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울 같은 그리움으로...
금남호남정맥1구간(영취산-무룡고개-장안산-밀목재)
2011. 3. 6. (일) / 꼭지와 둘이서
일출 06:53 / 일몰 18:27 / 음력 2.2
지리산과 백두대간 그 호쾌한 산줄기를 이렇게 굽어볼 줄 몰랐다. 금남호남정맥 장안산을 오르며...
멀리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그 이름에 손색이 없을정도로 역시 장엄하고 우뚝하여 맏형 답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너울은 그리움이자 영혼의 메아리다.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끄는 저 산정을
넘고넘은 억겹의 세월은 알고 있을까? 저 너머에 전설로만 전해오는 무릉도원이 있다는 것을...
1. 구간별 산행기록
07:00 무룡(무령)고개 -산행시작-
07:20-07:30 영취산
07:47 무룡고개
08:34-08:50 조망이 좋은 억새군락지
09:23 장안산
11:12-11:35 947봉(백운산)
13:18 979봉
13:40 밀목재 -산행종료-
2. 정맥종주거리 : 13.1km (6시간40분) / 총누적거리(접근거리 포함) : 13.1km
영취산 - (0.4km) - 무령고개 - (3.0km) - 장안산 - (4.1km) - 947.9봉 - (4.4km) - 979봉 - (0.8km) - 밀목재(현지 이정표 기준)
3. 주의구간 : 없음
4. 교 통 : 자가운전 남대구I.C-장수I.C-무룡고개 (약 152km / 2시간 10분)
5. 차량회수 : 밀목재-무룡고개 (장수택시 : 011-652-5458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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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이란?
백두대간 영취산(1,075m)에서 갈라져 전북 장수의 장안산(1237m)에서 서북으로 뻗어 팔공산
(1151m), 성수산(1059m), 마이산(667m). 부귀산(806m)으로 이어져 무주의 주화산(600m)에 이르는
약 65.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또한 주화산에 이르러 다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지는데 호
남정맥은 섬진강 유역을 경계지으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제암산을 거쳐 백운산으로 이어지고
금남정맥은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을 세우며 금강의 남쪽 수계를 형성하며 서해로 달린다.
'무룡고개' 주차장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은 무룡고개다. 무룡고개라고도 하고 무령고개라고도 한다. 지도 마다 제 각각이다.
무룡(舞龍)이라 함은 용이 춤을 춘다는 말로 이 고개에서 장안산으로 달리는 산줄기 기세가 마치 용이 하
늘로 오르는 형상과 닮았다 하여 '무룡'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장수군청 홈페이지에서도 그렇
게 정의하고 있고 이정표도 모두 무룡고개라 표기되어 있다.
인생의 또 다른 시작점 영취산에 올라
백두대간에 이어 두 번째 영취산에 올랐다. 이 날은 무룡고개에서 꼭지와 호남정맥을 향한 첫 발을
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된다는 말에도 꼭지는 망설임 없이 따라
나섰다. 보통 때 같으면 혼자 갔다 오라며 아래서 기다릴텐데... 휘청 거리는 나무계단, 잔설이 덮인
산길을 걸어 3년 6개월만에 다시 오른 셈이다.
그 당시에는 정상석도 없었고 초라한 돌무더기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늠늠하고 커다란 정상석이
객을 반긴다. 꼭지와 시작한 금남호남정맥, 정맥은 대간에 이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추억
과 행복을 안겨다 줄것이다. 무사 완주를 기원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정겨운 풍경이다.
잡목속에서 언듯언듯 비쳐드는 백운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아스라하다.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넉넉한 산줄기는 부드럽고 장쾌하다. 언제 다시 저 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아침, 정맥 그 첫 햇살을 가슴에 담는다.
무룡고개에서 시작하는 장안산 들머리
곧게 뻗은 낙엽송 너머로 백두대간 월경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등로 곳곳에 잔설이 얼어있어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무룡고개와 영취산, 멀리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눈높이에 들어온다.
