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추억의 산행기

꿈꾸는 산행... (비슬산)

산사랑방 2008. 12. 24. 10:59

 

  꿈꾸는 산행... (비슬산)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비슬산琵瑟山

정상부를 더욱 아름답게 떠받치고 있는 수직 암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달밤에 선녀들이 내려와 베를 짜고 올랐다고 해서 베틀바위라고도 하고

두 신선(도성과 관기가 아닐까?)이 바둑을 뜨며 노는 것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그만 속세의 세월을 떠나 백발이 되었다고 하여 신선바위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천년의 세월

멀리서 보면 몽땅연필같은 작은 탑과 대견사터의 전경은

봄이면 꽃동산을 이루는 참꽃과 더불어 비슬산 최고의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철 따라 다르고

오늘과 내일

하루하루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하루

우리가 늘 꿈꾸며 기다리는 산행이기도 합니다.

 

 

 

 

대견봉에서 바라본 가야산 방향

 

 

 

 

대구시 앞산과 팔공산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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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23. 비가 찔끔찔끔 내리던 일요일

꼭지(아내)와 둘이서 / 약 6시간(08:00-14:00)

유가사-도성암-도통바위-정상(대견봉)-대견사지-960봉-유가사

 

 

원래는 덕유산 주능선 따라 산죽과 야생화꽃길에 푹 빠지고 싶었지만

꼭지의 컨디션도 좋지 않고 오후부터 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가까운 비슬산을 찾았습니다.

도성암코스는 미답이라 불사초님의 산행기를 참고하여

하산길도 같은 코스로 잡았습니다.

 

비슬산은 일연선사가 오래도록 머물렀던 산이며 당시에는 포산이라 불렀다 합니다.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의 포산이성浦山二聖 기록에는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라는 신라의 성사가 포산에서 살았는데

관기는 남쪽고개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그곳에서 10리쯤 떨어진 북쪽 기슭 굴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성이 머물렀다는 곳이 지금의 도성암이며 관기가 기거한 곳이 대견사지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성암은 수도도량으로 지금도 외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도성암으로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버리고 도통바위로 바로 오릅니다.

시작부터 급경사 된비알입니다.

어느 때처럼 꼭지가 무척 힘들어하여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올랐습니다.                                                                

 

 

꼭지는 언제쯤 가파른 오름길도 씩씩하게 오를 수 있을지..

아마 그런 날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예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멘트길이 걷기 싫어 등산로따라 오르다보니 그만 도성암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비록 도성암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음에 또 찾으면 되니까요.

 

도통바위에 오르자 하늘은 맑은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다행이

바람이 불지 않아 우의대신 우산을 쓰고 걸었습니다.

노란 우산을 쓴 꼭지와

비 오는 날의 풍경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등로 곳곳을..

비슬산 사면을 헤아릴 수 없이 가득 메우고 있는 야생화

까치수염과 산수국, 기린초, 비비츄, 노루오줌, 꿩의다리, 원추리

그리고 털중나리 등등..

그들과의 만남속에서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주능선에 올랐습니다.

 

 

 

 

 

특히 

지리종주 때

화개재근처에서 만나 감격했던 범꼬리

덕유종주 때 서봉에서 서늘한 바람 되어 지친 몸에 위로를 주었던

그 범꼬리가 대견봉사면에 군락을 지어 피어있었습니다.

더욱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것은

범꼬리 너머 운무속으로 펼쳐지는 겹겹한 산들의 조망이었습니다.

맨 먼저 가야산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오똑솟은 모습은 어디에서나 신기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여름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범꼬리와 오똑솟은 가야산방향의 조망

 

 

 

그리고는 비슬산에서 앞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안개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또한 그 너머로는 팔공산라인이 선명하게 하늘금을 긋고 우리의 눈속에 박힙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앞산까지의 겹겹이 포개진 주능선과 하늘금으로 다가오는 팔공산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 그 “가팔환초”종주코스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언제 다시 이러한 정경들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산은 늘 그러하듯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겠지요.

