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봄날의 산책

경주 양동마을

산사랑방 2019. 3. 31. 19:12


2019. 3. 30. 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나의 뿌리, 여강이씨 종택 <無忝堂무첨당>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은 孫, 李 양성이 가문을 이어오면서 마을이 번성하게 되었다.

조선초 15세기경 손소 선생이 양동마을의 유씨 집안 유복하의 무남독녀와 결혼하여 양동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

양동마을은 역사 속에 그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


손소는 처가로 부터 받은 상속 재산을 기반으로 활발한 사회, 경제 활동과 학문, 입신양명의 길을 걷게되고,

찬성공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이 마을로 이주하여 일정한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을 거쳐

손, 이 양가문이 주축을 이루면서 마을을 번성시켜 나가게 된다.


특히 손소는  이시애의 난(세조 13년 1467)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계천군 공신에 봉해졌고 나라로부터 불천위를 받았다.

손소의 둘째아들인 손중돈(1463~1529)은 이언적(1491~1553)의 외숙으로서 12살에 아버지를 여읜 이언적을 친아들처럼

부임지마다 데리고 다니며 학문을 가르쳐 24살에 이언적을 과거에 급제하도록 도왔다.


이언적은 외숙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여 당대에 가장 뛰어난 도학자로 대유학자의 존재가 더해지면서

양동의 명성은 확고해졌고, 理學이학의 宗匠종장으로서 士林사림의 추앙을 받아 문묘종사의 최고 영예를 얻게되고,

이언적은 동방 5현의 한 분으로 후세에 길이 숭앙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보물 제411호로 지정된 여강이씨 종택 無忝堂무첨당>


이씨 종가의 '無忝堂무첨당'이라는 堂號당호에는 스스로는 물론이요 선조들의 덕과 업에

누가 됨을 피하여 행한다는 의미로 '조상에게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左海琴書좌해금서'라는 편액은 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이곳에 들렀다가

대나무를 붓같이 깎아 죽필로 쓴 것이라고 한다. 좌해는 서울의 좌측 바닷가인 영남을 의미하고

금서는 거문고와 책을 뜻하니 '영남 선비들의 높은 풍류와 학문'을 기린다는 뜻으로 남겼다고 한다.









 


















손씨 종가의 '書白堂서백당'은 참을 忍을 백번 쓴다는 뜻으로 모든 화의 근원이 참지 못하는데서 생겨나니,

스스로를 인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닦기위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