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부의 소백산 종주 이야기(죽령~비로봉~구인사)
산행지 : 소백산(죽령-비로봉-구인사)
일 시 : 2004. 09. 05(일)맑음
산행자 : 꼭지(아내)와 해병대부부 넷이서
교 통 : 자가운전
구인사 ⇒ 죽령(택시 35,000원)
01:30 대구출발
02:50 풍기I.C
03:10 죽령휴게소
03:30 죽령휴게소 -산행시작-
05:10 중계소
05:50 천문대
06:00-06:20 연화봉일출
07:40-08:20 제1연화봉(조식)
09:10 비로봉 1,439m
10:50-11:10 국망봉 1,420m
11:30 상월봉갈림길 3거리 (등로주의구간으로 좌측이 구인사방향)
11:50 신선봉 갈림길표지목(좌측이 신선봉,구인사방향 우측이 백두대간길)
12:30 신선봉아래 이정표(구인사7km 비로봉 6.1km)
12:45-13:15 신선봉 1,389m(중식)
14:15 민봉(1,362m)
14:40 계곡 하산길이정표(구인사 5.4km 신선봉 3km)
16:00 계곡끝, 임도도착(이곳에서 임도 우측으로..)
16:15 임도를 버리고 리본따라 좌측 산길로
16:50 적멸궁(상월원각대조사의 무덤)
17:10 구인사 대조사전
17:40 구인사 천왕문 -산행 끝-
18:40 죽령휴게소
총 산행시간 및 거리 : 14시간 10분(25~26km 정도)
(죽령→11.5km←비로봉→3.1km←국망봉→3km←신선봉→7km 또는 8.4km←구인사)
1. 소백산 종주산행의 의미 .........................................
2. 죽령의 고고한 달빛사이로 ......................................
3. 희방사의 은은한 동종소리 ......................................
4. 비로봉의 조망, 그 일망무제 ....................................
5. 마의태자와 국망봉의 전설 ......................................
6. 구인사 가는 길은 어디에 ........................................
7. 신선봉에서의 바둑 한 판 ........................................
8. 구봉팔문(九峰八門) 속으로 그 끝없는 고행길 ..............
9. 구인사는 사찰인가? 궁(宮)인가? ..............................
1.소백산 종주산행의 의미
지리종주(노고단-천왕봉)와 설악종주(서북릉-대청봉-공룡릉)에 이어 우리나라 3대 능선종주 중 하나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 소백종주(죽령-비로봉-구인사), 어쩌면 그 “종주”라는 의미가 “사랑방”에게 더 자극제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소백산에 갈 때마다 그렇게 전망이 좋다는 “국망봉”에 오르고 싶었고 국망봉과 신선봉의 북쪽 지맥에 아홉개의 봉우리를 이루며 그 사이사이 골짜기가 여덟 개의 문으로 되어 있어 절경을 이룬다는 "구봉팔문(九峰八門)"과 그 속에 자리잡은 천태종의 총 본산이자 승려가 450여명이나 수도한다는 “구인사“에도 가보고 싶었지요.
또한 “종주”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랑방”이다보니 가슴속 한 켠엔 늘 시리도록 담아두고 있었던 죽령에서 구인사까지의 소백 종주.. 오늘은 그 응어리를 풀고자 대 부대(?)를 이끌고 구봉팔문(九峰八門)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2.죽령의 고고한 달빛사이로..
죽령(689m)은 대재라고도 하며 삼국시대이래로 봄 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또한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엎치락 뒤치락 불꽃 튀는 격전장이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 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오늘은 인적은 간곳없고 고고하게 부스러지는 달빛만이 그 역사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죽령에 세워져있는 초입의 이정표인데 국망봉이 끝입니다. 그 이후는? 저도 모릅니다.~~@
단산을 할 때는 초입의 이정표가 별 대수롭지 않은 느낌이지만 종주산행 때는 항상 두려움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과연 오늘은 저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을지..
무사히 종주산행을 마칠 수 있을지..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제각각 자기자리를 차지하고 하늘에 매달려 앉아(?) 우주의 정원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반틈 남은 달님도 뒤질세라 시멘트 도로위에 은빛으로 부서져 내리니 굳이 렌턴을 켤 필요가 없어 달빛에 의지해 매표소에 이릅니다. 불 꺼진 매표소엔 인기척이 없어 소곤소곤 조용히 매표소를 통과하니 덕유종주에 이어 또 입장료가 공짜(?)..
