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행복.. 백두대간 20구간 (하늘재-대미산-차갓재)
2008. 4. 27. (일) 맑은 후 이슬비
꼭지(아내)와 둘이서
일출 05: 38 / 일몰 19:08 / 음력 3.22
▲대미산 가는 길에 뒤돌아본 포암산
▣ 구간별 산행기록
06:00 하늘재
06:12 하늘샘
07:10-07:20 포암산
08:40 만수봉갈림길
12:25-12:45 부리기재
13:23 대미산
13:35 눈물샘
13:43 문수봉갈림길
14:54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석
15:35 차갓재
16:00 안생달마을 한백주양조장
총 산행시간 : 10시간 (20.02km) / 누적거리 : 404.27km
▣ 대간종주 거리 : 19.02km / 누적거리 369.27km (포항셀파 기준)
하늘재→1.35←포암산→2.82←만수봉갈림길→7.60←버리기재→1.35←대미산→5.90←차갓재→1.00←안생달마을
▣ 하산거리 : 1km (차갓재⇒안생달마을) 20분
▣ 식수위치 : 대미산 눈물샘
▣ 위험구간 : 없음
▣ 교통 : 서대구I.C-문경새재I.C-901번(동로방향)-관음리-하늘재 = 1시간40분(142km)
▣ 차량회수 : 안생달마을⇒하늘재 / 동로택시(017-522-3103) 25,000원+2,000원(문경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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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려앉은 고개 '하늘재'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계립령 즉, 하늘재는 참으로 오래된 고개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높은 하늘이 땅 위에 내려앉아 잠시 쉬고 있는 것 같은 그렇게 편안한 고갯마루다.
무려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개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잇는 고개로 문헌상 이름은 계립령 또는 지릅재라 불리기도 한다.
계립령을 처음 연 나라는 신라, 기록상 서기156년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을 열었다고 하니
백두대간에서 가장 먼저 열린 고갯길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온달장군은 물론,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상주를 칠 때도 이 고개를 넘었으며
망국의 한을 품고 길을 떠난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도 금강산에 가면서 여기에서 쉬어갔다.
그리고 1362년 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의 어가도 난을 피해 이 고개를 넘어 갔으니 예사고개가 아니지만
조선 태종 때 새재가 개척되면서 계립령은 잊혀진 길이 되고 말았다.
▲하늘재
그 잊혀져가는 고갯길..
오늘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하늘로 향한 문이 환하게 열려있다.
가끔씩 찾아주는 대간꾼 외에는 누가 있을까 싶다. 혹시 통제소에 감시원이 있나 기웃거리니 아무도 없다.
다음주면 산불경방이 해제될 터이니 앞으로는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산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목책을 넘는다. 앙상했던 초목은 어느새 연두색에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10분여 지나니 하늘샘이다.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바가지가 두 개 놓여있다.
길은 두 갈래 우측 옆으로 난 길과 바로 치고 오르는 길, 표지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치고 오른다. 리본이 드문드문 보이고 진달래가 활짝 피어서 운치를 더한다.
경사가 심하여 나무뿌리를 잡으며 오른다. 잔돌과 흙이 흘러내린다.
고산특유의 습하면서도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에 스며든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낙엽깔린 축축한 산길을 걸을때의 감촉과 초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러한 향기가 참 좋다.
아침에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끼었더니 여전히 안개는 걷히지 않고 시야를 방해하지만
어제 비가 내린 탓에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너무나 상쾌하다.
기온은 영상 7~8도 산행하기는 딱 좋은 날씨다.
초반이어서 그런지 꼭지가 힘들이지 않고 잘 오른다. 20여분 올랐나 보다.
잘 생긴 기암이 반기는데 그 뒤로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다.
소나무와 바위가 서로 어울린 풍경은 차라리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지나온 대간길을 더듬어 본다.
희미하지만 마패봉에서 이어져온 마루금과 주흘산과 부봉라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삼베를 들어뜨린 것과 닮았다는 포암산,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는 미끈한 암반을 오른다.
