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우리말과 옛글

윤사월(閏四月)

산사랑방 2012. 5. 3. 22:07

 

 

 

 

 

 

윤사월(閏四月)

                                                박목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윤삼월이나 윤사월이나 시간을 잡아댕기며 늘리는 건 똑같다.

아직은 때가 좀 이르지만 자동차위에 노한 꽃가루가 앉는 것을

보면 벌써 송화가루가 날리는 것은 분명하다.

 

유년시절 이맘 때쯤 되었나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송화를

따먹고 나면 입술은 금방 노래진다. 그 노란 입으로 이번에는 물오른

소나무 껍질을 낫으로 벗겨내고 달작지근한 송진을 마치 하모니카

 불듯이 지그재그로 긁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옛날 보릿고개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 아련한 추억은 송화가 익을

 때면 가슴 한켠을 비집고 나온다. 박목월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보다.

햇보리밥이라도 빨리 먹어야 하는데 그놈의 윤달이 끼어서 해가

길어졌으니 '저 청보리는 언제 익을꼬...'

 

거기다 눈먼처녀까지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무엇을?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고 있었을까...

보릿고개 그 아픈 시절을 생각하면 아닐 것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시는 읽을 수록 눈 먼 처녀의 궁금증이 더해진다.

 

 

 

 

 

2012. 5. 3.  함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