봄에는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멘트길이 오늘은 야간이어서 그런지 별로 지루한 줄 모르고 오릅니다. 하지만 완만한 경사길이고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 그래도 힘이 듭니다.
봄에는 꼭지를 스틱으로 끌어당기며 올랐는데 오늘은 꼭지 혼자서도 잘 오릅니다.
3. 희방사의 은은한 동종소리
지루한 시멘트길을 달빛에 의지한 채 1시간여 올랐을까 희방사의 은은한 동종소리가 만물이 잠든 소백산의 정적을 깹니다. 그 동종소리를 들으니 희방사의 전설인 호랑이와 두운스님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희방사는 1,400여년전에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때는 깊은 겨울밤..
흰눈이 수북히 쌓인 어느날, 지금의 사찰자리 허름한 초가에서 대사가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호랑이 목에 비녀가 꽂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대사 왈 "이놈아, 잡아먹을 짐승이 그렇게도 없어서 하필이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잡아먹다 이 꼴이 되었느냐!" 라고 꾸짖으며 비녀를 빼내주었습니다. 그후 호랑이는 대사의 은혜를 갚고자 이번엔 멧돼지를 한 마리 물고서 대사를 찾아옵니다.
이를 본 대사 왈 “이놈아 명세기 나도 중인데 어찌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 너나 갖고 가서 실컷 먹어라” 하고 욕하며 꾸짖어 보냈답니다.
호랑이는 고개를 갸우뚱 가만히 생각하다 “그렇지!”하며 머리를 탁 칩니다.
ㅎㅎ~~~ 왜 그랬을까요?
제 딴엔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서 한건(?) 합니다만 또 욕만 실컨얻어먹고 쫓겨나게 됩니다.
어느 야심한 밤 갑자기 마당에 “쿵~!”하는 소리가 들려 대사가 밖에 나가보니 이번엔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왔습니다. 이번엔 대사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왜냐고요? ㅋㅋㅋ~! 먹도 못하는 것만 자꾸 물고오니 화가 날 수 밖에요 ~~@@
“이놈아~~~@ 나를 여색을 탐내는 땡중으로 아느냐”며 호랑이를 향해 고래고함을 질러 꾸짖어 보내고는 기절한 규수를 따뜻한 방으로 옮겨 의식을 회복하게 해주니 혼례식을 올리던 날 이렇게 저렇게 하여 호랑이에게 물려오게 되었다는 자초지종을 얘기해 줍니다.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의 무남독녀였는데 경주호장은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 코져 이 절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이름 지었다는데 그 유명한 희방사의 은은한 동종소리를 듣게 되어서 오늘 종주산행은 어찌 술술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지루하고 밋밋한 죽령에서의 시멘트 오름길..
모두들 희방사 전설에 귀를 세우며 지루한 줄 모르고 오르다보니 벌써 중계탑입니다.
어둠속으로 이상한 물체가 보입니다. 뭐냐고요? 홀로 곤히 잠자고 있는 헬기입니다.
▼오늘 하늘 한번 날아보나 싶었는데.. 헐~~ 키가 없군요~@@
중계탑을 지나니 편편한 길이라 서서히 속도가 붙습니다.
하늘 저 끝에는 피어나는 화롯불처럼 붉게 동이 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군 중에서 가장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는 소백산.. 그래서 천문대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과연 맑은 하늘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금방이라도 모두가 우수수 땅위에 톡톡 튀어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천문대에서 바라본 연화봉에는 하늘이 벌써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일출이 시작되는 것 같아 서둘러 연화봉에 오릅니다.
▼일출 때 바라본 천문대의 전경입니다.
별이 떨어지면 미끄러지라고 지붕 두껑(?)이 번쩍번쩍 쇠로된 원형인가 봅니다.~^^*.
▼ 일출 바로 전 연화봉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연화봉의 일출을 보며 잠시 쉬어갑니다.
연화봉을 내려서니 바로 신갈나무터널이 이어져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난장이 조릿대도 끼워달라며 손을 흔들고, 이슬 머금은 청초한 벌개미치가 아침 햇살에 아름다운 자태를 뽑냅니다.
