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지리산

'만복대의 여명' 추억의 백두대간2 (성삼재-여원재)

산사랑방 2015. 12. 16. 17:21
                        

                                                   

만복대의 여명...  (성삼재-만복대-여원재)

                                                              

2007. 8. 26 (일) 폭염주의보

                                                            

 

 

                                                                               

총산행시간 : 11시간 (20.6km)

 

 

 

 

산행개요 (성삼재-만복대-여원재)


오늘 진행하고자 하는 성삼재에서 만복대를 거쳐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지리산 서북능선의 한 자락으로서 지리의 주능선을 한눈에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서 좋고

가을이면 억새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는 만복대를 지나기에 더욱 가슴이 설레는 구간이기도 하다.


마한의 마지막 왕이 진한의 공격을 막기 위해 달궁마을에 도성을 쌓고 최후의 항전을 했으며

정장군을 시켜 수비토록 했다는 대서 유래한 정령치, 그곳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고리봉을 내려서면 백두대간 분수령이 잠시 숨을 고르는 운봉읍 주촌리


 

 

                                                                  

▲정령치에서 바라본 주촌리의 풍경

 


지리산덕분에 ‘구름 덮힌 멧부리’ 란 이름을 얻은 운봉(雲峰)고원은 펑퍼짐하여 더욱

평화로워 보이는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마을과 같지만 이곳에는 사연이 많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은 수정봉을 넘고 여원재를 지나 운봉고원을 감싸 도는 대간의 마루금을 걷는 내내

길게 이어진다고 하니 고을마다 얽힌 유래와 재미있는 사연들을 음미하며 걷는다면

대간산행의 의미가 좀 더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삼재에서 팔량치,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은 3년전 초가을에

서울의 산그림자님부부과 대전역에서 조우하여 꼭지와 함께 걸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처음으로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서대전을 거쳐 구례구역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그때 알았고, 그 후로 종종 야간열차를 타고 홀로 지리산종주를 하기도 했다.


오늘도 자가운전과 차량회수의 부담없이 그때처럼 무궁화열차에 몸을 싣는다.

갈 때는 대구에서 대전, 서대전에서 구례구로 이어지는 야간열차를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여원재에서 남원행 버스를 타고 남원서 대구로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성삼재에 남겨진 행복


대간을 시작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마음은 이미 수없이 성삼재에 가 있었지만 일상의 일들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일상을 팽개치고 산에 갈 수는 없는 일

대간 병에 걸리면 눈에 뵈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아직은 초기증세라 다행인 것 같다.

어쨌거나 “산은 늘 제자리에 있다.”고 했으니 그 명언(?)을 위안으로 삼는다.


대전역에서 당일지리종주를 하신다는 울트라맨 두 분을 만나 택시에 합승하여 서대전역으로 이동한다.


00:45 기다리던 구례구행무궁화에 올라타니 서 있는 승객들, 복도에도 출입구에도

신문지를 깔고 앉은 승객들로 기차는 만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진풍경인데 예전에는 흔히 그랬다.

아마 두 편이던 기차가 한편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예약을 한 터라

자리에 앉았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03:25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역사는 산꾼들로 시끌벅적하다.

저 많은 인원이 버스 한 대에 다 탈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택시와 분산된 덕분인지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버스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20여분 대기하는 시간을 이용해 터미널 앞에 있는

24시 해장국집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어둔다.  ‘대간은 먹은 만큼 간다’ 고 하지 않은가.


버스는 화엄사에서 학생들을 15명정도 내려주고 성삼재 꼬부랑길을 힘겹게 오른다.

꼭지가 학생들을 뒤돌아보며 안쓰럽다는 듯 뭐라고 중얼중얼한다.

“하필이면 그 힘든 화엄사 코재로 갈까??” ㅎㅎ 꼭지다운 생각이다.


04:30 성삼재

1구간 때의 행복이 기다리는 곳이다.

“아~ 하늘에는 별도 많다.” 갑자기 꼭지가 한 마디 던진다.

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 별자리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많다.

“진짜 별도 많네. 은하수 주위로 우주의 별이란 별은 별똥별까지 여기 다 모인 같네.”

 

 

 


 

성삼재에 올라서면 늘 느끼는 일이지만 맑고 따스한 별이 많아서 좋다.

별빛은 밝았지만 그래도 일출이 1시간 이상 남은 터라 여전히 길은 어둡다.

이마에 불을 켜고 산문에 이르니 축축한 이슬방울이 반갑다며 온몸으로 달려든다.


