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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사계 2부. '겨울나무에 피는 꽃'

산사랑방 2009. 3. 27. 18:11

 

백두대간의 사계 2부 '겨울나무에 피는 꽃'

8~19구간(빼재~하늘재)

 (2007. 12. 2 ~ 2008.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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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2. 

꼭지의 부상으로 빼재에서 추풍령까지는 홀로 진행하였다.

가을인가 했는데 겨울은 금방 찾아왔다.

대간을 시작한 이후 대덕산에서 첫 겨울을 맞은 것이다.

 

 

 

대덕산의 첫 눈은 차량회수를 힘들게 했다.

부항령에서 택시를 탓지만 고도가 1,000m인 빼재로 올라가는 도로에 눈이 쌓여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 도로가 얼어붙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의리없는 택시 아저씨가 중간에 나를 내려주고 가버렸다.

택시비는 다 받고..

 

할 수 없이 미끄러운 도로따라 1시간이나 더 걸어서 올라갔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눈길에 체인없이는 차량이 내려올 수가 없어서

거금(?) 주고 체인까지 사서 내려온 고달픈 대간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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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6.

꽃은 봄과 여름, 가을에만 피는 것이 아니었다.

겨울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아름다운 눈꽃, 겨울 나무는 나무 자체가 꽃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름난 국립공원도 아니 백두대간 어느무명봉에 핀 서리꽃

그날은 감회가 남달랐다.

 

 

 

 <삼도봉 가는 길.. 1170봉의 서리꽃>

 

 

 

<멀리 가야산 같기도 하고..>

 

 

 

 

삼도봉 가는 길..

겨울 날, 높은 산에 서리꽃이 피었다고 해서 별다른 건 아니었지만

그곳이 백두대간이었기에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던 것이다.

 

 

 

삼도봉 가는 길

 

 

 

<황악산> 

 

 

 

 2008. 1. 6.

겨울산행의 진수를 맛보며 황악산을 넘고

백두대간 고개 중 제일 낮고 바쁜고개인 추풍령에 내려섰다.

철길을 건너고,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니 기분이 묘했다. 이것도 백두대간 마루금이라니..

거기다가 대간꾼은 누구나 걷기 싫어하는 중화지구대가 앞을 가로 막았다.

그렇다고 건너뛸 수는 없는 일

이때부터 꼭지가 함께하여 즐겁고 편한기분이 들었다.

 

 

 

 

국수봉 763m, 겨우 고도가 763m?

하지만 중화지구대에서는 국수봉이 제법 이름값을 한다고 했다.

조망이 좋은 봉우리지만 눈발이 날리는 바람에 조망은 커녕 국수봉 하산길에서

꼭지가 엉덩이 썰매를 타는 바람에 애꿎은 바지만 고생을 시켰다.

   

 

 

<국수봉 하산 길>

 

 

 

 

그로부터 일주일 뒤 큰재에서 지기재구간

백학산을 내려서니 가야할 대간길이 땅바닥에 바짝 업드려  있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등성이가 동네 야산 수준이었다.

 

 

 

 

중화지구대의 마지막 산 '윤지미산' 

가수이름을 본딴 건 아니었을 테고 어쨌든 중화지구대가 끝이 나서 좋았다.

고도가 겨우 538m인 윤지미산.. 그날은 거리도 짧아서

꼭지와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제13구간을 마무리하고 화령재에 내려섰다.

 

 

 

2008. 2. 10. 

겨울내내 상주를 오고가며 중화지구대가 끝나고

봉황산을 올랐는데 중화지구대와는 달리 산세도 수려하고 무게가 있었다.

아마 속리산이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았다.

 

 

 

<속리산의 문지기 봉황산>

 

 

봉황산에 올라서니 속리산이 지척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빨리 속리에 들고 싶었다.

특히 형제봉에서 펼쳐지던 조망은 두고두고 잊지못할 것 같았다.

 

옛 성인들은 이와같은 풍경앞에서면 두 손을 모아 읍을하였다고 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다짐하였다.

저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마치 바다위의 파도가 요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고

 

 

 

 

가야할 속리산을 바라보면

산군들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자신을 뽐내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상주 화북방향으로도 산들이 첩첩이 이어졌다.

 

 

 

 

 

 

아이젠은 물론이고 보조자일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소문으로만 듣던 문장대 암릉구간을 내려섰다.

속리의 신령님께 양해를 구하고..

선답자들의 산행기 덕분에 꼭지와 암릉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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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9.

