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단풍 아름다운 숲길. 백두대간33구간 (구룡령-조침령)
2008. 10. 05 (일) 흐림
꼭지(아내)와 둘이서
일출 06:23 / 일몰 18:02 / 음력 9.7
▲갈전곡봉에서 1016봉 가는 길
▲1080봉에서 조침령 가는 길의 가을빛
▣ 구간별 산행기록
05:17 구룡령 -산행시작-
07:20-07:40 갈전곡봉
09:25 왕승골 안부
11:10-11:30 연가리골 샘터(계곡수)
12:40-13:00 1080봉
14:13-14:20 서면(황이리)-진흑동 갈림길 안부
15:05 옛 조침령(쇠나드리 하산 길)
15:57 조침령 -산행종료-
▣ 대간종주거리 : 산행시간(휴식포함) 10시간40분 (21.25km) / 누적거리 671.42km (포항셀파 기준)
구룡령→4.20←갈전곡봉→12.40←쇠나드리→4.65←조침령
▣ 총누적거리 : 707.42km (접근거리 포함)
▣ 식수위치 : 연가리골 샘터(계곡수) 이정표에서 약 150m
▣ 교 통 : 자가운전 (서대구I.C~속사I.C~31번(창촌/인제)~56번(명개/양양)~구룡령) 340km 5시간소요
▣ 차량회수 : 조침령⇒구룡령 민박집차량택배(둥지산장) 011-378-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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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 끈
밤12시에 대구를 출발하여 속사I.C를 빠져나오니 4시를 넘어서고 있다.
한강기맥이 지나는 1100m의 운두령을 넘어 창촌에서 우회전하여 양양으로 넘어가는
56번 도로를 갈아타면 구룡령가는 길이다. 창촌에서 30여분 어두운 밤길을 달린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담금질하여 이렇게 꼭두새벽에 길을 재촉하게 하는 것인지..
졸업할 때가 다 되었는데도 대간의 매력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구룡령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5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다.
고도가 1013m,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초가을의 바람이 일주일전보다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더니 그런가 보다. 기온은 영상7도, 산행하기는 참 좋은 날씨다.
이마에 도깨비불을 달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산행준비를 한다.
이 또한 일상의 반복 같지만 등산화 끈을 조임으로서 세속의 문은 닫히고 우리는 산과 하나가 된다.
구룡령에는 휴게소 대신에 산림전시관이라는 거창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예전의 휴게소를 개조한 것인지 새로 증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건물 안의 화장실은 폐쇄되었고
밖에 간이화장실이 하나있지만 남녀공용에다가 얄미운 것은 출입문이 없다는 것이다.
깊은 산 중 작은 암자의 해우소처럼 앞이 뻥 뚫려서 응아~~ 하면 세상만물도 다 쳐다본다.
주변사람들의 얘기로는 이곳에 물이 나오지 않아서 휴게소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도로 한쪽에는 차량이 서너 대 주차되어 있고 대여섯 명의 산꾼들이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반갑다며 인사를 드리고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으니 조침령까지 간다고 한다.
같은 방향으로 동행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들머리는 산림전시관에서 서쪽 명개리방향으로 100m정도 내려가 산불초소 옆으로 열린다.
초입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20여분 오르니
길은 점차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고 불빛에 더욱 윤이나는 난장이 산죽 길이 나타난다.
뒤 따라오던 산님들을 먼저 보내고 꼭지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능선에는 과연 어느 정도의 단풍이 들었을까.
나무가 우거진 숲속, 여명의 빛은 언제나 소리 없이 다가온다.
빛과 어둠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은 조용히 물러가고 빛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날이 밝아오면서 산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으려는 듯 서서히 자신의 가슴을 열어젖힌다.
오너라. 어서오너라. 이 넓은 품으로~~
나뭇가지사이로 언듯언듯 비쳐드는 산등성이에는 하얀 운무가 드리워져 있고 숲은 온통 가을빛이다.
“단풍이다!” 꼭지가 외친다.
어느 날 불쑥 찾아든 반가운 손님처럼 가을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갈전곡봉 (07:20)
백두대간에 물든 가을
07:20 갈전곡봉
오늘 구간 중 유일하게 이름을 얹은 봉우리다.
그 흔한 정상석도 없을뿐더러 주변이 나무들로 에워싸고 있어서 조망도 없다.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쉬어가라며 걸음을 잡는다.
앞서간 산님들이 쉬고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꼭지에게 맛있다며 사과 하나를 건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우리도 나무둥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 대간은 직진이고 좌측능선을 타면 가칠봉, 구룡덕봉, 방태산으로 이어진다.
