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리산

철쭉에게 길을 묻다 (지리산 바래봉)

산사랑방 2009. 5. 10. 19:02

 

철쭉에게 길을 묻다 (바래봉)

 

2009. 5. 10.(일) 꼭지(아내)와 둘이서

운봉용산주차장-바래봉-팔랑치-1123봉-주차장(원점회귀)

약6시간 (05:15~11:15)

 

 

 

 

축제기간이라 혼잡함도 피할겸

이른아침의 철쭉과 대면하기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부지런한 관광버스가 한 대 보이고 한산하기만 하다.

 

10시쯤 되면 하산길도 복잡해질 것 같아 서두른다.

랜턴을 켜지 않을 정도로 날이 밝아오는지라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바로 붙으니

등로옆으로 다소곳이 모여앉은 철쭉이 제법 자태를 뽑낸다.

 

 

 

 

 지 능선에 올라서니 철쭉이 참으로 아름답다.

곱게 핀 철쭉너머로 가재마을과 수정봉이 보인다. 제작년에 무더위속에 꼭지와 지나온 대간길인데다

5년만에 만나는 바래봉 철쭉.. 너무 반갑기도 하여 말을 걸었다.

"저어기 쏙 들어간 마을이 주촌리 가재마을 맞지요?"

철쭉이 삐졌는지 대답을 않는다.

"조오기 작은 봉우리는 수정봉, 그 다음은 고남산.. 저 길이 백두대간 맞지요?"

.....................??

 

역시 대답이 없다.

자기에게는 관심이 없고 쓸데없는 대간얘기만 해대니..

'웬 정신나간 놈 하나 올라왔네'하며 철쭉은 대꾸조차 않는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말을 걸고싶다. 

 

 

  

 

 아직 산길은 고요하다.

무리를 지은 몇 몇 등산객들이 서로서로 사진을 찍고 철쭉에 취해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고도 800m지점, 철쭉이 만개한 듯 보여 오늘이 절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철쭉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더욱 화사해졌다.

멀리 운봉읍내가 보이고 그 뒤로 작은 고갯마루 여원재, 백두대간 봉우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을정도로 낮으막한 고남산이 고개를 내민다.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서로 마주하는 형제봉같다. 그 앞에 봉우리는 괘관산일테고 좌측은 백운산일 것이다.

지나온 대간길은 늘 잊혀지지 않는 추억속의 여행과 같다.

산에만 오르면 늘 떠오르는 기억..

 

 

 

 

멀리 고리봉이 보인다.

이번에는 철쭉에게 따져들었다. 대간꾼이 왜 싫으냐고..

그렇지 않고서야 대간꾼을 고리봉에서 고기리마을로 획~ 쫓아보낼리 없기 때문이다.

 

 

 

 

반야봉과 만복대, 고리봉이 손짓한다.

지리산 주 능선중에서 바래봉만 대간에서 쏙 빠졌지만 이곳에서 바라보기는 참 좋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드디어 천왕과의 눈맞춤

 

 

 

 

철쭉이 웃음짓고 있는 바래봉 샘터

가뭄때문에 수량은 적지만 쫄쫄쫄~ 제법 지리의 숨소리가 들린다.

 

 

 

 

왜 산에 오르는가?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사람마다 그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사람들이 왜 기를쓰며 산에 오르는지 철쭉은 알고 있을까?

.................

 

 

 

 

 산길을 걸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대부분 고상한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산에게 시비를 걸고  

꽃과 나무들에게 말을 걸고 길을 묻는다. 그들이 대답을 하건 안하건 혼자 화답하며 중얼거린다. 

산에 다니고부턴 나는 '정신분열증환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팔랑치에 도착하니 제법 활기가 넘친다.

출사꾼은 대부분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그 자리에 하나 둘 산꾼들이 모여든다.

꼭지는 휴대폰으로 동영상 찍는다고 정신이 없고 철죽은 카메라 앞에서

온몸으로 포즈를 잡으며 모델이 되어준다.

 

 

 

 

 철쭉때문일까

팔랑치의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높게 보인다. 가을하늘 같은 날씨..

오늘도 축복받은 산행이다.

 

 

 

 

 왜 산에 오르는가?

山을 모르던 예전에는 가끔 동네뒷산을 오르곤 했지만

그때는 담배피우는 재미로 올랐다. 그 다음에는 정상에서 밥 먹는 재미로..

 

 

 

 

그러다가 담배를 끊은 후 부터는

산에올라 철쭉에게 길이나 묻는 덜 떨어진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는 날은 

그러는 내 자신이 좋다.

 

 

 

 

 꼭지는 왜 산에 오를까?

한 번도 말한적은 없지만 오늘은 산에 가고싶다고 했다.

그것이 산이다.

 

 

 

 

저기 낮은 고개인 여원재에 대한 기억

우중의 운무속에 넘었던 고남산과 봉화산.. 매요휴게소 할매막걸리의 달콤한 맛,

지금은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매요휴게소의

할머니는 지금도 건강하시겠지..

 

 

 

 

팔랑치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골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산줄기가 장관이다. 역시 지리산이다.

 

 

 

 

 

팔랑치에서 뒤돌아본 바래봉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래봉이라 부른다.

지리산의 외톨이지만 전국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명성덕분에 봄이면 철쭉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철쭉은 주차장에서 부터 시작되어

팔랑치에서 절정을 이루고, 저기 1123봉까지 드문드문 이어진다.

세동치에서 청소년야영장으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1123봉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꼭지가 되돌아가면서 철쭉을 더 보고싶다고 한다.

 

 

 

  

 

 

 

 

오늘은 몇 시간 걷지 않았는데도 꼭지가 힘들어한다.

꼭지에게는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고통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늘 함께하는 산행의 동반자다.

해병대부부도 그러하지만 요즘은 통 말을 듣지않아서 미울 때가 많다.

 

 

 

 

덕산 저수지와 수정봉이 또 시야에 들어온다.

철쭉에게 물었다. 수정봉을 오를때 얼마나 더웠는지..

그때 꼭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고..

 

 

 

 

2년여 대간한답시고 꼭지에게 극기훈련만 시킨 것 같아서

올해는 꽃구경을 많이 시켜주려 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비슬산도 혼자, 수도가야의 서리꽃도 혼자

그 아쉬움을 바래봉에서 달랜다.

 

 

 

 

 삼정산 능선을 넘어 천왕을 향한 철쭉..

그대가 누구를 위해 꽃을 피웠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산길의 풍경.. 

 

ㅡ 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