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백두대간(완)

바람의 산, 백두대간10 (우두령~황악산~추풍령)

산사랑방 2008. 12. 24. 15:23
 

                                

바람의 산, 백두대간10 (우두령~황악산~추풍령)


                                                                    

2008.   1.   6.  맑음(시계불량)

                                                                                   

산사랑방 홀로

                                                                  

일출 07:36 / 일몰 17:28 / 음력 11.28




 


   ▲황악산




 



                                                                            

▲바람도 쉬어가는 바람재







구간별 산행기록


07:00 우두령   -산행시작-

07:50 삼성산

08:30 여정봉

08:50-09:00 바람재

09:37 신선봉갈림길

10:00 황악산

10:40 직지사갈림길

10:50 운수봉

11:50-12:00 괘방령

13:50-14:00 가성산(716)

15:10 눌의산(743.3)

16:10 추풍령    -산행종료-



총 산행시간 : 23.74km( 9시간 10분)


▣ 대간종주 거리 : 23.74 km / 누적거리 197.14km            

우두령→4.45←바람재→2.85←황악산→5.55←괘방령→4.25←가성산→3.03←눌의산→3.61←추풍령 


▣ 접근(하산)거리 : 없음

▣ 총산행거리   :  23.74km / 누적거리 222.94km

▣ 식수위치 : 없음

▣ 위험구간 : 없음

▣ 교통 : 대구-추풍령 1시간 (80km)

▣ 차량회수 : 추풍령-우두령 30,000원(추풍령개인택시 011-492-3939)




행복


오늘도 우두령에 두고 온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선다.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서두르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난주 연말에 폭설주의보속에 길을 나섰다가 자동차가 우두령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기사님 왈,

“우두령은 빙판이라 갈 수 없고.. 하지만 큰재는 갈 수 있으니 우두령은 다음구간에 하고

오늘은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하시지요.”


“우두령을 빼먹고 추풍령부터 한다..?” 혼자 중얼거리다가

출발전에 전화 못한 내 불찰이 큰 터라 못 간다는 기사를 나무날 수도 없고

한편으론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순서대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그 원칙을 깰 수도 없고

고도가 낮은 추풍령구간은 이미 꼭지와 함께하기로 약속을 했는터라 어쩔 수 없이

산은 늘 제자리에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김천에서 차를 돌려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새해를 맞으며 1주일 내내 대간의 그리움에 싸여 지내왔다.



추풍령 노래비 


경부고속도로 왜관 칠곡휴게소에 들러서 우동 한 그릇을 시켜 아침을 대신하고

낮에 먹을 건빵 한 봉지, 보리빵 하나와 팥빵 한 봉지를 사서 휴게소를 빠져나오며

추풍령노래비는 어디쯤에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한다.


대간을 하기전에는 ‘노래비’ 그게 어디에 있던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비가 들머리이니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추풍령휴게소에 들렀지만

휴게소가 추풍령 I.C를 지나서 있는지 지나기 전에 있는지.. 그것조차도 기억에 없다.

 

추풍령에 갈 일이 없었으니 무심코 지나왔던 것이다.

그걸 알았으면 칠곡휴게소가 아니라 추풍령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했을 것이다.

대간을 하면서 인생을 다시 살고있다는 생각도 든다.


추풍령 I.C는 휴게소와 겸하여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추풍령휴게소 안으로 진입하여 I.C를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매표소직원에게 노래비가 어디냐고 물으니 잠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그리고는 200m 앞에서 영동방향으로 좌회전하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1km 정도 진행하니 지하도와 3거리 신호등이 있고

좌측에 사진으로 많이 보아왔던 추풍령노래비가 보인다. 반갑다.

노래비 옆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예약한 택시를 타고 우두령으로 향한다.


영동방향에서 물한리 계곡방향으로 49번도로를 따르다가 우두령은 상촌리에서

좌측으로 김천방향 901번지방도로 따라 오르면 우두령이다.

우두령의 고도가 720m, 결코 만만한 고도가 아니다.

군데군데 빙판길이라 택시도 조심조심 오른다.



영동바람


우두령초입부에 나를 내려주고는 택시는 휑하니 사라진다. 또 혼자가 된다.

희미한 여명속에 아직 산문에는 어둠이 가시지 않고 있어 더욱 외로움이 밀려온다.

산행을 위해 아이젠을 찬다. 옆에서 칭얼대는 꼭지(아내)라도 있었으면..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숨이 턱밑에 차오를 때까지 경사 길을 오른다.