정감록은 이곳 백두대간 서편산중을 피장처로 찍었다. 난을 피할만한 곳 그게 ‘3둔4가리’다.
4가리는 재앙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살던 은둔의 땅,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곁가리를 일컫는다.
그 중에 많이 알려진 아침가리는 밭뙈기가 너무 좁아서 아침 해가 들 때쯤이면
밭을 모두 갈아버릴 수 있어 “아침가리” 또는 “朝耕洞”이라 부르기도 하는 산골 오지중의 오지다.
갈전곡봉을 내려서니 대간길이 온통 단풍의 바다 속에 빠진 듯하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녹음이 짙었는데 1주일사이에 나무들이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변해버렸다.
전체의 50%정도는 단풍나무가 차지하는 것 같다.
신갈나무도 더러 보이고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생강나무와 옻나무도 많이 보인다.
▲1107봉 (8:17)
생강나무의 단풍은 봄에 피우는 자신의 꽃만큼이나 노란색이다.
마가목은 가지가 휘어지도록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지만 키가 커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
열매를 따려면 다람쥐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으나 ㅎㅎ.. 다람쥐가 쉽게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동쪽 급사면에 자라는 단풍나무는 대체로 붉은 색이지만 서쪽을 향한 단풍나무는 노란색이다.
단풍이 잘 들지 않는 신갈나무도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수줍음의 미소를 흘린다.
▲생강나무의 노란 단풍
▲우리는 그들의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단풍 속으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가는 꼭지가 있어 숲도, 사람도 아름다운가 보다.
▲왕승골 안부 (09:25)
09:25 왕승골 안부를 지나면서 단풍은 더욱 절정에 달한다.
붉은 입술이 정열적인 산비장이도, 로마군의 투구를 연상시키는 투구꽃도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운 길을 열어준다.
안부에서 10분여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단골메뉴로 올리는 ‘평해손씨묘’가 보이는데 묘지 앞의 단풍나무는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지 핏빛으로 물들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조금씩 운무가 걷히면서 시야가 트이지만, 보이는 것은 단풍에 물든 빽빽한 나무들뿐이다.
고사목이 군데군데 넘어져 운치를 더한다. 오색의 단풍이 그 위에 올라앉으며 나비처럼 춤을 추고,
그 틈을 비집으며 겨우 햇살이 비쳐든다. 호수위에 부딪혀 달아나는 햇살이 저처럼 아름다울까.
선답자들은 이 길을 언제 걸어도 천혜의 아름다운 숲길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과연 그랬다. 하지만 산이 우리를 질투하는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연이어 풀어놓으며 진을 뺀다.
▲하늘을 노랗게 물들인 옻나무
▲땅 바닥에 기어 다니는 단풍나무
11:10 연가리골 샘터
혹시 지나왔나 싶어 걱정했는데 안부에 내려서니 저 만치 샘터 이정목이 보인다.
샘터를 믿고 평소보다 식수를 적게 준비했는데 다행이다. 거리표시는 없으나 어느 분이
매직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까지 230보라고 적어놓았다.
5분여 희미한 낙엽 길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니 좌측으로 물소리가 들리고 계곡에는 물이 제법 흐르고 있다.
여기서 시작되는 계류는 연가리골을 거쳐 방태천으로 흘러간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하늘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솟아나는 물이니 시원하고 맛이 좋음은 당연할 것이다.
안부에서 잠시 휴식하고 950봉, 1060봉, 1080봉을 차례로 오른다.
▲연가리골 샘터 이정표 (11:10)
▲하늘이 닿을 것 같은 연가리골 샘터 (11:15)
▲핏빛의 단풍터널 속으로
▲땅을 파헤친 멧돼지의 흔적들...
산에서 만난 인연
12:40 1080봉
구룡령에서 같이 출발했던 5명의 대간꾼들을 이곳에서 또 만난다.
막 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한 젊은 분이 조금만 일찍 왔으면 식사를 같이 했을 건데 하며 아쉬움을 표시한다.
말만 들어도 고마운데 소주 한 잔 하실래요 하며 술을 권한다. 염치 불구하고 꼭지와 한 잔씩 얻어먹는다.
예전에는 가끔 작은 팩소주를 사서 배낭에 넣어 다니곤 했는데 둘이서 먹으니 별 맛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갖고 다니지 않았는데 오늘의 소주는 맛이 참 좋았다.
