통로로 가야했나 보다. 이미 늦어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면을 치고 오른다. 5분여 오르니 주 능선과 만난다.
힘들게 696봉을 오르는데 마지막 남은 개구멍이 또 벗으라 한다. 또 배낭을 벗는다.
17:20 드디어 696봉이다.
고도가 낮지만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생각보다 조망이 좋다.
문장대에서 지나온 암릉구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 길을 어찌 왔나? 가슴이 뿌듯하다.
석양에 물든 산야도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이제 속리의 신령님과도 이별할 순간이 온 것이다.
신령님이 정이 들었는지 농을 던진다.
“여기는 696봉이네. 저기 문장대가 보이는가? 안보이면 다시 갔다 오게.”
"ㅎㅎ.. 설마 요?"
“해가 넘어가는구먼. 배도 고프고 이제 나도 슬슬 가야겠네.”
“꼭지도 잘 가게.”
“신령님도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뵙지요.” 꾸벅.~^^*
법주사 방향, 어느 시골집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정겹다.
조용한 소나무숲길을 지나는데 꼭지의 뒷모습을 보니 속리의 정기를 다 받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늘재에는 350년이 되었다는 음나무와 성황당이 고즈넉한 분위기로 객을 맞이한다.
늘재는 고갯길이 제법 너르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널재라고도 하고
고갯마루가 눌러앉은 형국이라 하여 눌재라고도 한다. 모두 낮고 넓다는 뜻이다.
우리 또한 낮고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텐데..
속리의 신령님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듣는다.
“이제 나와도 작별이구먼, 상병진급(?) 축하하네.”
“신령님, 다음에 또~~.” 꾸벅.~^^*
- 끝 -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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