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의 숨겨진 보석 (필봉-재약산)
필봉은 영남알프스에서 숨겨진 보석과 같다.
부산일보 “산&산”팀은 불러주지 않아서 꽃이 되지못하고 있는
영남알프스의 숨겨진 2인치라는 표현을 섰다.
과연 그럴까?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 의문은 필봉에 올라서면서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표충사의 평온한 모습과 가람뒤쪽을 편안하게 감싸고 있는
푸른 대밭의 풍경, 우람한 가슴(?)으로 위압감을 주는 매바위
그 절벽에 부딪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바람..
필봉을 지나 암반위에 올라설 때마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조망
작은 우주처럼 느껴지는 남명리와 삼양리마을의 시골풍경,
그곳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구만산과 억산, 운문산, 그리고 백운산..
필봉은 그들과 마주한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산행지 : 영남알프스 (필봉-재약산) 경남 밀양
일 시 : 2006. 3. 26(일) 맑고 따뜻한 날씨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서대구⇒표충사 90km 1시간소요)
07:40 공용 주차장 -산행시작-
08:00 매바위마을 대밭들머리
09:15 필봉
10:35 헬기장
10:40 도래재(정각산) 갈림길
11:40 능동산 갈림길
11:50 재약산 사자봉(천황산)
12:10-12:50 천황재 간이산장
13:40 재약산 수미봉
14:00 고사리분교 갈림길
14:25 진불암
16:00-16:20 표충사
16:40 공용 주차장 -산행끝-
총 산행시간 : 9시간 (약 16km) 꼭지의 느린 걸음으로..
▲산행경로 -부산일보 산&산에서 발췌-
필봉 산행들머리 찾아가기
매표소 가기 전 좌측에 식당촌이 있고 그곳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매표소방향으로 10분정도 걸으면 매 바위아래 민가가 있는데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시전천)을 건너면 우람한 매바위와 필봉이 보입니다.
▲시전천에서 바라본 산행들머리, 그리고 좌측 매바위와 우측의 필봉
민가를 가로질러 오르면 마을 끝에 <그림같은집>민박집이 나오고 민박집마당을 지나
뒤쪽으로 올라서면 표시기가 보이는데 단층양옥집옆으로 등로가 열립니다.
<그림같은집>만 바로 찾으면 점수는 100점입니다.
그 뒤로는 길이 뚜렷하고 필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계속 능선만 따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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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집(민박집)과 길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니 멀리 매바위와 우뚝 솟은 필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좁은 시멘트도로를 쉬엄쉬엄 오르니 하늘아래 첫 동네는 조용한 정적에 쌓여있다.
필봉의 들머리인 민박집 “그림같은집”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웬 불청객이냐며 멍멍이가 또 심하게 짖어댄다.
어디를 가나 개들은 나만 보면 짖어 댄다.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드디어 <그림같은집>을 찾았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동화속의 집처럼 예쁘장한 진짜 그림같은집이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과는 다르게 집은 그냥 보통 평범한 민박집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길이 그 집 마당한쪽을 가로질러 뒤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길이 남의 집 마당 안으로 이어져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길”이라는 개념과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웃집과의 경계도 없고 특별히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그래서 길도 함께 나누어갖는 시골의 인심, 나는 그 주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림같은집>의 겉모양만 보고 판단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숨겨진 보석.. 필봉
<그림같은집>뒤를 돌아 마지막 양옥집에 올라서니 산문인 대밭이다.
부산일보에서는 대밭만 찾으면 100점이라고 했다.
어째 오늘은 조금도 헤매지 않고 초입에 이르렀으니 기분이 좋다.
▲양옥집 뒤쪽 대밭이 들머리(표시기 많음)
이곳까지도 계속 경사길이라 꼭지는 무척 힘들어한다.
산동네 오르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저 높은 산을 어떻게 올라가려는지..
길은 경사도가 심해서 바로 오르면 뒤로 넘어질까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길 위로는 낙엽이 발자국에 눌린 채 드러누워 있고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밤송이가 여기저기 낙엽 속에서 뒹군다.
