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설악산

가을속 신비 설악산 서북능선 (귀때기청봉)

산사랑방 2010. 10. 21. 07:31

 

 

가을속 신비 설악산 (한계령-귀때기청봉-대승령-장수대)

 

2010. 10. 17. (일) 꼭지와 둘이서

 

한계령(06:15)-능선갈림길(07:50)-귀때기청봉(09:10)-대승령(13:40)-장수대(15:00)

 

산행시간 : 휴식포함 8시간 45분 (12.2km)

 

 

오늘 진행하는 설악산 서북능선은 대청봉(1708m)에서 서북으로 뻗어

안산(1403m)에 이르는 약 1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능선의 중간지점에 있는 귀때기청봉은

황철봉에 버금가는 너덜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곳에서 바라보는 가리봉능선과 주걱봉,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으로 조망이 일품이라 설악의 진주와 같은 곳이다.

 

  

 

<귀때기청봉에서 1408봉 가는 길에 바라본 가을속 신비>

 

 

서북능선은 가슴속에 고이 묻어두었던 미답산행지였기에 집을

떠나올 때부터 기대와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05:50 한계령에 도착하니

날씨는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고 말았다. 먹구름이 기세등등 산정을 애워싸고 금방이라고

비를 뿌릴 기세다. 심술이 뚝뚝 떨어지는 설악의 얼굴, 그래도 좋았다.

 

일기예보는 맑은 날씨라고 했지만 설악은 제마음대로다. 주차장에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도록 체인으로 막아놓았고, 도로가에도 주차를 못하게 경찰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통제를 한다. 할 수 없이 조금 내려가 필례약수터 방향

도로가에 주차를 하고 한계령으로 향하니 날이 조금씩 밝아진다.

 

 

 

 

 휴게소에서 오뎅 한사발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문에 든다.

지난주에 가을인가 했는데 어느덧 설악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기분이다. 

등로옆에는 나뭇잎들이 대부분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빈 가지로 더 행복한 나무들,

자신을 비우는 자연의 섭리앞에서 우리 인간들만이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가 싶다.

  

산은 아무리 자주 찾고 익숙한 길이어도 늘 새롭고 처음같은 기분은 왜일까?

한계령에서 서북능 갈림길까지는 여러번 올랐는데도 오늘은 모든 풍경이 낯설고

서먹하다. 산은 늘 제자리에 그대로인데 자연의 조화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마음 때문일까? 그 비밀의 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북능선 귀때기청봉 갈림길>

 

 

 

 이제부터 꿈에 그리던 서북능선의 비경이 펼쳐진다.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너덜길>

 

 

귀때기청봉 너덜은 황철봉 너덜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덜은 귀때기청봉을 중심으로 약 1km구간에 걸쳐있지만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이러한 귀때기청봉의 너덜을 두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옛날 귀때기청봉이 설악에서 제일 높은 줄 알고 까불다가 대청 아우들에게

귀사대기를 얻어맞아 부서진 잇빨들이 흩어져 수많은 돌무더기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설악산은 온통 돌산이지만 귀때기청봉만 유독 부드러운 육산이었다.

그래서 돌산의 형제들로 부터 맨날 귀때기를 얻어맞으며 왕따를 당하곤 했다.

 

이렇게 되자 귀때기청봉도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다.

"나도 돌산이 되어서 다른 형제들처럼 대접받고 살거야." 하며 그때 부터

몰래 설악의 돌이란 돌을 줏어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만 대청을

호위하고 있는 중청 형제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를 안 중청 형제들..

 

"요런 건방지고 방자한 놈을 봤나?"하며 중청의 손바닥이 휑 날아와 또 귀때기를

사정없이 때렸다. 이를 계기로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그때 만들다 만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지금의 너덜이 되었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가야할 귀때기청봉은 멀리 운무속에 잠겼고 너덜은 계속 이어진다.

가끔 구름이 비켜서며 아침햇살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설악의 그 장엄하고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가을속의 신비, 꼭지가 퍼질고 앉아 갈 생각을 않는다.

