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한라산 "영실-윗세오름"
2011. 1. 8. (토) (07:00-10:30)
산사랑방
<설국 한라산>
<탐방안내소에서 영실휴게소 가는 길>
새벽 6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야자수 그 커다란 잎은 미동조차
않았다. 어제는 태풍이 지나가는 것처럼 날씨가 변덕스럽더니만 오늘은 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동료가 영실 입구까지 픽업해주겠다고 한다. 고맙다. 서귀포에서 한라산 영실코스
는 1139번 도로따라 계속 직진하면 된다. 이 도로는 영실 입구를 지나 1100고지, 어리목
코스로 이어진다.
07:00 영실 입구에서 탐방안내소-영실휴게소 구간은 눈길이라 자동차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차를 돌려보내고 어둠에 묻힌 눈길을 걸었다. 도로가에는 제설작업으로 밀려난 눈이
1m이상 쌍여 있는 것을 보면서 정상부에는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렸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설경에 대한 기대가 교차했다.
산길이 시작되는 <영실 휴게소> 07:53
나에게 한라산은 처음이다. 비행기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인데도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번 제주행은 2박3일 일정으로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했다. 올레길
답사와 한라산 등산을 계획했는데 저 마다 사정이 있어서 산행은 혼자 하기로 했다.
영실휴게소를 지나 좁은 산길로 올라섰다. 서귀포에 산다는 등산객 한 분과 아이 둘
을 데리고 온 부부산객이 전부였다. 기온은 영하 7도, 그러나 바람이 잠잠하여 춥게 느껴
지지는 않았다. 그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랐다. 다행히 러셀은 잘 되어 있었다.
휴게소에서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낮고 넓은 제주의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 틈을 비집고 크고작은 오름들이 섬처럼 솟아올랐다.
시내는 겨울에도 영상 기온을 유지하다보니 이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좌측으로 영실기암, 오백나한의 바위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산능선을 오르는
형상이 보인다. 제 어미의 육신으로 끓인 죽, 그것도 모르고 죽을 먹은 오백 명의 아들이
그 비통함에 울다가 오백나한 바위로 굳어졌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혼자 앞서서 걷는다. 오백나한 안내판이 있는 곳 부터는 더 이상 러셀이 되어있지 않았다.
등산로도, 1m가 넘는 팬스도 모두 눈속에 묻혀버렸다. 빨간 깃대가 이곳이 길이란 것을 알려
준다. 혼자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음을 옮긴다. 눈이 바람에 다져진 때문인지 발목이 깊게
빠지진 않는다. 한라산은 그렇게 나의 손을 잡아 끌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조금씩 하얀 구름띠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마치 동화나라 같은 눈을 뒤집어 쓴 구상나무 숲에 이르렀다.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의 학명은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 곧 '한국의 전나무'라는 뜻이다.
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는 자랑스런 우리의 나무이기도 하다.
구조목이 눈 속에서 머리만 빼곡 내밀고 어서 오라며 인사를 건넨다.
구상나무는 천지간의 눈을 다 뒤집어 쓴 것 같은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햇살이 참으로 따스하다. 기온은 영상 3도, 정상에 오를 수록 오히려 기온이 올라간다.
드디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전에 형성된 구름띠가 파도가 되어 산으로 밀려든다.
순백의 자갈과 모래, 파도소리와 조개껍질 구르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곳...
그곳은 바로 한라산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저절로 걸음이 멈추는 곳...
노도처럼 밀려드는 파도, 그 신비스런 풍경들... 오르면서 계속 사진을 찍어
꼭지에게 보냈다. 꼭지도 몇 번 한라산에 오르긴 했지만 이처럼 환상적인 겨울 설경은
만나지 못했다. 서귀포에 사신다는 분이 말했다.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을 자주
올랐지만 오늘 같은 풍경은 처음이라고...
어쩌면 그분의 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뿐,
산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 않던가.
영실, 구름바다속으로 하산하는 산객들
멀리 장구목오름(1813m) 아래로 윗세오름대피소가 보인다.
윗세오름(1711m)으로 이어진 발자국... 저 너머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ㅡ 계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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