▲포암사입구에서 바라본 포암산
▲포암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맨 뒤쪽의 주흘산과 부봉라인
▲진달래 꽃길따라 포암산 오름길
▲포암산과 가야할 방향
07:10 포암산
대포알 같은 정상석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짙은 연무 때문에 멀리 가야할 능선들은 조망되지 않는다.
잠시 휴식하고 정상을 내려서니 젖은 낙엽길의 등로가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이라 좋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니 포암산의 정기가 발끝에 스며드는 것 같다.
진달래가 이제야 활짝 피어서 꽃길을 열어주고 희고 노란 제비꽃은 산 사면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비슬산 진달래보다 더 멋있네.”꼭지가 한 마디 한다.
꼭지는 꽃구경 가고 싶었는지 넌지시 오늘이 비슬산 참꽃 축제하는 날이라고 일러주었다.
“봐라~~! 이렇게 아름다운 진달래를 어디서 보겠노?”
인적 없는 대간길에서 만난 진달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상쾌한 기운이 넘쳐나는 연두빛의 등로.
▲진달래가 절정인 대간 길..
▲홀로 심심해 보이는 월악산국립공원 구조목
바보중의 바보 족도리풀
08:40 만수봉갈림길
안부에 올라서니 <만수봉 2.3km>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만수봉은 좌측이다.
우측이 대간길인데 출입금지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다.
<2008.3.1~2017.2.28>까지 자연생태계보호 목적으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길 또한 진달래가 활짝 피어서 산 사면과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고
생태계보호지역답게 이름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다.
▲만수봉 갈림길
▲가야할 대미산 방향
▲뒤돌아본 포암산
▲대미산 가는 길
▲현호색과 족도리풀
족도리풀이 곱게 단장하고 마중을 나온다.
이 꽃은 시집가는 신부의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은 꽃이라 하여 족도리풀이라 부른다.
그 뜻도 뜻이지만 다른 야생화와는 달리 또 하나의 기특한(?) 구석이 있어서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족도리풀은 산의 고도가 높고 햇볕이 은은하게 드는 그늘에서 자란다.
꽃은 거의 땅바닥에 붙어서 피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이 잎 아래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꽃이 땅에 붙어있으니 날아다니는 나비나 벌을 통하여 꽃가루받이를
할 수가 없고 땅에 기어 다니는 곤충이나 개미에 의해 수분이 일어난다고 한다.
봄에 일찍 보이는 애호랑나비가 이 꽃에 알을 낳고 깨어난 알은 족도리풀잎을 먹고 자란다.
뻐꾸기나 다를 바 없는 못된 애호랑나비인데도 그 알을 키워주고 먹여주니
족도리풀이야 말로 바보중의 바보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주위에도 헌신적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바보소리를 듣는다.
▲관음리 하산길.. 돌탑이 있는 안부
관음리로 탈출할 수 있는 돌탑이 있는 안부를 지나니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된다.
한 분의 산꾼이 우리를 앞질러 간다.
고도는 800~900m를 유지한 채 고만고만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가끔은 남쪽으로 갈평마을이 시야에 들어올 뿐 북쪽 월악산으로는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가스층 같은 연무가 짙게 깔려서 월악산의 아름다운 영봉들을 볼 수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꼭두바위봉은 표지석이 없어 어딘지도 모르게 지나쳤지만
봉우리에 올라설 때마다 탁 트인 전망대가 있어서 날씨 맑은 날은 조망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위로는 진달래가 터널을 이루어주고 땅에서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환상적인 몸짓으로
꽃길을 열어주니 봄날의 산행묘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부리기재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40여분 쉬엄쉬엄 오르니 대미산이다.
▲갈평방향의 조망
▲가야할 1062봉
▲1062봉 오름길의 너덜지대에서 뒤돌아본 포암산
▲부리기재
달아나 버린 절반의 행복
13:23 대미산(大美山ㆍ1,115m)
크게 아름다운 산? 여인네의 몸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산이라는 뜻 같다.
또 다른 이름은 여인의 검푸른 눈썹을 닮았다고 하여 대미산(黛尾山)이라고도 부른다.
