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겨울스케치

장수사 일주문과 용추폭포

산사랑방 2009. 2. 16. 21:19

 

장수사 일주문과 용추폭포

 

 

 

수망령에서 월봉산구간은 다음으로 미루고

용추계곡으로 내려서니 길은 시멘트포장으로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눈은 조금씩이나마 계속내리고..

운치는 있으나 홀로 걷는 길 위로 쓸쓸함이 베어난다.

늘 모델이 되어주던 꼭지의 뒤 모습이 그립다.

 

 

 

1시간 넘게 걸어서 도착한 철다리

눈은 그친상태..

하지만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며 마음까지 적셔준다.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진다. 비가오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도 메마르는가 보다.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앞서 간 산님이 다리를 건너기에 나도 따라 건넌다.

누군가 숨겨놓은 보물을 훔쳐보러 가는 것 처럼..

 

 

 

<용추사 대웅전>

지금의 용추사는 장수사가 폐사된 후 용추암을 복원하여 용추사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그림자는 커녕 목탁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절간이라지만..

괜히 불청객이 된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린다.

 

 

 

<용추폭포>

용추사에서 조금 내려오니 좌측으로 폭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지 않았으면 이 용추폭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숨겨진 보물..

 

용추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예전에 이곳에 물레방아 굵기만한 이무기가 살았는데 용이 되기위해 날마다 신령님께 빌었다.

"용용용...!!"  하며

결국 신령님도 감동하였는지 108일동안 금식기도를 하면 용이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계시를 내린다.

이무기는  배고픔과 온갖 고통을 참으며 107일째 되던 날

내일이면 용이 된다는 기쁨에 그만 날짜를 잊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늘로 치솟았다.

역시 이무기는 이무기였다. 생각이 고것밖에 안됐으니..

그때 번~쩍!  쿵~~

천둥이 치며 벼락이 이무기를 향해 힘차게 때렷다.

벼락맞은 이무기는 공중에서 요동을 치다가 인근의 위천면 서대기못에 떨어졌고,

그 들판은 이무기의 썩은물로 3년이나 거듭해서 풍년농사를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가뭄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물소리가 요란하니 산세의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긴, 좌측에는 기백산과 금원산이

우측에는 거망산과 황석산이 에워싸고 있으니 골이 깊음은 당연할 것이다.

 

 

 

폭포를 내려서니 계곡의 물소리가 잔잔하다.

계절의 봄이 느껴지지만 일상에서 바라는 봄기운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언제쯤 우리에게 따뜻한 봄이 찾아올까.

 

계곡의 다리를 건넌다. 버스주차장이 보이고 커다란 일주문이 반긴다.

'장수사 일주문'

장수사는 지금은 폐사되어 일주문과 터만 남았지만

1500년 전인 신라 소지왕9년 (서기 487년)에 각연조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

그때는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들을 말사로 거느렸을 만큼 대찰이었다.

 

이곳 심진동 계곡에만도 열 개가 넘는 암자를 두었으며, 이곳에 기거하던

승려만 해도 이백여명에 달해 계곡 어디서나 낭랑한 염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웅장한 일주문만이 그때의 영화를 짐작케 해줄 뿐이다.

 

 

 

편액에는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라 되어있다.

 

장수사는

강희 19년(1680년)에 화재를 입은 이후,  두 번에 걸쳐 또 화(火)를 입고 복원하였으나

6.25전란 때 장수사는 물론 계곡에 즐비했던 암자들도 소실되어 폐사되고 말았다.

그 넓은 터에 일주문만이 덩그렇게 남아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허허로운 일주문을 들어서니

그 어디에도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장수사의 부처님은 어디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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