무룡고개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의 경계에 있다. 예전에는 장계면쪽만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
은 지지계곡이 있는 번암면도 포장이 다 되었다.
장안산 억새숲에서 백두대간을 그리다
억새 없는 억새밭에 이르렀다. 말끔하게 머리를 깎은 억새숲 너머로 백두대간 백운산이 우뚝하고
우측으로 움푹 내려앉은 중재, 그리고는 다시 월경산을 치켜올린 대간은 봉화산으로 달려 여원재,
만복대를 지나 지리산에 안긴다.
덕유산도 빠질소냐 며 고개를 내민다. 서봉과 남덕유의 모습은 흡사 지리산의 중봉과
천왕봉을 닮았다. 덕유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에는 사연도 많다. 이 길은 빨치산들의
거점이자 이동통로구실을 했고 논개의 생가가 육십령가는 대간길 북바위 아래에 있다.
안개속으로 산너울이 파도처럼 춤을 춘다. '무위자연'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고 황홀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그 이름에 손색이 없을정도로 역시 장엄하고 우뚝하여 맏형 답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너울은 그리움이자 영혼의 메아리다.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끄는 저 산정을
넘고넘은 억겹의 세월은 알고 있을까? 저 너머에 전설로만 전해오는 무릉도원이 있다는 것을...
지리산 주 능선을 이렇게 가까이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니... 반야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장관이다.
덕유산과
지리산의 긴 그림자와 함께 걷는 이 길은 장안산 최고의 아름다운 길이다.
늘 푸른 산죽과 앙상한 겨울나무가 어서오라며 유혹하는 오솔길 너머로 두리뭉실한 장안산이 다가선다.
영취산에서 남진하는 백두대간은 백운산에서 급하게 고도를 낮추어 중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곧이어 월경산을 지나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으로 줄기차게 달리다가 다시 복성이재에서 숨을
돌린다. 그 숨결가쁜 능선위로 지나온 추억이 아련하다. 그때는 여원재에서 육십령까지 대부분
비를 맞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2007. 9. 30. 대간길 백운산에서 월경산, 봉화산으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흐믓해 했는데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대간길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그 추억의 능선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긴다.
얼음꽃 너머 뒤로는 덕유산이
앞에는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에서 반야봉,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장쾌
한 마루금이 황홀하다. 한때는 지리산에 푹 빠져 저 길을 수도 없이 걸었다. 하루에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걸으며 지리산의 매력에 푹 빠져보기도 했고, 2박 3일 일정으로 느긋하게 지리품에
안겨보기도 했으나 늘 갈증이 더해만 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백두대간이 아니었나 싶다.
덕유산 또한 산초보 시절부터 수도없이 들락거리던 곳,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남덕유에서
월봉산, 거망산,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도 마치 거대한 병풍을 펼쳐놓은 것처럼 웅장하다.
빨치산과 김 대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무룡고개에서 번암면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바로 유명한 지지계곡이다. 백운산과 장안산에서 흘러
내린 물은 섬진강을 이루며 민족의 뼈아픈 상처를 어루만진다. 이곳에도 빨치산은 비켜갈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숨어 들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지아비를 찾아 산에
올랐던 가엾은 여인들, 그들은 빨치산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북에서도 외면당했고 남은 그들을 저
주 했다. 백두대간 자락 굴속이나 바위틈, 깊은 계곡에 몸을 숨기며 비참한 생활로 떠돌던 그들은 굶
어죽거나 총맞아 죽으며 비운의 삶을 살다 갔다.
무룡고개에 얽힌 빨치산 오양수와 김대위와의 사랑은 지금도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
을 준다. 자기 동족에서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제주 4.3 민중항쟁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군이 되었던
여수 14연대와 사회주의 낙원을 꿈꾸던 또 다른 그들은 국방군과 경찰대의 추적을 피해 지리산으로 숨어
들었고 빨치산이라 불려졌다. 백선엽 장군의 저서 <실록 지리산>에 그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한다.