이렇듯 나눔은 어색한 벽을 허물어주고 서로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해준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니 서울서 왔다고 한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로 8명이 함께 했는데 오늘은 3명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갑자기 무엇에 끌리듯이 어떤 직장이냐고 물었더니 코카콜라에 근무한다고 한다.
▲1080봉 (12:40)
▲1080봉에서 옛 직장동료를 만난듯 반가웠던 서울 코카콜라 대간팀
“옛~! 코카콜라? 그러면 한양식품?”
나의 놀람에 그분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해 했다.
‘한양식품’이라는 나의 말에 “회사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하며 되묻는다.
예전에 코카콜라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선배를 만났다며 더욱 반가워한다.
콜라, 환타가 최고 전성기였던 1980년도에 코카콜라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꼭지를 만나 결혼도 했다.
자연스레 겪이 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지나왔던 대간의 고생보따리를 서로 풀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빙판길에 대야산을 넘어온 이야기, 두타 청옥을 넘은 이야기 등등..
그리고는 옛날에 근무하던 코카콜라 직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분들과는 이렇게 인연이 되어 조침령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행을 함께하고
구룡령에 뒤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천상의 꽃길보다 아름다운 단풍군락지를 지나 안부에 내려선다.
안부에는 백두대간 안내판과 숲의 기능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숲은 ‘녹색댐’이라고 한다.
건강한 숲에서, 1ha의 침엽수는 1년동안 약 30~40톤의 먼지를 제거하고, 활엽수는 무려 68톤의 먼지를 걸러낸단다.
뿐만 아니라 연간 16톤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44명이 숨 쉴 수 있는 12톤의 산소를 방출한다.
숲은 주변의 소음을 10~15데시벨까지 줄여주고, 뜨거운 여름에는 습도를 조절해준다.
주위의 온도도 3~4도 낮춰줄 뿐만 아니라 빗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흘려보내므로 ‘녹색댐’이라 부른다고 한다.
▲‘녹샘댐’ 숲의 기능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 (13:56)
▲서면 갈림길 (14:13)
▲조침령터널을 향한 도로
쇠나드리가 가까워오니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고 조침령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이정표가 없는 첫 번째 쇠나들이 갈림길 안부를 지나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서면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쇠나들이 갈림길 안부다. 옛 조침령이라 불리는 곳으로 나중에 민박집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황소까지도 날려 보낸다는 세찬바람으로 ‘쇠나드리’라는 지명을 얻었다고도 하고,
소풀이 많아서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소가 나들이 나간다는 뜻에서 ‘쇠나들이’로 부른다고도 한다.
쇠나드리를 지나면 급방 조침령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계속 이어진다.
오늘 단풍 값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자연도 셈은 공평하게 하나보다.
예전에 양양에서 소금장수와 생선장수들이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 우스갯소리로
좆침령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역시 그럴싸하다.
▲쇠나들이(바람불이) 갈림 길 (15:05)
▲곱게 핀 산부추가 힘들어하는 꼭지를 달래고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조침령 임도길 (15:50)
단풍이 물든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조침령가는 임도길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입구에서 이곳 조침령까지는 2km 남짓한 비포장길로 승용차가 두 대 교행하기 힘들다.
정상부에는 ‘백두대간 조침령’이라는 커다란 표석이 세워져있고 한계령에서 넘어오셨다는 대간꾼이 몇 명 쉬고 있다.
어떻게 단속을 피했는가 물었더니 단목령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 잡혀서 딱지를 끊겼다고 한다.
우리도 다음에는 점봉산, 황철봉을 넘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피해가야 할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조금 있으니 개인택시가 한 대 올라온다.
길이 패인 곳이 많아서 RV차량도 아닌 일반 승용차는 오르기 힘들다고 하던데 대단하신 분이다.
▲백두대간 조침령 (15:57)
▲차량 회수를 위해 다시 돌아온 구룡령 (17:20)
민박집(둥지산장)의 9인승 차량을 부탁했더니 어르신이 따님과 함께 올라오셨다.
그분들과 합승하여 구룡령으로 향하는데 내려가는 임도 길도 경사가 심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터널을 지나니 도로는 가파른 급커브로 S코스와 U코스가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왜 이렇게 길이 꼬불꼬불할까? 이는 주위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도로를 만들다보니 그렇다고 한다.
단풍은 온 산을 뒤덮고도 모자라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린다.
구룡령으로 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이슬비가 내린다.
꼭지가 걱정스레 중얼거린다.
“비를 맞으면 저 고운 단풍이 다 떨어질 텐데...”
- 제33구간 끝 -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9정맥 > 백두대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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