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산행.. 비슬산의 석양
2007. 02 .11. (일)
산사랑방 홀로
13:40 유가사
14:40 도통바위
15:30 정상(대견봉)
16:50-17:10 조화봉
17:30-18:05 대견사지
18:20 1034봉
19:30 유가사
도통바위아래 전망대
늙수레한 소나무사이로 내려다뵈는 도성암의 풍경은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하다.
옛날 관기와 도성, 두 신선의 전설같은 얘기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성암과
그 아래 유가사의 풍경.. 나아가 맑은 날 하늘 끝에 닿아있는 천왕의 모습들은
비슬산에서 크게 보인다는 대견봉에 걸맞게 한폭의 그림이다.
▲ 현풍시내와 소재사방향
서대구나들목에서 유가사주차장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주차장에서 이곳 도통바위까지 오르는데 걸린 시간 또한 1시간 남짓
결국 자신을 다스려 태우는 2시간이면 선경같은 산중에 들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인생이란 자연과 함께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나고
산행의 즐거움 또한 스스로를 움직이지 않으면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기에
우리는 그 꿈꾸는 산행을 위하여 자신을 불사르는가 보다.
지금도 도성암은 ‘수도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외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번까지도 등산로에서 <⇒도성암>이정표가 보였었는데
이번산행에서는 표시기와 이정표도 없어지고 도성암으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낙엽만이 소복이 쌓여 객의 걸음을 물리치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걷고 싶은 앞산까지의 산그리메
▲ 가야할 대견사지와 진달래(참꽃)군락지 방향
정상부의 풍경은 어떨까. 그 기대감에
서둘러 대견봉에 올랐으나 엷은 가스로 인하여 팔공산도 조망되지 않고
앞산까지의 주능선이 희미한 산그리메로 다가올 뿐이다.
여름날 황홀한 감동을 선사했던 범꼬리는 흔적조차 없고 깡마른 풀잎만이
겨울바람에 너울대니 피었다지고 피었다지는 들꽃들의 아름다움도 우리의 인생과 같은가..
그저 오늘의 풍경에 만족하고 싶다.
▲조화봉 가는 길의 톱바위
▲ 톱바위에서 바라본 대견봉
▲ 비슬산 조화봉
오늘은 끌어당겨줄 꼭지(아내)도 없어 홀로 덤벙덤벙 오르다 보니 너무 빨리 올랐나?
일몰까지는 아직도 두 어 시간이나 남았는지라 느긋한 걸음에 조화봉으로 향한다.
이곳부터는 산행객도 없어 조용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니 벌써 진달래의
꽃봉오리가 통통하게 물이 올라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꽃피는 4월이 되면 대견봉에서 조화봉에 이르는 구간은 진달래가 만개하여
천상화원으로 변할 테고 대견사지 또한 많은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비슬산 대견사는 옛날 당나라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신라 헌덕왕때 이곳에 머물러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당나라 곧 대국(大國)에서 본 절이라 하여 이름을 <대견사>라 지었다고 전하지만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의 대견사터에는 인적은 없고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까악~ 까악~”탑주위를 맴돌며 하늘을 배회하니
빈 절터의 공허함이 내 가슴까지도 휑하니 텅 비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허전함까지도 품에 안으며 홀로서서 이 세상의 고독을 다 짊어진 듯
하늘과 마주하고 있는 대견사지의 삼층 석탑
말을 걸면 탑은 금방이라도 외로움에 지쳐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바로 그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세 명 올라왔다.
사람이 반갑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 그들은 탑 주위를 이리저리 돌며 탑을 향하여
또는 기댄 채 서로서로 사진을 찍으며 재잘대는 풍경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햇살이 탑신에 파고들었을 때 지나가는 바람도 숨을 죽일 정도였으니
젊은이들이 함께한 대견사지의 저녁노을은 장관이었다.
그때에서야 탑은 저 홀로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어느 산정에서도 낙조의 풍경은 아름답다.
산은 언제나 제 자신을 드러내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비슬산 대견사지에 내려앉는 환상적인 저녁노을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것 같다.
늘 기대하고 꿈꾸는 산행..
우리는 산행에서 이러한 풍경을 만났을 때가 가장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
현풍읍내로 석양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더니 서서히 대지는 어둠에 싸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천왕의 모습이 잠깐이나마 희미하게 솟아오르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산정의 기온은 갑자기 뚝 떨어져 질퍽하던 등로가 얼어서 딱딱해지고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꼭지(아내)가 생각나 걸음을 재촉하여 부리나케 달려 내려가니
어둠속에서 무심한 낙엽이 미끌거리며 바쁜 걸음을 부여잡는다.
- 끝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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