 

  

 

 좁은 돌길위로 밟으면 서걱거리는 낙엽소리가 정겹다.

서북능선은 설악산 등로중에서 유일하게 돌계단이 없는 원시적인 산길이 아닌가 싶다.

깎아지른 암봉을 오르내려야 하는 몇 구간에서 철계단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때묻지

않는 산길이다. 반면에 위험구간도 더러 있어 긴장을 늦츨 수가 없다.

  

 

 

너덜이라 악천후시에는 길 찾기가 까다롭지만 커다란 야광봉이 안내역할을 한다.

 

 

 

  

 

해발 1578m의 귀때기청봉 정상, 명예롭지 못한 이름 때문일까?

그 흔한 정상석도 없다. 이정목이 이곳이 정상임을 말해줄 뿐이다. 정상부에는 조망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날씨가 좋았으면 가리봉능선의 주걱봉과 삼형제봉은 물론, 용아릉과 공룡능선이

장관이겠지만 오늘은 운무속에 조망이 없어 안내판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랜다.

 

 

 

<정상에 세워진 경관 안내판>

 

 

 

  

 

 

 

 

 

정상을 내려와 너덜지대를 벗어나니 조금씩 운무가 걷히고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기암들은 하늘을 향해 늘어서 있고 고운 단풍과 어우러진

주위 산세가 천혜의 비경을 연출한다.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우리도 산이 된다.

 

  

 

 

 

 

 

 

 

 

 

마치 공룡능선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설악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산수화 같은

신비로운 풍경은 처음이다. 맑은 날씨였다면 과연 이러한 풍광을 볼 수 있었을까.

아마 그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속마음을 열어준 그대 또한 이 가을에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1408봉 가는 길>

 

 

 

1408봉을 향한 꼭지의 걸음이 무겁다. 계단이 151개 라고 한다.

 

 

 

 

 

 

 

<1408봉에서... >

 

 

 

 

 

 

 

뒤를 돌아보면 첩첩이 이어진 산마루 뒤로 귀때기청봉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귀때기청봉에서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굴곡이 심하고

암릉구간이 많아 힘든구간으로 소문나 있다.  

 

 

 

<1408봉 정상부>

 

 

 

멀리 안산이 희미하게 잡히고 암릉구간이 계속되지만 대부분 우회길로 되어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아늑한 숲길도 있다.

귀때기청봉이 귀사대기를 얻어맞기 전에는 이러한 육산이었을 것이다.

풀들은 누운 몸짓으로, 나무들은 가지를 뻗어 반갑다며 인사를 건넨다.

식물들과 인간과의 교감, 이것은 우리들만의 생각일까?

 

 

 

 

 

 

 

 

 

<해발 1210m의 대승령>

 

 

 

계곡단풍이 보고싶어 12선녀탕으로 하산할 계획도 있었으나 8.6km라는

말에 꼭지가 장수대로 하산하자고 한다. 장수대로 내려서니 선녀탕계곡에 버금가는

단풍터널이 이어진다. 이곳으로 하산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수해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마음이 아프지만 가을빛이 그들을 어루만져주어 고맙기만 하다.

 

 

 

<장수대 전망대>

 

역시 산빛은 해질녘이라더니 막바지 오후 햇살에 

몽롱한 분위기로 유혹하는 가리봉과 주걱봉에 온몸이 녹아드는 것 같다.

 

 

 

높이가 88m로 금강산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폭포로 알려진 <대승폭포>

가을가뭄으로 물줄기가 거의 말라버려 폭포의 위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상상속의 나무 '그대와 나 죽어서도 변함없는 사랑이고 싶다'

 

 

  

 

 

 

 

 

   

가을은 이처럼 고운 몸짓으로 장수대 숲길에 내려앉았다.

한줄기 청아한 바람에 노란 잎새들이 살랑거린다. 선선한 바람결에 목놓아

실려오는 가을향기, 꼭지의 그림자마져 삼켜버린 잎새에게 말을 건다.

오늘도 그대가 있어 행복했노라고... 

 

 

ㅡ END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