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덕유산

인생길도 되돌아서서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산사랑방 2008. 12. 24. 18:04

 

                         인생길도 되돌아서서 다시 걸을 수 있다면.. 


                                                 2007. 2. 25 (일) 흐림


                                                     산사랑방 홀로

 

 

 
 


 

 

걷고 또 걷는다.

영혼마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산죽 길.. 이 난장이 산죽길이 좋다.

무룡산에서 동엽령구간

걷고 또 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길..


가냘픈 산죽이건만 그 기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도 늘 푸르름을 잊지 않고, 무거운 눈이 짓눌러도 결코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모진 강풍에도 꺾이지 않으며 50년에서 200년에 한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는 모두가 함께 죽는다.


환상적인 그 산죽길이 좋아 무룡산에서 동엽령으로 다시 또 돌아서서 걷는다.

우리네 인생길도 이렇게 다시 돌아서서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한 번 더 참으로 좋은 인생을 살아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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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경로 (삼공리⇔무룡산 왕복산행)


03:30 삼공리 탐방지원센터

04:45 백련사

06:30 향적봉

06:40-07:00 대피소

07:30 중봉

07:50 송계삼거리(백암봉)

08:40 동엽령

10:30-10:40 무룡산

12:00 동엽령

13:00 송계삼거리

13:30 중봉

14:00 오수자굴

15:00 백련사

16:30 삼공리


총 산행시간 : 13시간 / 35.2km 


삼공리→1.5←인월담→4.5←백련사→2.5←향적봉→1.4←중봉→1.0←송계삼거리→2.3←

동엽령→4.2←무룡산→7.5←중봉→1.4←오수자굴→2.9←백련사→6.0←삼공리매표소  
 

 



                                                                          ▲백련사 일주문앞의 안내도 

 

 

3월이 되면 국립공원은 산불경방으로 문을 닫을 것이다.

그 조바심이 자극이 되어 거창한? 덕유산종주를 계획한다.

새벽4시에 삼공리를 출발, 향적봉에서 일출을 보고 육십령까지 원 없이 걸어보는..


나에게 있어서는 젊음과 같은 덕유산 종주는


게을러지려는 심성에 채찍을 가하여 내가 진정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잠을 설치며 무박으로 집을 나서서 하루 종일을 걸어도

피곤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어떤 마력이 숨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일출의 단꿈은 백련사에 도착해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중봉가는 길 
 

 


 

                                            ▲늘 산객들로 분주하던 중봉이지만 오늘만큼은 기다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백련사에서부터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기예보에는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부터 개인다고 했는데 이게 무신조화?

하긴, 세상사 다 예상했던 대로 돌아간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인가.


“일출은 물 건너갔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일출은커녕

조망마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마음을 비우자. 비우지 않고서야 어찌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으랴.”

 

 


 

                                                                                ▲송계삼거리 가는 길


 



 


 

                                                                                   ▲송계삼거리

 


향적봉에 올라서니 진눈개비속이라 일출은 기대할 수 없고

허공에서 달려드는 칼바람만이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대피소에 내려가 라면을 끓여 아침을 대신하고는 새하얀 눈길로 중봉을 향하니

이른 새벽이라 산객도 없고 철저히 혼자가 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발자국도 없는 산죽 길


 


                                                                                  ▲동엽령가는 길


 


 

                                                                                        ▲동엽령

 


오늘은 꼭지(아내)까지 옆에 없어서 더한 외로움이 밀려오는데

다행이 하얀 눈을 이고선 산죽들이 살랑대며 나의 연인이 되어주고

상고대사이로 말없이 서 있는 주목은 그러한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가 된다.

이 어찌 홀로서도 행복하지 않으랴.


동엽령을 지나


무룡산


날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참으로 조망이 좋았는데.. 잠시 상념에 젖는다.

남덕유산까지 가느냐, 아님 육십령까지 계속 진행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다시 돌아서서 삼공리로 가느냐.

선택을 해야 한다.

문득 동엽령에서 걸어온 산죽길이 생각난다. 환상적인 그 길이 다시 또 걷고 싶어진다.


 


 

 


 

 

 

                                                        ▲무룡산에서 다시 동엽령으로 돌아서는 길..

 


조금전 그 정겨운 길 위에서 운해님을 만났고, 불암산님과 마이너님을 만났다.

평소에 얼마나 보고 싶어 하던 분들이던가.

산꾼은 언젠가 산에서 만난다고 했지만 그렇게 쉽게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뜨거운 포옹.. 그 따스함에 서리꽃도 녹아내리는 듯 했다.

 

 


 


 

                                                         ▲<느린★공명>님의 산행기에 비쳐진 우리 만남의 모습

 


그렇게 만난 우리의 모습이 어느 분 산행기속에 사진으로 올라와 있었다.

같은 길을.. 서로를 모르는 채

앞서기니 뒤서거니 걸어간 어느 산님의 산행기속에 담겨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

어쩌면 로또당첨보다 더 큰 행운인지로 모른다.


 

 

 

 


 

                                                                           ▲중봉에서 오수자굴 가는 길


 

 

                                                                           ▲무주구천동의 비파담

 


무룡산에서 동엽령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은 아름다운 산죽 길 위에서 더욱 가벼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발걸음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인지 모른다.

다시 환상적인 산죽길의 동엽령을 지나고


오후까지도 녹지 않고 남아 반겨주는 중봉의 서리꽃, 그 상고대터널을 지난다.

오수자굴아래로 

운치있게 열려있는 하얀 융단같은 눈길을 밟으니

졸졸졸... 구천에 메아리치는 덕유의 봄소식이 들려온다.

드디어

무주구천동

이미 봄빛은 비파담에 가득차 있지만

이제 덕유를 만나려면 앞으로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