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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증을 허락하지 않는 새벽 산빛 (소백산 국망봉)

산사랑방 2011. 6. 16. 08:59

 

 

산거북이님과 연이어 올라온 감자골님의 소백산 산행기를 보면서 또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때는 그리움으로 목매달았던 정맥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소백으로 가고 싶었다. 날씨는 흐리다고 하니 일출은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연분홍 철쭉이 조금은 남아 우리를 위로해주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가 있었다. 또 이른 새벽의 산빛이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

으니 가는데 의미를 두고자 했다.

 

 

 

 

이 큰 일을 꼭지와 둘이서만 감당하기엔 너무 억울하여 처형부부에게 뽐프질을

했다. 국망봉에 가서 철쭉도 보고 일출도 보고... 우짜고 저짜고 했더니 혼쾌히 승락

을 한다. 비로봉은 몇 번 갔지만 국망봉은 처음이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국망봉은 일출도 짠! 하니 멋지고 철쭉도 이번주가 절정이라고 협박조로

공갈을 쳤는데 가서 철쭉이 없다면 아마 맞아죽을 각오는 해야하지 싶다.

 

밤 12시 출발!!

 

 

초암사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2시, 해뜨는 시간이 5시 8분이라고 하니 꼭지의

걸음이 아무리 느려도 국망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야간산행이 아닌가.

 

 

 

 

 

들머리에 올라서니 계류의 물소리가 더욱 청아하게 울린다. 예전에 소백에 들었던

그리움이 밀려온다. 특히나 산초보 시절에 사계절 많이도 찾었던 소백산이 아니던가.

보름달같은 산목련은 하얀등으로 밤하늘을 밝히고, 이름모를 꽃들이 은백의 별꽃으로

 내려앉은 산길에는 어둠마져 물러나 앉았다. 마치 하늘에 매달렸던 별들이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진 듯 빛난다.

 

자매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정담속에 새벽이 영글어 가는 시간,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귀담으며 미소머금은 돼지바위를 올라선다. 곧이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급경사가 진을 뺀다. 고통없이 어찌 새벽하늘을 맞을 수 있으랴.

 

지능선에 올라서니 아직은 조금 이른시간, 상월봉 너머로 붉디 붉은 하늘이 열린다.

연화봉에서 몇 번 일출의 멋진 장관을 접하긴 했지만 오늘은 또 다른 풍경이다.

 

태초에 세상이 열렸을 때도 저런 빛이었을까...

 

 

 

 

 

초암사 - 국망봉 - 비로봉 - 달밭골 - 초암사

 

2011. 6. 12. (02:10 ~ 11:30)

 

꼭지와 처형부부 넷이서

 

 

 

 

해는 구름속에 숨어 버렸지만 새벽이 빚어내는 고운 산빛만은 감추지 못했다.

 

 

 

산정의 새벽은 아무리 여러번 보아도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를 흥분시키고 유혹한다.

 

 

 

처형부부 인증 샷을 날리고

 

 

 

꼬부라진 기암(상월암)이 신비로운 상월봉으로 걸음을 옳기니

잊혀졌던 옛 추억이 되살아나 잠시 생각에 잠긴다.

 

 

 

<2006. 2. 26. 꼭지와 함께 걸었던 상월봉>

 

 

 

 

 

 

 

 

 

상월봉에서 구인사로 이어지는 1247봉, 민봉, 신선봉이 차례로 고개를 내민다.

 

2004년 초가을에는 영원한 동지 해병대부부와 이 길을 함께 했다. 죽령에서 출발하여

신선봉에 올라 해병대는 보이지 않는 신선과 바둑도 한 판 두고 구인사까지 걸었었다.

흰돌과 검은돌이 하나씩 뿐이라 비록 무승부로 끝났지만 그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2004. 9. 5. 신선봉에서 보이지 않는 신선과 해병대의 바둑 한 판>

 

 

 

 

 

꼭지와 함께 걸었던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

 

 

 

 

 

 

 

국망봉을 내려서면 소백의 부드러운 능선들이 시원한 바람처럼 가슴에 안긴다.

비로봉과 연화봉, 그 너머로는 도솔봉 능선이 파나라마처럼 펼쳐진다. 도솔천의

전설이 아니더라도 그냥 편안하고 아늑해 보이는 저 길은 산거북이님과 동행

했었다.

 

 

 

<개불알꽃>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나 싶었는데 오늘 또 개불알꽃을 만났다. 행운이다. 물론,

이렇게 예쁜 개불알은 본 적이 없다. 요강같이 생겼다 하여 '요강꽃'이라 불리고 복주머니

같이 생겼다 하여 '복주머니난'이라고도 하고, 꽃은 예쁘지만 지린내가 난다하여 '까마귀

오줌통' 등 이름도 많다. 개불알꽃은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된 보호식물이다.

 

 

 

비로봉을 향한 붉은병꽃과 연분홍의 철쭉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제 상월봉과 작별할 시간...

 

 

 

아쉽지만 국망봉을 내려선다.

 

 

 

 

 

 

 

 

 

 

 

인간세계를 꾸짖는 듯 달밭골을 내려다보는 미나리아재비가 아찔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사람도 죽어나가는 혹한의 칼바람을 견디고 소백의 초원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식물에게도 거룩하고 숭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종족 번식의 본능일지라도

생명은 귀하고 아름답다. 아주 작고 여린 풀포기도 그러한데 하물여 인간의 생명

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연이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예인과 정치인, 기업인,

서민들의 자살소식은 부끄럽고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울내내 흰눈으로 덮혔던 그 언덕이 꽃이 피고 생기가 넘치는 푸른 초원으로 변했다.

 

 

 

 

 

 

 

국망봉을 향해 수줍게 핀 할미꽃, 아! 시간은 멈추고 바람만 일렁이는가.

 

 

 

 

 

하염없이 달밭골을 내려다보는 붉은병꽃

국망봉부터 우리와 함께한 그의 몸짓에는 붉디붉은 웃음과 그리움이 잔잔하다.

 

 

 

 

 

 

 

지리산 칠선계곡 같은 원시적인 비경을 간직한 달밭골

 

 

 

쇠자우골은 달밭골의 또 다른 계곡으로 크고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바위에 소발자국이 찍혀있다하여 '쇠자우골'로 불린다. 이곳에서 비로사로

 갈 수도 있고, 초암사로도 갈 수 있다. 3km거리로 얼마전에는 금지구역이었는데 현재

<문화생태탐방로 달밭길>로 개방된 상태다.

 

 

 

 

 

달밭길은 옛날 화랑도들이 유오산수 하던 길이었고, 한말에는 의병들이 다니던

길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역사의 애환이 서린 흔적이 아니더라도 이 길은 지금까지 소백이

꼭꼭 숨겨두었던 오지의 산길인 만큼 가장 맑고 깨끗한 달밭의 자존심이리라.

 

 

 

 

ㅡ END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