대미산 아래의 샘을 눈물샘이라 하였으니 대미산(黛尾山)? 눈썹산? 이란 이름도 맞을 것 같다.
대미산에서는 소백산의 조망이 일품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연무로 보이지 않는다.
여우목고개방향으로 겨우 능선이 조망된다.
흡사 가야할 대간 길 같아서 잘못하면 알바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리본이 양쪽으로 매달려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하면 여우목고개로 빠질 것이다.
가야할 대간은 좌측으로 급하게 꺾인다.
▲대미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눈물샘을 지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는 하늘이 맑다고 했는데 이건 미인의 눈물인가..
비닐우의가 하나 있긴 하지만 아직 2시간을 더 가야 하는데 혹시나 하늘이 쿠당당~~ 변덕을 부릴까 걱정이 된다.
기온은 영상 4~5도, 온도가 조금만 더 내려가면 눈이 내릴 것 같은 차가운날씨다.
서서히 빗방울이 굵어지는지라 꼭지는 비닐우의를 입는다.
문수봉갈림길에는 <지리산/백두산>이정목이 있어서 백두대간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준다.
바로 위 헬기장에는 할미꽃이 군락을 지어 수줍은 듯 피어있고 개별꽃과 노랑제비꽃은 계속 발동무가 되어준다.
잡목이 우거지고 비가 내리고 있어서 조망은 없지만 운무속의 대간길은 부드럽고 아늑하여
더욱 운치가 있고, 능선은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고도차를 유지한 채 오르고 내린다.
낙엽송이 유난히 많고 가끔은 진달래 꽃길이 열린다.
▲벌써 절반? 절반의 행복이 달아나버린 백두대간 중간지점
대미산에서 1시간 30여분 걸어왔을까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남한구역의 734.65km중 그 중간인 367.325km 지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작년 8월에 시작하여 걸어온 대간길이 367km, 그 중간지점에 도착했으니 벌써 이만큼 왔나 싶다.
한편으로는 가야할 길이 반틈밖에 남지 않았으니 대간의 큰 행복이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도 아니벌써? 하다가 홀연히 가는 것이거늘..
그동안 선답자들 덕분에 큰 어려움과 알바 없이 진행하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중산행이 많아서 아쉬움이 컸으나 봉화산 구간과 조령산구간은 언제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다.
지리산 만복대능선과 갈령에서 시작하였던 속리산구간에서의 조망은 참으로 좋았고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역시 빙판길에 진행하였던 대야산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잠시 지나온 대간의 추억에 젖어있으니 꼭지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가도 가도 차갓재가 안 나와?”
전신주가 나오면 다 왔다고 했더니 바로 그때 꼭지의 반가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저기~ 전신주가 있네.”
엄청 반가웠나 보다. 산에만 오면 걷기 싫어하는 꼭지,
그러면서도 집에 있는 날은 산길이 눈에 아른거려서 견딜 수 없다고 하니 증상치고는 묘한 증상이다.
▲부슬부슬 부슬비 속으로...
▲개별꽃
▲편안한 산책로 같은 차갓재 가는 길
▲날머리 안생달 마을
전신주를 지나 10분여 진행하니 거대한 송전철탑이 이정표역할을 해주는 차갓재,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만 우측으로 표지리본이 많이 걸려있다.
작은 차갓재까지 더 갈까 하다가 어차피 다음구간은 저수령에서 끊어야 하니 별의미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산한다고 하니 꼭지가 왜 더 가지 않느냐고 약을 올린다.
하산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없던 힘도 저절로 생기나 보다.
그렇다고 별재까지 갈 수는 없는 일
20분정도 걸려 안생달마을에 도착하니 관광버스가 한 대 주차되어있고
한 무리의 산꾼들이 양조장안에서 뒤풀이에 열중이다. 장소가 양조장인 만큼 모두 거나하게 취한듯 하다.
절반의 축하주? 우리는 집에 가서 자축하기 위해 맛이 좋다는 민속주를 몇 병 사고는 동로택시에 전화하니
자신은 대구에 있다면서 문경택시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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