▼소백을 온통 감싸고 있는 이슬머금은 벌개미치, 오늘 하루종일 사랑방과 동무하며 꽃길을 열어줍니다.
▼제1연화봉 가는 길인데 언제보아도 저 나무계단은 소백의 상징적인 정겨움으로 다가옵니다.
제1연화봉아래 전망대에서 아침을 먹으며 가져간 양주 한 잔 꿀꺽~~@@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가는 길인데 눈부신 햇살로 덮인 꿈결같은 소백의 능선입니다.
▼가을의 향기가 물신 묻어나는 등로를 셋이서..
▼1395봉을 향하여 ~~
▼저 봉우리를 넘으면 비로봉입니다.
▼지나온 능선입니다.
▼각시투구꽃인데 별로 잘 생기지도 못한 것이 하루 종일 사랑방을 치근 됩니다.
▼비로봉이 저 멀리서 손짓합니다.
4. 비로봉에서의 조망, 그 일망무제..
비로봉(1,439.5m)입니다.
밥 먹고 할일 다하며 쉬엄쉬엄 오다보니 죽령에서 5시간 40여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사랑방혼자 구인사까지 종주를 하고 해병대부부와 꼭지는 비로사로 하산하기로 예정하였으나 모두들 컨디션이 좋아 계속 가겠다 합니다.
무두들 이젠 사랑방을 닮아 조금씩 종주병에 걸려가나 봅니다.
겨울에 그렇게 불러대던 칼바람은 간곳없고 시원한 산들바람이 솔솔불어 드넓은 초지의 풀숲을 파고듭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봄은 봄대로 언제보아도 소백은 그저 어머니의 따뜻한 품입니다.
▼조용한 비로봉..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우측끝이 가야할 국망봉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하늘도 맑고 조망이 좋아 중계소가 있는 제2연화봉부터 국망봉까지 모든 능선이 한눈에 조망됩니다. 장의자에 올라 국망봉까지 그 긴 능선을 파노라마에 담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국망봉을 향해 내려섭니다.
▼비로봉을 내려서 국망봉을 향합니다.
▼되돌아본 비로봉.. 억새도 아닌 것이 억새흉낼 내고 있네요..
국망봉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등로와는 대조적으로 좁고 약간의 돌너덜지대와 철계단, 오름과 내림이 연속으로 이어져 잔잔한 체력을 요구하는 구간입니다. 꼭지와 해병대부인은 벌써 무릅보호대를 하고 낑낑~~ 장거리 산행에 돌입합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햇살은 무지개빛으로 파고듭니다.
등로에는 벌개미치와 각시투구꽃, 둥근이질풀이 하루종일 지루할 정도로 꽃길을 열어주니 그저 여기가 천상의 화원이요 천국입니다.
▼지천에 피어있는 둥근이질풀, 이 꽃도 하루종일 사랑방과 함께합니다.
▼숲길을 벗어나 잠시 시골 들녘 같은 좁은 오솔길에 들어섭니다.
▼지나온 능선입니다.
▼드디어 국망봉이 지척입니다. 저 위 암봉이 국망봉입니다.
5. 마의태자와 국망봉의 전설
국망봉이라 부른대는 몇 가지 유래가 있으나 그중에서 마의태자에 얽힌 전설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신라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 제천의 백운면 방화리 궁뜰에 “동경저“라는 궁을 짓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하였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입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에 들어와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월악산의 덕주공주를 찾은 후 개골산으로 향했으며 이후부터 국망봉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국망봉인데 망국의 한을 달래는 마의태자대신 해병대아저씨를 모델로 한 컷 잡았습니다.
▼국망봉을 내려서며 구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상월봉가는 길은 돌 하나 없는 매끈한 오솔길입니다.
6. 구인사 가는 길은 어디에~~?