때는 1951년 12월, 전쟁이 막 끝나갈 무렵, 이야기는 무룡고개에서 시작된다. 토벌대로
나선 백야전투사령부 26연대 선봉대 중대장이었던 김 대위는 이곳 장안산을 포위하고 있
었다. 그때 무룡고개 옛길을 오르다가 김 대위는 눈 밭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
는데 그가 바로 오양수라는 빨치산 여인이었다.
김 대위 나이 24살이었고, 오씨는 20살 꽃다운 처녀였지만 오랜 도피생활끝에 지칠대로 지쳐
그 아리땁고 예쁜 얼굴은 간곳없고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씻지못해 때물이 줄줄
흘렀고, 다 찢어진 옷, 동상에 걸려 퉁퉁부어 오늘 손발... 도저히 여인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를 안아 일으킨 김 대위는 운명적인 만남에 전률를 느꼈다. 죽여야 하는 적
이었지만 가늠할 수 없는 연민과 동정, 사랑으로 극진히 간호했다. 그녀는 깨어났고 소설 같은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은 시작되었다.
결혼을 결심한 김 대위는 그녀를 목포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빨치산을 빼돌린 죄목으로 방첩대에 체포되었고 모진 고문이 가해졌다. 그녀 역시 시부모가
될 어른들을 모시고 있다가 체포되어 인간 이하의 고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만
큼은 변함 없었다. 가혹한 고문에도 김 대위의 안위를 묻던 그녀는 자신이 죽어야 김 대위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감시하던 보초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벽에 세워둔 칼빈총
을 자신의 목에 겨누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시간은 멈추었다.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김 대위는 약식재판에서 사형선고 까지 받았으나
당시 사단장이던 송요찬 장군의 사면으로 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픈 마음에 군 생활을 끝까지 하지 못한 그는 결국 중령으로 예편하여 그녀를 그리워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 뼈아픈 숨결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야는 침묵에 잠겨있다.
툭툭털고 장안산에 올랐다. 큰 조망은 없지만 장안산 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편안하고 넉넉하다.
지리산의 긴 그림자가 성큼 다가섰다.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지리산!
정상에는 통신탑과 헬기장이 있고 한 무리의 산꾼들이 식사중이라 조금은 소란스럽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목> 좌측은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정맥은 우측 밀목재 방향이다.
<도깨비동굴 갈림길>
거제에서 왔다는 정맥팀을 또 만났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자들만 구성된 홀아비(?) 팀이었다.
이분들이 건네주는 정상주 한 잔에 취했다. 오늘은 풍경에 취하고, 정에 취하고 정맥에 취하고...
우리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서울서 오셨다는 부부는 우리를 추월하고 지나갔다. 그분들도
밀목재까지 간다고 했다. 모두들 행복한 걸음으로 이어가는 정맥, 무사히 완주하길 빌어본다.
장안산에서 밀목재 가는 길은 9.3km라는 먼거리 임에도 거의 조망이 트이지 않았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온전한 정맥길에 접어든 것이다. 가야할
방향을 가늠해 보았으나 산이 고만고만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비닐코팅지에 백운산이라 표기된 <947봉>
<979봉> 이곳을 내려서면 바로 밀목재다.
낙엽 덮힌 산길이 부드럽고 따스하여 어디선가 봄이 툭! 하며 붉어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복사꽃 화창한 날에는 마이산을 넘을 수 있을까..,
밀목재와 다음에 이어야할 사두봉이 어서오라며 손짓한다.
밀목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이다. 대간할 때는 어두워져야 내려오곤 했는데 이
시간에 산행을 접을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원래 계획은 수분재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오랜만의 정맥산행으로 체력이 바닥난데다 꼭지는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고, 난 무릎이 아파서 절둑거리고...
우리가 정맥꾼이 맞나 싶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산이 있기에 행복하다.
금남호남정맥 <영취산-무룡고개-장안산-밀목재-수분재> 산행지도 / 출처 : 깃대봉님의 블로그
ㅡ 끝 ㅡ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9정맥 > 금남호남정맥(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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