길은 지난주 조계산처럼 질퍽하지 않고 부드러운 오솔길로 이어진다.
앙상한 떡갈나무사이로 간간이 시야에 들어오는 매바위 마을풍경이 정겨운데
급 비탈 아래 꼭지가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고 퍼질고 앉는다. 꼭지에게 산행은 고역이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따라나서니 그 의문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물어봤자 눈만 멀뚱멀뚱 나를 쳐다볼 뿐이다. 감히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고..
필봉까지는 400정도의 고도차가 느껴진다.
그것도 급한 경사 길로 40여분 땀깨나 흘려야 할 것이다.
꼭지의 배낭까지 짊어진다.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쯧쯧..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배낭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전해온다.
너덜지대에 이르니 웅덩이에는 아직도 잔설이 소복이 쌓여있다.
겨울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지만 봄은 벌써 마을 어귀에까지 다다르고 있으니
이곳도 곧 봄의 빛깔로 옷을 갈아입으리라.
하지만 날씨는 초여름이라 자켓을 벗고 더 이상 벗을 게 없는데도 덥다.
너덜겅을 지나 약간의 낙석구간 오름이 급하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필봉이다.
▲필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매 바위
단연히 매 바위가 우람한 가슴을 뽐내며 시야에 들어온다.
발아래에는 표충사가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으로 다가오고 가람 뒤쪽으로
넓게 퍼져있는 푸른 대밭이 장관이다.
▲필봉에서 내려다본 매바위마을
시전천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전경이 아름다워
꼭지와 잠시 퍼질고 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산행의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고요히 피어오른다.
발바닥에 묻어나는 행복
선경의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길은 이제 능선으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8부능선부터는 앙상한 나무들도 아직 겨울잠에 취해있다.
진달래의 움츠린 꽃망울이 그렇고 생강나무의 톡 터질 것 같은 입술도 그렇다.
낙엽 깔린 오솔길은 너무나 좋다. 청정의 산길이다.
걸음걸음 바삭거리는 소리가 좋고 밟을 때 마다 움찔움찔 놀라는 낙엽들..
작은 잡목 숲 속으로 신발에 묻어나는 부드러움이 그만이다.
이러한 길은 산마다 다 있겠지만 산에 따라서 그 느끼는 감정도 다른가보다.
발바닥에 묻어나는 행복, 이것이야말로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그 청정의 산길을 걸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이다.
그때 받은 행복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올해로 세 번째 떠나는 수도종주, 1년동안 가슴에 담고 기다리고 있는 산행이다.
4월을 위해 아껴두었다가 혼자 배낭매고 훌쩍 떠나는 작은 행복..
그리움속의 기다림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가 보다.
옷을 다 벗고 부끄러움도 잊은 채 서석대는 나목들의 움직임도 좋다.
이제 이들은 봄바람과 속삭이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그네들 속살에 맞는 예쁜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정각산
인도불록이 X자로 깔려있는 헬기장을 지나니 정각산으로 이어지는 도래재 갈림길이다.
서서히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눈높이에 맞춰 펼쳐지는 조망 또한 선경인데
바삭거리는 낙엽 길이 계속 이어지니 꼭지의 발걸음도 이제는 더욱 가벼워진다.
▲꼭지의 눈길이 멈추는 곳.. 재약산 사자봉
구간구간 암반위에 올라설 때 마다 청명한 하늘사이로 펼쳐지는 황홀한 조망
서서히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인의 허리처럼
잘록하게 내려앉은 아랫재 때문인지 운문산은 더욱 고고하게 보인다.
▲좌측으로 구만산과 억산, 중앙이 운문산
작은 우주처럼 느껴지는 남명리와 삼양리마을의 시골풍경
그곳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구만산과 운문산, 그리고 백운산..
그들과 마주한 그 중심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백운산과 뒤쪽의 가지산
▲운문산아래 삼양리 마을풍경
오늘 처음 만나는 아름다운 산죽길을 올라서니 멀리 사자봉이 하늘에 닿아있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억새의 군무가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지나온 능선
▲가야할 재약산 사자봉(천황봉)
▲꼭지와 억새
▲지나온 능선과 멀리 정각산
몇 번이나 사자봉에 올랐지만 오늘 같은 조망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정상부는 기온차가 심하고 일기가 죽 끓듯 변죽이 심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흐려도 운무가 가득 차고 조망을 방해하기 일쑤다.
