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설악산

내설악의 12선녀탕계곡과 40년 전 조난사고

산사랑방 2008. 12. 24. 11:01

 


내설악의 12선녀탕계곡과 40년 전 조난사고



2008.  10.  26 (일) 맑음


꼭지(아내)와 둘이서 복숭아탕까지 왕복5시간 

 

 


12선녀탕 들머리


대간을 마무리 하기위해 이틀이라는 시간을 내어 설악을 찾았으나

예상 밖의 복병(?)을 만나 마등령에서 미시령구간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돌계단으로 쏟아져 내리는 낙엽들..

 

따스한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이었지만 기대했던 만추의 여운은 사라지고

계곡의 가을은 잰걸음으로 후다닥 물러가고 있었습니다.


어제(10월25일)는 꼭지가 낮에는 찜질방에서 시간을 때우며 조침령으로 차량지원을 해 준다고 고생을 했지요.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산으로 데리고 가는 것 뿐입니다.

오늘은 무시무시한(?) 미시령에서 황철봉으로 대간길을 잇는 대신 12선녀탕에 간다고 하니 좋아라! 하더군요.



 

밤에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간다는데 밤에 찾아올 걸 그랬나 봅니다.

 

 

1968년 10월23알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이러한 아치형다리가 엄청 많습니다.

몇 개인가 헤아려보려 했는데 너무 많아서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40년 전 그때 이러한 다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10월23일 

카톨릭의대 산악부원들이

설악산을 등반하기 위해 첫 버스를 타고 남교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남자6명 여자3명 모두 9명으로 12선녀탕 계곡으로 올라 제1탕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쯤이 되었지요.

휘발유 버너로 점심을 해먹고 복숭아탕을 지나 막탕(?)에서 내일을 위해 야영에 들어갔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유속이 빨라 바위덩어리도 금방 쓸려내려 갈 것 같이 보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계곡에는 낙엽이 소복이 쌓였을 테고 막바지 단풍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겠지요.

 


10월24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한 줄기 하려나 생각하고 식사를 끝내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자연의 기상상황을 잘 판단하여 하산을 했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조금 오르니 갑자기 낙엽위로 후드득하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지나가는 소나기겠지 하고

산사랑방처럼 비오면 우의입고 산행하면 되지 뭐~~ 하며 판초우의를 입고 산행을 강행했나 봅니다.

대승령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진행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와서..



 

그 당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라 이렇게 잘생긴 이정표도 없었겠지요.

 


할 수 없이 대원들은 비를 피해 근처의 동굴에 들어가 불을 피우고 젖은 옷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동굴밖에는 불빛이 번쩍거리며 번개도 치고 천둥소리도 들렸지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리더는 사태파악을 위해 정찰을 나갔습니다.




계곡에 설치되어 있는 이러한 계단의 소중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계곡으로 나가보니 짙은 운무로 앞을 분가하기 힘들었고 길은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일단 밥을 해먹고 하늘을 지켜보기로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미 동굴에도 물이차고 있었거든요. 불을 피울 수가 없었습니다.

 



낙엽이 사면을 타고 쏟아져 내립니다.

 


그때는 물이 계곡의 경사면을 타고 이렇게 쏟아져 내렸을 겁니다.

모두 점심과 저녁을 굶은 허기진 상태에서 밤이 다가왔습니다.

기온은 급격히 영하로 떨어지고 비는 진눈개비로 바뀌었습니다. 강풍이 불고 늦가을이었는데도

산은 삽시간에 겨울산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ㅠㅠ..



 

체온을 유지하기위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추위에 달달 떨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10월25일

날이 밝았으나 날씨는 여전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요.

이때 리더였던 김신철이 남교리로 하산결정을 내립니다.




저 구름다리만 그때 있었다면..

 


큰 짐은 남겨두고 비상용 버너와 자일등을 챙겨서 판초우의를 입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부 리더인 긴한종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 먼저 자일을 묶고 급류속으로 들어갔으나 건너지 못하고

리더인 김신철이 재 시도했지만 실패, 하산을 포기하고 다시 동굴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전8시

폭우는 더욱 거세게 퍼부었습니다.

리더는 다시 하산을 결정하고 이제는 계곡 대신 산기슭을 따라 길을 뚫으며 암벽을 횡단하여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빗물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졌으나 복숭아탕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11시, 1km거리를 하산하는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지요.




저 노란 생강나무는 그때의 절박함을 알고 있을까요.

 


이때 리더와 부 리더는 탈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마 책임감 때문에 앞장서서 길을 뚫다보니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낙오자를 방지하기 위해 이때부터 두 사람을 부축하여 일렬로 내려가기로 했지요.




눈부신 아침햇살이 저렇게 아름답건만 그때는.. 그때는.. 저 햇살이 너무나 그리웠을 겁니다.

 


11시30분

불을 피우기 위해 버너를 켰으나 실패하고 탈진한 리더와 부 리더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의 진행이 힘들게 되자 김형옥과 민병주는 

구조요청을 하기위해 하산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두 사람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저기 다리 아래에 급류가 요동친다고 상상해 보세요.

 


남은 사람들도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서 쓰러진 둘을 데리고 길을

나서지만 그것은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부상자를 데리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 후 한명숙도 탈진해 쓰러집니다.




계곡은 들어갈 수록 이렇게 좁아지고 깊어집니다.

 


이쯤에서 그들은 다시 두 팀으로 나눕니다. 탈진한 한명숙은 의식을 잃은 리더와

부 리러 두 사람을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네 사람도 구조대를 부르러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위험에 처할수록 서로 뭉쳐야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복숭아탕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복숭아탕입니다.

 


물길 옆을 따라 내려가던 네 사람 중 뒤에 쳐져서 따라오던 강형태, 박승호가

차례로 쓰러졌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내려가던 홍정숙과 조나영은 이를 알고

당황하여 산줄기를 버리고 물길 옆으로 붙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조나영이 바위를 넘다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급류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잠시 몸을 피했던 복숭아탕입니다.

 


이를 본 홍정숙의 절규가 빗속으로 메아리쳤습니다. 그녀는 계곡을 버리고

미친 듯이 산기슭으로 올라붙어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졸음이

쏟아지자 소나무가지를 꺾어서 이불삼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철 난간이 없었겠지만 이곳으로 내려왔으리라 짐작됩니다.

 


10월26일, 40년 전 바로 오늘, 아침에 눈을 뜬 홍정숙은 깜짝 놀랐습니다.

드디어 날이 개고 햇살이 비쳐들었거든요. 내려오다가 선발대로 나섰던 두 사람을 찾았지만

김형옥은 의식을 잃은 채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민병주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습니다. 그들을 남겨둔 채 그녀는 무서움에 떨면서 계속 내려갔습니다.



 

 

남교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30분,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그 후 김형옥은 구출되었으나

마지막에 남았던 한명숙은 나무에 기댄 채 사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지요.


오늘 같은 가을 날..

 

전혀 예상 밖의 기습적인 폭우에 세 명은 실족사하고

네 명은 저체온증으로 숨졌습니다.

 

 



복숭아탕 상부입니다.

 

 

계곡 아래로 암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네요.

꽃다운 7명의 젊은이들을 앗아간 계곡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 끝 -

 


사건내용 출처 :  ‘신갈나무’님의 불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