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봄날의 산책

꼭지와 함께한 국망봉 철쭉산행(소백산)

산사랑방 2013. 6. 1. 15:13

 

 

 

  

 

소백산에는 사철 꽃이 핀다. 특히 겨울바람이 만들어내는 서리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짙은 녹음사이로 온갖 기화요초가

 천상화원을 이룬다. 가을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산정을 곱게 물들인다.

 

 

 

 

사계절 중에서 철쭉이 피는 가장 아름다운 봄날에 꼭지와 소백을 찾았다.

몇일 전 꼭지가 국망봉에 가고싶다고 했다. 재작년에 처형부부와 함께했던

추억이 서린 곳, 혼자 가야산만 쫓아다니다가 꼭지의 제안에 많이 반가웠다.

 

 

 

 

밤 12시에 대구를 출발해 초암사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돼지바위 쯤에

이르자 멧돼지들의 괙괙거리는 울음소리가 온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꼭지가 무섭다며 걸음을 멈추었지만 이건 고라니 소리니 별 것 아니라고

안심시키고... 한편으론 등골이 오싹했다. 소백산에서 맷돼지 소리는

처음이라 발걸음을 재촉해 국망봉에 도착하니 하늘이 밝아오고...

 

 

 

 

2013. 6. 1.(02:00~10:00)

 

소백산 국망봉(초암사-국망봉-달밭길-초암사)

 

 꼭지와 둘이서

 

 

 

 

 동트는 새벽, 여명의 순간은 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러한 풍경이 좋아

우린 대부분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다. 초보 때는 장거리 종주에 푹 빠져서

시간을 벌기위해 일찍 집을 나섰지만, 다니다보니 새벽 풍경에 매료되어 대간과

낙동할 때는 해돋는 시간에, 요즘은 거의 일출 2시간 전에 산문에 든다.

 

 

 

 

가장 아름다운 봄날의 국망봉

 

 

오늘은 흐린날씨 때문에 요란한 일출은 아니지만 넉넉한 소백의 이미지를

닮은 시원하게 트인 조망과 철쭉의 환한 미소가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햇살이 받쳐주지 못해서 약간의 아쉬움은 잊지만

 

 

 

고도 1400m 산정에서 활짝핀 철쭉과 하늘에 닿을 듯한 산마루

이만한 풍경을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꼭지는 이렇게 앉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기분이란다.

'一日淸閑一日仙(일일청한 일일선)'이라 했다. 하루라도 마음이 편하고 깨끗하다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다고 했는데 오늘 꼭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결국 기다리던 해님은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추었으나

 

 

 

철쭉은 부족함이 없는 듯 그저 싱글벙글 함박웃음을 짓는다.

 

 

 

 

가슴을 울리는 추억의 종주 속으로

 

 

산초보 때, 소백산에는 연화봉과 비로봉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2004년인가 해병대부부와 죽령에서 구인사까지 종주를 하면서 국망봉을

지나게 되었고 이곳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결국 대간 종주 때는

철쭉피는 시기를 맞추어 국망봉과 상월봉에서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 2008. 5. 25. 대간할 때의 상월봉>

 

 

 

지난번에는 국망봉에 진사님이 더러 보였는데 오늘은 꼭지와 둘 뿐이니

이 모든 풍경이 우리들 차지가 아닌가.

 

 

 

꽃들이 서로 노래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하모니가 될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감미로운 합창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철쭉은 노래소리 대신 풍성한 꽃다발 한아름을 건넨다.

 

 

 

그뿐이 아니다. 저 멀리 아스라히 펼쳐지는 대간길 풍경은 덤이다.

 

 

 

 구인사로 이어지는 신선봉 능선... 그렇지, 옛날 신선봉엔 두 신선이 살았다.

그들은 종종 바둑을 두곤 했지. 구인사 종주 당시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신선과

영원한 동지 해병대가 바둑 한 판 두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바둑돌이 모자라

무승부가 되었지만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 2004. 9. 5. 구인사 종주 때 신선봉에서 보이지 않는 신선과 해병대의 바둑 한 판>

 

 

 

  

 

 

꼭지가 상월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구인사 종주할 때나,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걸었던 대간종주 때는 25km의 장거리 산행이었다.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자신과

싸우며 걸었던 길이다. 힘들었지만 산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다보면 고통들도 금방 잊

혀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다만 추억 속에 있을 뿐이다.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융단같은 초록빛의 능선이 부드럽다.

 

 

 

툭툭털고 이제 이 모든 풍경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할 시간

 

 

 

 

 

 

마의태자의 망국의 한이 서린 국망봉

 

 

  

신라 마지막 왕자였던 그가 이곳에 머물렀을 때도 이렇게 화사한 연분홍 철쭉이

피었을까. 그랬다면 나라 잃은 설움에 잠긴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을텐데...

 

  

 

풍경은 또 풍경을 낳는다.

가위로 싹둑 잘라 거실벽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그림같은 풍경이지만

 

 

  

그러면 저 상월봉이 무척 서러워할 테지...

 

   

 

  그들과의 작별... 꼭지가 걸음을 옮긴다.

 

 

    

 

 

 

못다한 얘기들 산중에 남겨둔 채...

 

 

 

그런데 그런데 아! 털진달래가 꼭지의 걸음을 잡는다. 그 가여운 몸짓으로

 여태것 꼭지를 위해 기다렸나보다. 이 모든 풍경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멀리 보이는 하늘금은 백두대간 묘적봉-도솔봉 능선이 아닌가. 저 길은

산거북이님과 걸었던 잊지못할 추억의 길이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2008. 5. 18. 백두대간종주 중 묘적봉에서 산거북이님>

 

  

 

 

 

  

 

비경의 달밭골

    

달밭골은 비로사와 초암사 사이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달밭골로 불린다. 하지만 지금은 달밭은 대부분 묵밭

으로 변해 흔적 뿐이고 대신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국망봉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하여

죽계구곡을 이룬다. 

 

   

 

옛날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한 노랫소리와 

흡사하다고 하여 소마다 각각 걸맞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그 뒤로

사람들은 죽계구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달밭골 계곡도 수많은

 폭포와 기암괴석사이로 소가 어우러져 신비경을 연출한다.

 

 

 

 달밭골에는 지금 몇 가구가 살고 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다. 얼마전만해도 금지구역이었으니 더욱 신비스런 곳이지만

요즘 소백산 자락길로 개방되어 초암사에서 비로사로 바로 갈 수 있다.

거리는 3.4km에 이른다.

 

   

 

 

ㅡ END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