▲아래 빨간지붕의 알프스랜드와 능동산 방향
오늘은 가스로 시계가 흐리긴 하지만 가지산에서 능동산으로
간월산에서 신불산, 영취산, 시살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군들의 조망이 괜찮다.
광활한 사자평과 그 속살을 채우는 억새들의 유희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자봉에서 바라본 가지산
▲사자봉에서 바라본 재약산과 우측으로 멀리 향로산
비록 가을이 아니더라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억새의 춤사위는 보기가 좋다.
바람이 훑고 간 자리에는 늘 스산한 소리가 남는다.
쓰쓰쓱~~ 억새의 소리, 세상에 이보다 더 맑은 악기소리는 없으리라.
▲가야할 재약산 수미봉
그 유희의 중심인 천황재에서 꼭지와 잠시 휴식을 갖는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억새에 흔들리며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그들의 군무를 바라보며 재약산의 별주 더덕 막걸리 한 병과
생두부를 시켜서 꼭지와 주거니 받거니..
▲재약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사자봉
꼭지의 얼굴에 홍조가 든다. 산행의 또 다른 행복이다.
약간 취기가 오르니 넓은 사자평 너머로 억새에 부대끼는 햇살이 더욱 곱게 보인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앉아 머물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자리에서 일어선다.
▲재약산 수미봉
▲고사리분교 방향
▲사자평너머 간월재와 신불산, 영취산
허공 속에 잠겨있는 진불암
수미봉을 내려와 고사리분교 갈림길에서 오늘은 미답지인 진불암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산죽길이 등로내내 이어진다. 산죽 가운데 있을 때에야 비로소 깊은 산중에 있음을 느낀다.
꿈을 꾸듯 산죽 또한 따스한 햇살에 더욱 빛나고 있다. 그 또한 아름답다.
▲진불암 가는 길
오른쪽으로 휘어진 모퉁이를 돌아서니 초라한 모습의 진불암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것이 진불암이야?” 이외라는 듯 꼭지가 놀란 표정으로 외친다.
마치 해안초소에 자리한 군 막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석축으로 쌓은 진불암과 멀리 사자봉
그뿐이 아니다. 인적도 없고 샘물도 없다. 적멸(열반)의 독경소리는 더 더욱 들리지 않는다.
절간이란 있으면서도 조용할 때가 절간인데 여기는 아예 아무것도 없어서 조용한가 보다.
암자 앞의 조그마한 텃밭에는 호미질의 흔적이 뚜렷하나 메말라 있고
▲출입문도 없는 진불암의 해우소
돌무더기사이로 박아놓은 호수는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채 비틀어져 있다.
가지런하게 얹힌 기왓장, 용마루의 아름다운 단청은커녕 지붕은 콘크리트슬라브가 덥고 있다.
세상을 등지고 앉아있는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예상했는데..
석축을 쌓아올려 지은 시멘트건물.. 넓디넓은 허공 속에 잠겨있는 진불암의 풍경이다.
“이곳에도 부처님이 계실까?” 하는 의구심이드니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속인인가 보다.
부처님의 눈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굳게 닫힌 법당문안에서 부처님의 호통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놈아! 나는 네 마음속에 있다.”
........?????
▲진불암에서 표충사 가는 길
도망치듯이 진불암을 내려선다.
필봉의 매바위보다 더 우람한 암벽이 비상한다. 그 위에서 사자가 포효한다.
진불암에서 표충사가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멋과 풍광이 있다.
▲표충사 대광전과 팔상전
하산 길 솔숲속에서 진달래가 활짝 피어서 반겨준다.
표충사를 지나 털래털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넙죽 업드린 적토마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약을 올린다.
“오늘은 부처님 머라 카드노?”
“염병, 늙어빠진 자동차하고는 얘기하지 마라카드라.”
“........?????”
오늘따라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더욱 시끄럽게 들린다.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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