등로가 뚜렷하고 이미 선답자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어 랜턴을 켜지 않고 오른다.

오랜만에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대간의 향기가 좋다.

지 능선에 올라서니 맨 먼저 차가운 새벽바람이 반갑다며 마중을 나온다.

소문난 영동바람이다. “에구 추워라.” 싶어 모자를 눌러 쓰는데 밤새 드러누웠던 낙엽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들고, 앙상한 나무들을 흔들어대는 바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 사이로 겨우 모습을 드러낸 초생달이 힘겹게 하늘에 걸려있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연무 때문에 어슴푸레한 산마루의 윤곽만이 잡힌다.

“오늘 하루 조망은 다 틀렸구나.” 중얼거리면서도 가야할 길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꼭지에게 잘 도착해서 산행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걸음을 빨리한다.


삼성산을 지나 여정봉에 올라선다.

어느 산님이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빛바랜 ‘여정봉’비닐표시만이

이곳이 ‘여정봉’임을 말해주는데 특별한 조망은 없다. 우측으로는 리본이 많이 걸려있고

직진은 나뭇가지로 막아놓았다. 선답자들이 조심하라는 구간에 대한 배려가 고맙다.

여정봉에서 대간은 우측으로 90도 꺾어 내려서야 한다.

야간에 아무생각 없이 직진했다간 엉뚱 한데로 빠질 수 있어 조심할 구간이다.


여정봉을 내려서니 바람재로 향하는 등로 옆에는 엷게 핀 서리꽃이 반겨주는데

햇살이 비쳐들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하여 애처롭기 그지없다.

우리의 삶 또한 그와 같을 것이다. 찰라와 같은 순간에 후딱 지나가고 말 것인데..

부와 권력과 명예가 우엇인지 아웅다웅.. 참으로 인생무상이로다.


 


                                                                           

▲삼성산 가는길의 일출


 

 


                                                                   

▲정상석대신 비닐표시만 달랑 붙어있는 삼성산


 

 







                                                                                        

 ▲여정봉 가는 길


 

 


                                                     

▲여정봉, 직진은 나뭇가지로 막아놓음.. 대간은 우측으로


 

 


영화 “집으로”


바람재에 내려서니 헬기장인데 <바람재 810m>표석이 세워져 있다.

바람을 맞았는지 글씨도 삐딱한 것이 참 잘 어울리는 표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도가 왼쪽 ‘지통마’ 마을로 연결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고랭지 채소밭을 가로지른다.

그 아래쪽에는 낡아빠진 트럭 한대가 세워져 있는데 황량하기 그지없다.


좌측으로 멀리 ‘지통마’마을이 희미한 박무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예전에 영화가 촬영된 곳이라 하니 더욱 눈길이 간다.

‘지통마’마을은 2002년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가 촬영된 곳이다.

줄거리는, 형편이 어려워진 상우 엄마가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

하늘아래 첫 동네 ‘지통마’마을의 외할머니댁에 상우를 맡기게 되는데

개구쟁이 7살의 상우와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할머니와 시골 외딴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답게 밧데리도 팔지 않는 시골가게와

사방이 돌투성이인 시골집 마당과 깜깜한 뒷간에서 겪게 되는 생애 최초의 시련에

상우는 힘들어하고 그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 할머니의 손을 더럽다고 하고


할머니의 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신'이라고 욕을 하고

오강을 깨고 할머니의 고무신을 내다 버린다.

양말을 꿰매는 할머니 옆에서 방구들이 꺼져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밧데리를 사기위해 온 집안을 뒤져도 돈이 없자

낮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훔치고

.............................


 



                                                                     

▲바람재정상부에서 내려다본 바람재


 

 


                                                                

▲황악산 아래쪽 영화 “집으로”가 촬영된 ‘지통마’ 마을


 

 


 

                                                                      

▲글씨도 바람을 맞아 삐딱하고..


 

 


                                                                       

▲바람재에서 뒤돌아본 바람재 정상부


 

 


                                                                                

▲신선봉 갈림 길


 

 


                                                                     

▲황악산 가는 길에는 서리꽃이 피기 시작하고



백두대간상에는 이렇게 재미난 얘기들이 많아서 좋다.

그때의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재에는 바람소리 들리지 않고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그 유명한 영동바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스산한 억새만이 하늘거릴 뿐이라 따뜻한 양지쪽에 앉아 잠시 쉬고 난 후 황악산을 오른다.