 

 

 

 

 

 

대견봉에 올라섰습니다.

우산 쓴 꼭지의 모습이 좋고 꼭지의 눈길따라

가야산에서 약간 비켜나 남덕유산이 또 오똑 솟아오릅니다.

그 라인따라 좌측으로 시야를 돌리면 여인의 엉덩이같은 지리산 반야봉이 희미하고

드디어 천왕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동부능선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웅석봉도 맨 앞에 오똑서서 끼워달라며 손짓합니다.

 

 

 

 

 

                                                                 

▲대견봉에서 바라본 가야산 방향

  

 

 

  

           

▲현풍들판과 유장한 흐름의 낙동강너머 좌로는 지리산, 우로는 뾰족한 남덕유산에서 향적봉까지의 하늘금

 

 

 

그 뿐이 아닙니다.

비좁은 바위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모난 비탈에까지 매달려 하늘거리는 노란 바위채송화

그리고 돌양지꽃..

양지꽃 옆 바위위에서 사람이 다가가도 당당하게 몸을 말리고 있는 아기독사..

그들 또한 오늘 만난 풍경에서 모두가 매혹적인 존재였습니다.

 

 

 

 

                                                

▲남쪽으로 담소를 나누는 산객들 너머에는 화왕산인가요?

 

 

 

 

                                                           

▲멀리 영남알프스방향의 조망

 

 

 

 

 

                                    

▲앞산까지의 주능선과 그 너머로 “가팔환초”를 이루는 팔공산의 하늘금

 

 

 

이제 대견봉올 내려서 대견사터로 향합니다.

봄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참꽃군락지가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참꽃대신 미역줄나무와 각종 야생화가 지천에서 반겨줍니다.

 

대견사지는 앞에서 얘기했던 관기가 기거하며 수도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도성암에서 10리정도의 남쪽 고개라면 아마 지금의 대견사터를 일컬을 것이고

양쪽이 트여있는 자연석굴과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물이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은

10여리의 거리를 두고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서로 왕래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도성은 뒷산(지금의 대견봉)에 올라가 좌선을 하다가 하늘로 올랐으며

관기 또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올라 신선이 되었다고 하니

대견사터와 도성암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홀로 외로울 것 같았는데 전혀 외롭지 않아보이는 대견사지 삼층석탑

 

 

 

 

 

                           

▲천왕을 마주하고 우측으로 덕유산과 가야산에 눈길을 떼지 못하는 삼층석탑

 

 

 

무척 외로운 것 같으나 외롭지 않아 보이는

대견사지 삼층석탑

그곳에서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선명하고

우측으로는 남덕유산이 오똑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법보사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 연꽃모양으로 다가옵니다.

천년의 세월동안

그들과 마주했음직한 삼층석탑과 대견사터에는

매일매일

그 거산들의 그림자가 앉아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이러한 명당(?)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배고픔도 잊은 채 한참동안 그곳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길 잃은 망아지처럼 말입니다.

시계가 희미해지고 많은 생각들이 달아날 쯤에야 그곳을 떠나 960봉을 향했습니다.

이곳은 대견사지에서 유가사방향의 하산 길로 기묘한 바위들이 서로를 뽐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바위, 형제바위, 상감마마상투바위, 백곰바위..

그리고 아직 머리(?)를 올리지 못한 숱한 형상들의 바위들도 우리를 반겼습니다.

 

 

 

 

                                       

▲멀리 천왕을 향한 눈길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형제바위

 

 

비록 산행거리가 짧지 않았음에도

꼭지는 예전과 달리 힘들다고 보채지 않았습니다.

“우리 다시 올라가 화왕산까지 갈까?”

대견사터의 정기를 한 것 머금은 꼭지의 농담이었지만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찔끔찔끔 내리고 흐린 날에 뭐 볼게 있을까?”

그러한 의문 속에 시작하였던 산행이었지만

신선이 바라보았던 선경의 세계

그 풍경들이 사실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연과의 만남을 위하여 우리는 늘 산행을 꿈꾸는가 봅니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