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가을 서정

통도사 암자 순례1 (극락암)

산사랑방 2009. 11. 8. 21:10

 

 

"야반 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2009. 11. 8. 꼭지와 둘이서

 

 

 

 

 

1982년 7월 17일 경봉스님이 미질(微疾)을 보이자

상좌 명정이 "스님! 가신 뒤에도 뵙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 모습입니까?"하고 묻자

스님께서는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라고 말하고 입적하셨다.

 

 

 

 

극락암 구석구석에는 경봉스님의 향기가 배어있다.

특히 홍교와 극락영지는 더욱 그러하다. 홍교아래 연못은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친다고 하여

'극락영지'라고 부른다. 갑자기 경봉스님의 호통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기는 길이 없는데 어느 길로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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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은 마음속에 있는데 어찌 길이 있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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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오다가 말다가 한다

 

기운찬 모습을 드러냈다가

 

구름에 잠기는 영축산릉

 

산은 씻기고 씻긴다

 

씻어지지 않는 것은 내 마음 뿐인가

 

벗나무 붉은 잎에 방울 방울

 

그 안이 극락이다.

 

몸과 마음을 다 씻고 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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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암'

 

늙수레한 감나무가 절둑거리며 말을 건다.

 

"여여문으로 들어 가겠느냐? 홍교를 건너겠느냐?"

 

"...........??"

 

 

내 눈길은 '여여문' 뒤로 하얀 운무 드리워진 영축산릉에 머문다.

 

 

 

 

<극락암의 홍교와 영축산 봉우리가 비친다는 극락영지>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정기는 태백산를 지나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은 태백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거대한 산줄기 하나를 풀어놓는데 바로 낙동정맥이다.

태백에서 뻗어나온 낙동정맥의 기는 주왕산을 거쳐 양산 통도사를 품에 안은 영축산에 이른다.

 

그 기를 받는 곳이 극락암이고 보면

경봉선사 같은 대종사의 탄생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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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루>

 

경봉(1892~1982 鏡峰)선사,  그는 누구인가?

15세 때 어머니를 여윈 뒤 인생무상을 느끼고 통도사로 출가해 성해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20대에는 천성산 내원사의 혜월선사를 찾아 수학하고, 합천 해인사에서는

제산선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정진하였다.

 

김천 직지사에서는 만봉선사와 남천선사의 지도를 받아 큰 깨우침을 얻었고

1916년 통도사로 다시 돌아온 스님은 극락암 삼소굴에 주석하면서 전국에 선풍을 떨쳤다.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문을 활짝열고 반갑게 맞이했다.

 

스님은 그들에게 이런 법문을 자주 들려주었다.

"사바 세상을 사는 것은 연극이나 마찬가지야. 기왕 연극을 하는 것이니 물질과 인간,

명예의 노예가 돼서는 안되니, 머리 쓰지 말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살아라."

 

그는 영축산 도인이요, 통도사 군자로 일컬었으며 특히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썼던 인물로 수많은 한시와 현판 글씨를 통해 깨달음의 향기를 남겼다.

 

 

한 번은 대마초 사건으로 방황중이던 조용필이

극락암 경봉스님을 찾아 왔다. 역시 소탈하신 스님 왈, 문답도 명쾌하게 

 

"너는 뭐하는 놈인고?"

"가수 입니다."

"그렇다면 네가 꾀꼬리구나. 무슨 말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그걸 찾아보거라."

 

조용필이 그 길로 산을 내려가면서 만든 노래가 바로

'못찾겠다 꾀꼬리' 라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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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암 여여문如如門>

 

 

현판의 글씨는 경봉스님의 친필이다.

여여란 있는 그대로를 뜻하는바 그 뜻의 깊이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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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축산을 오를 때

극락암을 지나치긴 했지만 야간이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 후, 영축산에서 비로암-극락암으로 하산로를 잡았는데

운무속에서 꼭지와 길을 잃어 죽을 고생을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3시간여 알바 끝에 다시 영축산으로 올라 통도환타지아로 탈출했었다.

그만큼 극락암과 우리의 인연은 생사를 넘나드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수세전>

 

 

 

 

  

 

 

 

경봉스님은 1927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해

교학 연찬에 집중하던 중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겼다.

 

"내가 너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 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빛이 온 누리에 흐르는구나."

 

我是訪吾物物頭(아시방오물물두) 目煎卽見主人褸(목전즉견주인루)

呵呵逢着無疑惑(가가봉착무의혹) 優鉢花光法界流(우발화광법계류)

 

 

 

극락암 뜰에는 파초가 많다. 파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法을 구하기 위해 왼팔을 잘라서 파초잎에 올려 달마대사에게 바쳤던

혜가스님의 일화는 속인의 가슴을 울린다. 그렇다면 파초는 지혜를 뜻할 것이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춤추는 촛불하나에 도를 깨우친 경봉스님

 

 

 

 

 

홍교로 내려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멀리 영축산릉이 또 빗속에 잠긴다.

 

"너 벌써 가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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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으로 홍교를 건넌다. 건너다가 떨여져도 좋은 곳이다. 

홍교 옆의 벚나무가 꽃을 피울 때, 다시 극락암을 찾아보고 싶다. 현재 진행하는 

낙동정맥이 내년 봄 쯤이면 아마 영축산을 지나게 될 것이니.. 

 

 

극락암은 고려 충혜왕 2년인 1332년에 창건되어

1758년 철흥이 중건하였다. 현재 통도사에는 19개의 암자가 있다.

통도사에서 암자를 순례하지 않고는 통도사를 말할 수 없듯이 극락암을 순례하지

않고서는 어찌 통도사의 암자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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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계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