연무가 시야를 방해하여 아무런 조망도 없지만 가끔은 엷게 핀 서리꽃이

등로 좌우에서 반겨주고 내 딛는 부드러운 눈길이 포근해서 좋다.

신선봉갈림길에 올라섰지만 등산객 한 사람 보이지 않고 형제봉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신선봉라인이 희미하다.

3년전인가 늦가을에 해병대부부와 대간을 맛배기로 황악산에 올랐다가 신선봉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새로운데

요즘은 통 해병대부부와 함께 산행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황악산을 내려서면 고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아름다운 서리꽃도 지고 없다.

하지만 알록달록 꽃물결을 이루는 일반등산객들의 행렬이 많아서

반갑다며 인사를 주고받으니 일상의 세속, 사람 사는 세상에 내려온 듯 하다.


400m, 500m 고도가 계속 떨어지더니

직지사갈림길을 지나니 작은 정상석이 앙증맞은 운수봉이다.

괘방령으로 내려서는 북사면에는 고도가 낮기 때문인지 빙판길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흙과 작은 돌들이 부스스 떨어지는 비탈길이라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선다.


괘방령에는 그 흔한 휴게소도 없고 달리는 차 소리만이 생생 적막을 깬다.

오고가는 사람 없어 심심하던 터에 여장승과는 대조적으로

심술궂게 입이 째져라 웃고 있는 목장승을 보니 불현듯 말을 걸고 싶어진다.

 

“밤새도록 옆에 서 있는 여장승을 괴롭힌 것 아니오?”

“........?”


 



                                                           

▲이정표뒤쪽으로 신선봉라인의 희미한 윤곽


 

 



                                                                                                                                                      

▲뒤돌아본 형제봉

 

 



                                                                               

 ▲황악산정상부의 서리꽃


 

 



                                                                                           

▲황악산


 

 


 


                                                                                     

▲운수봉


 

 



                                                                 

▲여시골산을 지나며 뒤돌아본 황악산


 

 


                                                                     

▲괘방령과 멀리 가성산이 시야에


 

 


괘방령


괘방령은 조선시대에 주로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기위해 넘던 곳인데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하여 ‘괘방령’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괘방령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서 이웃한 추풍령은 국가의 업무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였다면

괘방령은 서민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고 한다.


괘방령에서 가성산 가는 길은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나

마루금은 원을 그으며 오름과 내림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어 지루한 구간이다.

몇 개의 야산구간을 지나면서 크로 작은 재를 오르고 내린다.

서서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온다.


어디 따뜻한 묘지나 전망바위가 있으면 앉아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잡목 때문에 조망도 없고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아무데서나 쉬기로 하고

낙엽위에 퍼질고 앉아 보온물통의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는데도 그 맛이 꿀맛이다.

산의 정기는 컵라면에서도 넘쳐나는가 보다.

배가 부르면 힘이 솟아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 걸음 옮기기가 더욱 힘이 든다.

산행 후 5~6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조금씩 몸이 무거워질 시간대인가 보다.


가성산에는 헬기장을 겸해서 정상부에는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주위의 잡목을 베어내어 조망이 트이도록 해놓았다.

가야할 눌의산이 시야에 들어와 그 부드러운 능선에 눈길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데

꼭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해병대부부와 화원 찜질방에 있으니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장승의 웃음만이 허허로운 괘방령


 

 


                                                                                         

 ▲가성산


 

 


                                                                           

▲가야할 장군봉(좌)과 눌의산


 

 


                                                                                     

▲눌의산


 

 


                                                                       

▲눌의산에서 내려다본 가야할 추풍령(중앙)



 


 

                                                                           

▲추풍령노래비 (한곡 뽑고 가세요.~^^*) 

 


우두령에서 6시에 출발했다는 6~7명의 구미대간팀을 추월하여

눌의산에 올라서니 멀리 추풍령읍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눌의산에서 추풍령까지는 고도가 500여m나 떨어진다. 기다리는 꼭지를 생각해

1시간여 종종 걸음으로 임도를 지나 밭둑따라 지하도를 통과하여 포도밭을 지난다.

나중엔 철길건널목도 건너고 동네한복판으로 대간이 이어지니

이게 무신 백두대간인지 의문이 갈 정도다.


그래도 고마운 선답자들의 리본은

전봇대에 과수원에, 철사줄에 구석구석 매달려 길을 안내한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드디어 4번국도 추풍령고개마루다. 아침에 만났던

추풍령노래비가 한 곡 뽑고 가라며 걸음을 잡는다.

아니면 추풍령구간은 뻥이니 다시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한곡 뽑고 간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