서북능선은 등로가 좁다. 하지만 주능선처럼 돌길이 아닌 흙길이라 걷기는 좋다.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공간, 키 큰 산죽과 우거진 잡목들이 이슬에 젖어

사정없이 물 세레를 퍼붓는다. 아예 빗속을 걷는 느낌이다.

바지는 금방 젖어들고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인 채 진행한다.

 

 

 


 

                                                                                      
 

 

 

 

                                                   

▲지난번 1구간 때 야생화로 꽃동산을 이루었던 멀리 돼지평전이 보인다 

 


1시간여 지나 작은 고리봉이 가까워서야 능선들이 어슴푸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넉넉한 반야봉이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그 위엄을 뽐내고 노고단과 종석대도 하늘금을 그으며 다가온다.

천왕봉방향으로 일출이 시작되자 뱀사골방향으로 운무가 피어올라 반야봉을 휘감으며

노고단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급격히 빠르게 움직이는 여명의 장면들... 지리산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지리산이 하루 중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지’ 서둘러 고리봉을 내려선다.

우리는 산행을 하면서 늘 이러한 정경을 만나기 위해 꿈을 꾼다.

오늘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산행.. 만복대의 여명


만복대아래 조망이 트이는 곳까지 가면 일출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걸음을 빨리한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결국은 꼭지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종아리에 긁힌 자국이 심하다.

아니라 다를까 엄살이 많은 꼭지 아프다며 죽는 시늉을 하는데 이때는 아이가 따로 없다.

연고를 바르고 대일벤드를 하나 붙여주고서야 사건은 종료가 된다.

 

 

                                                                   

▲뒤돌아본 작은 고리봉

 


작은 고리봉을 내려와 30여분 지나 전망대안부에 도착하니

천왕봉방향에서 붉은 피를 토해내듯이 하늘은 열정적인 몸짓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다.

종석대에서 노고단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이 유난히 선명하다.

그들이 하나 둘 시야에 안겨드는데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 환희에 젖어든다.


산은 스스로 소리 내는 법이 없고, 바람은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고 한다.

우리 인간도 홀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산에 산만 존재한다면 너무나 삭막할 것이 아닌가.

자연속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를 빛내주며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인 것이다.

또한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때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가보다.

오늘 그 가운데 꼭지가 있다. 

 

 

                                                                   

▲반야에 흐르는 현란한 빛과 운무


 

 

 

                                                                               

▲하늘과 땅의 조화

 


'지리는 밤새도록 고민하며 울었을 것이다.' 나는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한 송이의 국화꽃이지만 그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는 봄부터 운다고 했다.

하물며 오늘 이 아름다운 장면들을 위해서야 어찌 밤새도록 울지 않았을까.


하늘에 감사하고 그 황홀한 정경에 초대받음에 감사할 뿐이다.

더구나 홀로가 아닌 꼭지와 함께해서 더욱 그 기쁨이 두 배로 늘어났다.


아예 꼭지와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제 막 꽃을 피우던 억새도 손님맞이를 위해 고개를 내 민다. 그리고는 춤을 춘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몸짓... 단 한 순간이라도 잡아둘 생각으로 카메라를 꺼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사진 몇 장은 나의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지리의 품은 너무나 넓어 그 안에 안기지 못할 것이 없고

그가 풍기는 아름다움 또한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데 어찌 사진 몇 장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슬이 햇살을 머금어 더욱 투명하고 맑은 빛으로 살아나고

이른 새벽의 순한 동살이 만복대능선을 곱게 보듬은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새벽빛의 황홀함에 우리의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만복대 2.3km 지점에 이르렀을 때는

복에도 겨운 또 다른 풍경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산동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섬진강위를 흐르는 운해로 대지가 마치 바다 속에 잠긴 듯했다.

 

 

 

 

 

 

 

                                                          

▲산오이풀이 지천에 피어난 길

 

 

 

                                                                                  

▲만복대를 오르는데 뒤로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만복대를 오르는 꼭지,

화사한 몸짓으로 피어난 산오이풀과 엉겅퀴... 많은 들꽃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며 반겨주고

섬진강을 감싸 도는 운해는 선경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평소 같으면 꼭지가 힘들다고 보채서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올랐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 번씩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고통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으니... 
 

 

                                                       

▲만복대 돌탑과 마주보고 있는 천왕봉과 중봉


 

 

 

                                                                                 

▲지나온 성삼재방향


 

 

 


 

07:35 만복대의 아침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에 설 때까지 산님들도 한 사람 만나지 못했다.

오늘은 지리의 서북능선을 꼭지와 둘이서만 걷게 된 것이다.