지난 주 속리의 신령님께 삭삭 빌어서 겨우 문장대를 넘고났더니

대야산이 속살을 감춘 채 넌지시 미소를 보내왔다.

 

 

 

 

대야산..

과연 저 너머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대야산을 내려서려니 로프가 몇 가닥 보이고 하산길은 빙벽에 낭떠러지,

도대체 해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강 길이는 약 80m,

 

아래도 절벽.. 꼭지가 자신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한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꼭지에게 지금까지 할미봉 등 어려운구간을 잘 통과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용기를 주면서 당부했다.

"로프 놓지면 죽는다. 절대 놓지지 마라!" 

"..............."

 

 

 

 

그때, 겨울에는 피하라는 선답자들의 주의가 떠올랐다.

갑자기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오늘 여기서 사고가 나는 건 아닌가.. 하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곰넘이봉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는데 산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저 무섭게 생긴 봉우리를 내가 내려왔다니.."  꼭지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 마디

"앞으로 대야산에는 절대 안 갈거야."

...............

 

 

장장 13시간에 걸친 악전고투끝에 버리미기재에 안착했다.

곰넘이봉을 넘을 때까지도 빙판에 로프구간에.. 보조자일을 두 어군데 써먹기도 했다.

정말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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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16.

장성봉에 올라 대야산이 도대체 어째 생겼나 하고 뒤돌아보았다.

운무속에 솟아오른 대야산은 신선이나 노는 봉우리처럼 신비하게 보였다.

저기를 우리가 넘어왔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힘든구간을 지나고 나니 룰루날라~~ 휘바람소리가 절로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장성봉에서 뒤돌아본 대야산>

 

 

 

<악휘봉의 기암>

 

 

 

<희양산 가는 길.. 은티마을 방향>

 

 

악휘봉에서 망중한을 달래며 감상에 젖어있다가

봉우리 몇 개를 넘어서니 이제는 희양산이 다가서고 있었다.

대야산의 로프구간도 무섭지만 희양산은 또 어떤가?

그래도 빙판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설마 스님들이 여자를 두들기겠냐며..

"오지 마라!"..  "가야 한다."

"그래, 올 테면 와봐라." 하며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막아선다는 희양산

그냥 소문이겠지 하며 갔더니 몽둥이만 빼고는 정말 그랬다.

 

 

 

 

자칭 '봉암나한진'

 

나뭇가지로 대간꾼들이 넘지 못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비닐움막에는 스님이 지키고 있었다. 앞서 내려간 학생들이 스님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니

은티마을로 쫓겨나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앞이 캄캄했다.

  

 

 

<구왕봉에서 바라본 햇살처럼 하얗게 빛나는 태양 같은 산이라는 희양산>

 

 

 

<표시기도 거의 없는 희양산 로프구간>

  

 

학생들이 내려가고 스님이 움막에 들어간 틈을 타서

꼭지와 살금살금 개구멍을 이용해 통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에 스님이 움막에서 나와 우리를 보았지만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줄행랑을 쳤다.

그때서야 무섭고도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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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6.

대간을 시작하고 처음 봄을 맞았다.

은티마을 계곡의 버들강아지가 맨 먼저 봄 소식을 가져왔다.

배너미평전을 지나면서 산괴불주머니, 노루귀, 제비꽃..

봄의 전령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나물캐러 나온 봄처녀 마음이 그러할까.. 마냥 가슴이 설레었다.

물론 산에도 봄이 왔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도 따뜻한 봄이 왔다.

산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 봄이 아니던가.

 

 

   

 

<이화령 가는 길에 바라본 백화산>

 

그러나 하늘은 흐리고 산마루는 잿빛으로 물들어

어느 한군데 봄기운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이미 봄은 우리곁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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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3.

이화령에서 하늘재구간은 비가 내렸다.

조령산은 암릉구간에 로프가 무려 42개? 위험하다하여 꼭지를 떼놓고 혼자 걸었다.

비가 찔금찔금 내리는 가운데 안개가 산정을 휘감았다.

보일락말락 아주 약을 올리면서..

 

 

 

 

조망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얄미운 구름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가 요술을 부리면 제비꽃이 마중을 나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노란 생강나무가 마음을 빼앗아 가버렸다.

 

 

 

<조령산의 괭이눈>

 

 

 

<부봉 가는 길의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향에 취한 탓일까.

계곡으로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알바가 전화위복이 되어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미치광이풀과 괭이눈과의 첫 만남..

갑자기 세상이 환해 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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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3부에서 계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