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리산

새해아침의 지리산

산사랑방 2008. 12. 25. 09:04

 

 

                                                  새해아침의 지리산

 

 

  

지리산 중산리

산객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지리의 하늘은 매섭고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다그치는 지리의 눈길을 마주하며

가파른 돌길의 오름

가슴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얀 입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법계사의 하늘

진정 이곳이 부처님이 계시는 곳일 진데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부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없구나.

 

법계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희미한 야경

은빛으로 부서져 내리는 밤의 신비

그 속에서 요동치는 많은 언어들을 잠재우며 서서히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단했던 한해

된비알을 치고 오르며 흘린 땀이 있었기에

고통의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장롱 속에서 굶어죽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지하철에 뛰어들어 육신의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한 뉴스들을 접할 때 마다

산으로 향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었지.

 

그 힘든 다락의 끝이 어디인지 몰라

한동안 더욱 끈질기게 발품을 팔고 다녔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비웃기도 했었고

또 어떤 이는 체력이 대단하다고도 했다.

 

결코 그것이 아닌데..

아닌데.. 
 

고사목 너머의 여명

서서히 대지에 핏빛으로 다가오는 빛의 향연

을유년 새해 아침은 그렇게 모든 것을 감싸안으며 파도처럼 밀려오고

 

개선문을 오르며 내려다보는 지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고요하다.

하얀 눈을 이고 선 우람하고 힘찬 천왕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워 신비롭기 까지 하다. 

  
 

인생의 굴곡과 같은 개선문

저 문을 올라서 천왕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잠시 중산리로 눈길을 내려다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억 겹의 세월에 온몸을 깎이면서도

말없이 수억 년을 그 자리를 지켜온 천왕

 

지금도 칼바람이 전신을 할퀴며 달려드는데

천왕은 그저 덤덤할 뿐이다.

 

인생에는 역전(?)도 있다 하지만

오늘도 

땀을 흘리지 않고는 결코 천왕을 만날 수 없다.


 

 

천왕봉에 오른다.

산객들은 떠나고 잔설만이 남았다.

멀리 반야는 운무에 가려 있고 제석봉에 남겨진 고사목이 슬프다.

 

 


 

 

 

천왕봉은 영하 17도

겨우 사진 두 컷에 손가락을 “호호“불며 주머니 속에 넣는다.

차가운 칼바람이 더 이상 나의 존재를 거부하니


 
 

상고대가 활짝 핀 중봉으로 향한다.

바람 서리꽃이라 했던가?

아~ 저 꽃이 바라보기만 해도 달다는 서리꽃 그 고통의 열매인가..


 

 

 

삭풍에 몸을 맡기고

온몸으로 나목에 꽃을 피우고 있는 상고대,

바람 서리꽃..

우리 인간은 그저 아름답다는 감탄사로 그 침묵을 깨워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천왕은 어떤 모습일까?

맑은 하늘위로 눈보라가 날리고 있었다.

아~ 천왕이여..


 

  

  

다시 왕등재로 밤머리재로 웅석봉으로

언젠가 가야할 태극능선을 향해 시야를 돌려본다. 

  

 

 

 

 

  

북사면의 세찬 강풍은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는 산객의 발자국 조차도 그 흔적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가파른 철계단의 쇠소리가 더욱 가슴을 섬득하게 한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무뚝뚝으로 소문난  산장지기님이 끊여주신 따뜻한 컵라면으로

추위에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달랜다.


 
 

이제 하산 길..

나무계단을 내려서며 산죽을 스다듬으니 진정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곳엔

옛 선비의 기개같은 사철 푸르름이 있고, 여인의 굳은 절개같은 곧음이 있기에..

하지만 열매를 맺고 타들어가는 산죽을 볼 때면 가슴이 저민다.

죽어가기 때문이다.

 

 

 

 

대원사

불교 신도들 보다도 지리산 종주꾼에게서 더 잘 알려진 대원사가 아니던가.

약간의 화려한 단청과 아담하고 단정한 멋이 배어있는 대웅전

여스님들이 계셔서 그런가 보다.

 

굳게 닫힌 대웅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자비의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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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03:30~14:00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올라 대원사로 하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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