둘이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들

예전에 장관을 이루었다는 억새평원은 찾아보기 힘들고 듬성듬성 피어난 억새들이 무리를 지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있었지만 만복대는 역시 만인에게 복을 내려줄 수 있는 넉넉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특히 가야할 고리봉과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감동 그 자체다.

그 만복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다.

 

 

                                                       

▲가야할 고리봉과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산내면 달궁방향의 깊은 골


 

 

 

                                                                          

▲멀리 지리의 천왕봉과 중봉


 

 

 

                                          

▲성삼재 방향으로 뒤돌아본 대간 길...

착각할 정도로 수도산에서 단지봉으로 이르는 능선도 이와 꼭 닮았다

 


가져간 백도하나로 1438m의 만복대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천왕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과 땅의 조화에 감동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달궁계곡과 반야봉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는 심마니 능선

인삼을 먹지 않고는 오를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고 심마니 능선이라 했다는데 오늘은 단숨에 오를 것 같다.

1400의 높은 고도에 불어오는 바람 또한 예사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스스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지만 우리의 옷깃을 스치며 자신을 드러낸다. 너무나 시원하다.

정령치를 향한 발걸음이 가겨워짐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한의 전설이 서려있는 정령치(鄭嶺峙)


기원전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鄭장군을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정령치,

병사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을 새던 이 고갯마루에서 달궁마을을 내려다보며 잠시 휴식한다.

 

정령치에는 샘터가 없어서 매점에서 식수를 보충해 가야한다.

인심 좋은 매점아주머니는 대간꾼들을 위해 큰 주전자에 식수를 담아 놓았다.

필요하신 분은 아무나 부어가면 된다.

하지만 겨울에는 매점이 문을 닫으니 식수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샘터가 있으나 수량이 적어

물탱크에 모아서 사용하는데 겨울에는 물이 나오지 않으니 영업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은 구름 속에 숨어 철쭉 생각에 잠겨있는 듯


 

 

 

                             

▲대간 분수령이 잠시 몸을 낮추는 주촌리 마을풍경, 꼭지는 저 끝까지 가야 하냐며 걱정이 태산이다


 

 

 

 

 

 

                                                                                  

▲정령치 휴게소 

 


메뉴는 파전과 동동주, 라면과 국수뿐이라 국수를 시켜서 때 이른 점심을 먹는다.

꼭지와 캔 맥주를 한잔하며 여유를 부리는데 주촌리까지는 두 어 시간 부지런히 가야한다며

친절하게 일러준다. 아주머니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는 고리봉을 오른다.


날씨도 더워지고 배가 부르니 고리봉을 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르자마자 그늘도 없고 너무 더워 얼른 고리봉을 내려선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다.

곧 이어 걷기 좋은 키 작은 산죽길이 나오고 골을 타고 올라온 시원한 바람은 이내 땀을 식혀준다.

능선길이 완만해지더니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 아늑하다. 목기의 고장답게 나무도 크고 울창하다.

꼭지의 걸음은 서서히 느려지고 가다쉬다를 반복한다.

빨리가지 않으면 대구 가는 막차를 탈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아도 속도는 느릿느릿 여전하다.

 

 


대간의 마루금도 쉬어가는 주촌리 가재마을


마을이 가까워지니 전나무대신 이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빼곡한 솔숲길이 고기리까지 길게 이어진다.

운치 있는 솔숲길을 지나 갑자기 마을이 있는 도로에 내려서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백두대간분수령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 보통 운봉고원이라 일컫는 이곳은

대간 분수령을 경계로 남원과 수계가 나누어진다.

 

 

                                                                 

▲고기리 하산길의 아늑한 잣나무 숲길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인다.

좌측은 고기교 다리, “그렇지, 어느 분이 다리를 건너가면 알바라고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길을 건너지 않는 것이 대간길인데..

60번도로 우측 운봉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길이나 다리를 건너서는 안 되지..’

도로 옆으로 아름답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반겨준다. 30도가 넘는 뙤약볕에도 코스모스는 싱글벙글이다.


하지만 뙤약볕의 도로를 걷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축 쳐져서 걸어가는 꼭지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대간 길을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

길이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덕치 보건소를 지나니 노치샘이 있는 가재마을로 가는 길이 뚜렷하다.

들머리로 알려진 잘 생긴 소나무가 4그루 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을 뒤쪽으로 소나무가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마을회관앞을 지나니 묻지도 않았건만 주민들이 “이 길로 쭉 올라가라며.”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대간꾼이 뭐 대단한 벼슬도 아닌데 이렇게 인심이 후하다.