▼저 봉우리가 상월봉(?) 저기를 오르기전 바로 우측에 상월봉1.7km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에서 백두대간과 구인사는 리본 따라 좌측으로 가야 한다고 국망봉에서 어느 산님이 가르쳐 주더군요. 중요한 것은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좌측으로 가면 구인사로 간답니다. 하지만 임도에선 우측입니다. 좌~ 좌~ 좌~ 우~ 좌~ 우~ 뭐냐고요? ㅋㅋ.수능 공식입니다.~^^*
그러면 바로 앞의 저 봉우리를 상월봉이라 한다는데 거리가 200~300m 정도 됩니다. 하지만 상월봉은 여기서 1.7km라 하니 저 암봉이 상월봉이 아니면 상월봉은 어디에~~?
하여튼 이곳에서 산님이 가르쳐 준대로 상월봉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리본 따라 좌측으로 갑니다. 등로 좌우에는 신갈나무과 나무숲이 우거져 오지의 산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10여분 진행하니 <마당치 7.1km 형제봉 10.6km← → 상월봉 1.6km> 이정표가 있습니다. 결국은 상월봉이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게 되어 화장실에서 그냥 나온 엉덩이마냥 찝찝한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신선봉갈림길 이정표인데 여기가 대간 갈림길이기도 한 중요한 구간입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사랑방이 떨어진 국망봉표지판을 다시 못을 주워 붙였습니다.
구인사는 좌측, 대간은 우측길입니다. “공단 아저씨 이정표 새로 잘 좀 해주이소~~^^*”
▼이제는 풀숲도 우거지고 등로도 영 좁아집니다.
▼저어기 우측바위가 신선봉입니다.
이곳부터는 약간의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며 40여분 또 체력을 요구합니다. 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조용한 것을 보니 이제는 조금씩 힘이든가 봅니다.
7. 신선봉에서의 바둑 한 판
▼신선봉(10분거리) 아래에 세워진 이정표인데
신선봉표시가 없어 어느 분이 못으로 긁어 신선봉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감사~~^^*
여기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신선봉 바로아래인데 이정표 뒤쪽으로 10분정도 가파른 급경사를 치고 올라야 합니다. 종주길에 신선봉을 들르지 못하신 분들이 많아 오늘은 기어코 신선봉을 찾아 바둑판바위로 오르기로 하고 모두들 같이 힘들지만 색색거리며 신선봉으로 오릅니다.
여기 신선봉은 신선들의 바둑판이 있고 오르기 힘들어 신선들이나 다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니 역시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모두들 신선이 되고 싶어 안달이라 난 듯 힘듦도 잊고 잘도 오릅니다.
▼해병대아저씨와 보이지 않는 신선과의 바둑한 판..
흑돌과 백돌이 하나씩 뿐이라 결과는 돌이 모자라 무승부~@@
▼신선봉에서 바라본 조망인데 바로아래 좌측 능선이 대간길이고 차례로 상월봉-국망봉-비로봉입니다.
조망 좋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동안 신선이 되어 쉬어갑니다.
신선봉을 내려와 1시간여 전혀 조망도 없는 길을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다 또 가파른 길을 치고 오릅니다. 야생화 만발한 편편한 평지같은 봉우리 인데 이름그대로 민봉입니다.
이곳부터 구봉팔문이 시작되는 가요?
▼조망이 좋은 밋밋한 민봉입니다.저 아래가 구봉팔문중의 3문(계곡)이라 한다는데..
맞은편 봉우리 사이 저 계곡으로 하산합니다.
8. 구봉팔문(九峰八門) 속으로 그 끝없는 고행길..
민봉에서 10여분 내려오니 철조망이 막혀있고 <구인사 5.4km 신선봉 3km>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계속 능선으로 하산길이 나 있는 줄 알았는데 좌측 계곡으로 하산로가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이 8문중 하나인 3번째인 “여생이” 문 같습니다만..
잔돌이 섞여있는 경사 너덜길인데 모두들 지쳐있는 상태라 무척 힘든 하산길이 됩니다. 지리산 백무동만큼 힘든 다느니 어쩐다느니 그렇게 투덜대며 20여분 내려가니 전혀 때 묻지 않은 수림속으로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고양이세수도 하고 어미오리 하늘 향해 물 찍어 넣듯이 캔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1시간여 끙끙대며 내려가니 7-8명의 산꾼들이 휑하니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갑니다. 산에 가서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휑하며 지나가는 저런 분들~~@@
사랑방도 한번 흉내를 내보지만 다리가 무거워 “휑~“하는 소리가 나지 않네요 어쨌든 그래도 계곡은 끝이 나고 저 아래 나무사이로 환한 임도가 보입니다.
