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氷花
2012. 3. 25. (05:00-08:30)
산사랑방
눈꽃에는 눈이 쌓여서 핀 설화가 있고, 서리나 눈이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
등에 얼어붙어서 핀 상고대가 있다. 빙화는 이러한 설화나 상고대가 녹아내리
면서 다시 얼어붙어 수정같은 보석으로 피어난 얼음꽃이다.
그러기에 빙화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눈꽃이 아니다.
순간의 미학, 천지의 조화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낮 따스한 햇살에 일부만 녹았다가
밤이 되어 다시 얼어붙어야 하는데 그 확률은 미미하다.
대부분 한낮이 되면 다 녹거나 떨어져버리기 때문에...
봄을 시셈하는 눈과 바람과 태양의 질투...
한 마디로 따스한 봄날의 변덕스런 날씨가 도움이 된다면 믿을까.
3월 하순인데도 산정의 기온은 영하 10도, 심한 바람에 몸이 날려갈 것
같아서 결국은 칠불봉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빙화(氷花)는 아름답지만 슬픈 꽃이다. 차디찬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우박 떨어지듯이 후두둑 떨어져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가련한 꽃, 하긴 피었다 지는 것이 어찌 얼음꽃 뿐이랴마는...
그래서 한낮에 산에 오르면 아침과 전혀 다른 풍경을 접하게 된다.
감동이 없으니 애틋한 사랑도 없다.
그래서 눈꽃을 보려고 아침일찍 집을 나섰다.
연이어 이틀동안 봄비가 내렸으니 부푼 꿈을 안고...?
가야산에 가면
뭐~~~ 최소한 상고대 정도는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얼음꽃을 만날 줄은 몰랐다.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한으로 맺힌 걸까.
이러한 풍경 앞에서는 중국의 왕유(王維)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요 음악가였다. 이백, 두보와 더불어 중국의 삼 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고, 특히나 계수나무를 좋아하여 춘계문답(春桂問答)
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春桂問答
- 왕유(王維) -
問春桂(문춘계) : 봄 계수나무에게 묻기를
桃李正芳華(도리정방화) : 복숭아와 오얏나무 이제 막 향기로운 꽃 피워
年光隨處滿(연광수처만) : 봄빛이 곳곳에 가득하거늘
何事獨無花(하사독무화) : 무슨 일로 홀로 꽃이 없소 하니
春桂答(춘계답) : 봄 계수나무 대답하기를
春華詎能久(춘화거능구) : 봄꽃이 어찌 오래갈 수 있으리
風霜搖落時(풍상요락시) : 바람과 서리 몰아칠 때는
獨秀君知不(독수군지불) : 나 혼자 빼어난 줄 그대는 아는지 모르지
그러나 왕유가 오늘 이같은 풍경앞에 섰다면 과연 춘계문답이라는 시를 썻을까?
수정처럼 맑고 햇살처럼 영롱한 얼음꽃을 피우고 독야청청 고고한 자태을 잃지 않는
한국의 소나무, 오늘 이 기상을 보았다면 그는 붓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春桂問答'이 아니라 '春松問答'으로 더 아름다운 시가 탄생되었을지도...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신비...
세상에 무엇이 있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살아있음을 느끼게해주는 가슴을 흐믓하게 하는 풍경들...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수정같은 보석들은 자기를 녹이는 햇살에
더욱 빛을 발한다.
어떤 화가가 흉내낼 수 잇을까? 조물주가 빚어낸 이 최고의 걸작을...
산수의 아름다움을 비교할 때는 흔히 엄자릉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와는 어릴적 동문수학한 벗이었다. 광무제가 높은 벼슬을 주겠다며
자릉을 붙잡았지만 매정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그는 천하를 낚싯대 하나에
매단 희대의 은자였다. 이를 두고 송대의 시인인 대복고는 엄자릉에 대해서
'조대(釣臺)'라는 시로 그의 인품을 노래했다.
낚싯대 하나면 마음을 다 비울 수 있는데 (萬事無心一釣竿 만사무심일조간 )
삼공벼슬을 준다한들 이 강산과 바꿀소냐 (三公不換此江山 삼공불환차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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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삼정승을 이 아름다운 강산에 비길까.
빙화가 만발한 가야산!
이 풍경 하나면 천하를 희롱한 엄자릉도 결코 부럽지 않음이다.
ㅡ END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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