 

 

                                                          

▲고기리에서 가재마을 가는 코스모스 꽃길


 

 

 

                                           

▲덕치보건소에서 바라본 노치샘이 있는 가재마을(사진의 정중앙)과 우측의 수정봉


 

 

 

                                                                   

▲말끔히 청소하고 새로 단장된 노치샘

 


11:50 가재마을에 도착하니 노치샘이 생각보다 깨끗하다. 듣던 것과는 달랐다.

말끔히 보수도 된 것 같고, 샘 청소도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티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물은 계속 넘쳐서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물맛이 너무나 좋았다.

물 맛 좋은 동네는 인심도 좋다던데...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며 쉬었다 천천히 가라고 인사를 건넨다.

대간꾼은 어디에 가도 환영을 받지만 그럴수록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미숫가루를 태워서 한 잔씩 먹으며 10분여 시원한 샘터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고도계를 보니 585m를 가르키는데 동네 샘터의 고도가 500m가 넘다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왜 사람들이 운봉고원이라는 말을 쓰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제가면 언제 또 올거나..’ 아쉬움에 물 한바가지 더 들이키고 생각을 한다.

이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들까? 남강으로 흘러들까?

 


 

소나무 향기에 취한 주촌리에서 여원재


마을을 한가로이 내려다보고 있는 4그루 소나무를 지나

급경사길을 치고 오르니 비지땀이 쏟아진다. 왜 이러나 싶어 온도계를 보니 기온이 32도다. 헉~~~~!

아무리 폭염주의보라고 하지만 그래도 고도 600m가 넘는 산중의 기온치고는 너무한 거 같다.

복사열 때문인가... 더위 기세에 눌렸는지 바람마저 달아나고 없어 땀으로 흠뻑 젖고서야 능선에 올라선다.

그제야 산들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걷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조망은 없으나 걷는 맛이 좋은 소나무숲길 
 

 

 

                                                                          

▲수정봉가는 길의 명물 고인돌?


 

 

 

                                                                     

▲수정봉에서 바라본 만복대능선

 

                                                                

목기와 벅수로 유명한 운봉이라 하더니 역시 잡목은 없고 소나무가 주종인데 모두들 잘생겼다.

고인돌(?)을 지나면서 산님들 7-8명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턱이 빠지도록 맴맴~~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1시간 20여분 쉬엄쉬엄 걸음을 옮기니 수정봉(804m)이다.

정상석은 없지만 여원재까지 4.2km(100분)이라고 쓰여진 이정목이 반겨준다.

100분? ㅎㅎ 꼭지에게는 꿈의 시간대다. 소나무사이로 지나온 만복대능선이 아련히 조망된다.


계속 이어지는 솔 숲따라 갑자기 고도가 급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도가 이렇게 떨어지면 안 되는데.. 다음에 올라갈 일로 어정어정 따라오는 꼭지가 걱정이 된다.

그러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 대간이 어디 호락호락 하다더냐.

군데군데 벌목으로 베어진 나무들이 나뒹굴고 있어서 길이 더욱 지루하게 느껴진다.


14:00 고도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입망치(570m)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니 이제는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은데...

704봉까지 30여분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른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키가 작아 마치 동네 뒷산에 온 기분이 든다.

704봉에서 남원방향으로 잠시 조망이 트이더니 또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는데 그 향기 은은하게

코끝을 자극하고 간혹 솔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솔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숲이 우거져 마루금을 가늠할 수 없지만 군데군데 표시기도 많고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곳이다. 

 

 

 

                                                                                                  

▲704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원방향


 

 

                                                                   

▲왕방울 벅수가 반겨주는 여원재 고갯마루

 


여원재에 이르렀을 때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산님 한 분이 앞질러 내려선다.

이 분은 이제 마지막 2-3구간이 남았는데 대간중에 철쭉구경 한다고

고리봉에서 바래봉으로 빠져서 오늘 이곳에 땜방하러 왔다고 한다.

성삼재에서 9시에 출발해 이곳까지 6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하니 꼭지가 혀를 내 두른다.

ㅋㅋ 우리는 몇 시간? 11시간, 말도 안 돼!


알바 한 번 없이 여원재에 내려서니 옛 주막은 간곳없고 눈을 부릅뜬 왕방울(?) 벅수가 반겨준다.

여원재의 주모에 얽힌 애달픈 얘기, 주모가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전략을 가르쳐 주어 황산벌전투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적을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에 대한 얘기들은 다음 대간 때 이어가기로 하고

남원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의 행복은 여원재에 남겨둔 채로..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