“휴~ 이제 살았다.~~@@” 꼭지가 제일 좋아합니다.~~^^*
▼계곡의 마지막 돌너덜길입니다. 저 아래에 임도가 보이지요?
좌,우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헷갈리는 구간인데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헐~@ 임도에 내려서긴 했는데 좌우동형이라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아리송합니다. 몇 번을 두리번두리번 이수영님 산행기를 복사까지 해왔으면서 멍청하게 기억 못하고 또 육감으로 움직입니다. 우측으로 들어서니 간혹 리본표시기가 보이긴 하지만 아리 송송 하면서도 꾸억꾸역 올라가니 조금 전에 앞서간 산님들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여 안심을 합니다.
▼임도에서 바라본 좌측의 목초지인데 흑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백의 알프스입니다.
15분여 넓은 임도를 전세 낸양 널널하게 걸어가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리본표시기 따라 산길로 접어드니 우잉~~~@ 다시 봉우리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에구~ 힘들어~@ 그렇게 또 “헥헥~!“거리며 30여분 두 봉우리를 치고 오릅니다.
9. 구인사는 사찰인가? 궁(宮)인가?
아~ 드디어 그 묘지(?)
맞습니다. 마지막에 묘지(?)로 떨어지면 100점이라고 하더군요. 오늘은 어찌되었던 사랑방 알바 10분만 빼면 100점입니다. 그 귀중한 10분은 어디서 했느냐고요~? 히히~ 신선봉갈림길에서 대간 쪽이 신선봉인줄 알고 한참을 대부대(?)를 이끌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아닙니까..
묘소가 있는 여기는 구봉팔문 중 4봉에서 우뚝 솟은 영주봉(수리봉) 정상입니다.
바로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원각 대조사의 묘소인 “적멸궁“이지요. 상월원각 대조사(1911∼1974)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으로부터 시작됐다가 조선조에 멸실된 천태종을 500여년 만에 다시 재건한 인물입니다.
死生本空寂 盈虛一月輪
"죽음과 삶이 본래 공적한 것, 가득 차고 텅빈 것이 둥근 달의 한 바퀴로다"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64세로 입적하였습니다. 불교의 전통예식인 다비(茶毘)를 행하지 않고 구인사의 주봉 석강(石岡)에 봉분하여 안장한 뒤 적멸궁(寂滅宮)이라 하였다고 하네요.
어떤 의미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일반무덤보다는 거대하게 크기는 하나 별 다름이 없건만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고인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어 굳이 사진으로 담지 않고 바로 구인사 대조사전으로 내려섭니다.
그런데 “맙소사~~@@”
산봉우리 정상에서부터 저 아래 대조사전까지 급경사 시멘트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내려가는 것 또한 죽을 맛입니다. 꼭지는 무릎이 아파 20여분을 엉금 엉금기다시피 내려갑니다.
▼소백산 구인사 “대조사전”입니다.
대조사전은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원각대조사의 존상을 봉안하여 2002년 11월 5일 낙성되었습니다. 대조사전의 규모는 3층 다포집으로 전통 사찰양식을 띠고 있으며 높이는 국내최대 27m이고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는 천장높이 원통으로 막힘없이 탁 트여 있습니다.
내부는 나무로 되어 있으나 온통 금빛인데 그 휘황찬란함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이곳에도 사진촬영금지라 감히 내부모습은 담지 못하고 멀리서 살짝 담아봅니다.
천년을 내다보고 지은 건물로 목재는 수령이 300년이 넘은 태백산 적송으로 11톤 트럭 130대 분량이 들어갔고 금빛 기왓장 하나하나에도 장인의 혼이 배여 있으며 짓는데도 10년이 넘게 걸렸다니 가히 짐작이 가겠지요.
▼된장,간장,고추장 장독대인데 450 여명의 스님과 10,000 여명의 신도를 생각하면
저것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사찰이라기 보다는 웅장한 성(城)같은 구인사 천왕문입니다.
사찰이 아니라 구중궁궐 같은 미로의 구인사경내를 둘러본 후 천왕문을 뒤로하고
오늘의 널널한 소백산 종주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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