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설악산

돌밭에 핀 영혼들이여... <귀때기청 털진달래>

산사랑방 2017. 5. 23. 21:18



2017년 5월 21일 <설악산>


한계령-귀때기청봉-한계령 / 약 8km, 6시간30분


산사랑방






산꾼에게 있어서 귀때기청 털진달래는 꿈의 산행이다. 그만큼 온전한 풍경을 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해에는 진달래가 냉해를 입어 꽃도 피워보지 못한 때도 있었고, 제작년에는 꽃이 대부분 시들고

떨어진 뒤여서 아쉬움이 많았다.


5월 20일

설악산 산불경방이 해제된 첫 주말, 드디어 출발인가?

올해는 활짝 핀 털진달래를 볼 수 있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심야버스에 몸을 싣는다.









양양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한계령에 도착하니 02:30 이다.

한밤중이건만 포장마차의 불빛이 휴게소를 북적이게 만든다.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랜다.

그렇게 맛없는 우동은 처음이지만 먹은 만큼 간다니까 억지로라도 먹어둔다.





03:00 산행허가가 떨어지고 야간산행이 시작된다.





대청봉 갈림길까지 1시간 30여분 정말 힘겹게 올랐다.

'두번다시 오나봐라.'욕이 나올정도로 진이 빠진다. '아자~! 기운내야지.' 기울어가는 설악의 달빛이 응원을 보낸다.





귀때기청 너덜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낯선 이방인에게 이렇게 고운 눈빛으로 화답하다니... 예년에 비해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털진달래...

꽃잎에 상처가 없고 대부분 만개하여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다.


산행 타이밍 또한 기가 막힌다.





공룡능선 너머로 서서히 일출이 시작된다.


위 사진은 DSLR에 비해 색감도 부드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바늘구멍만한 작은 렌즈가  이런 효과를 내다니 기술의 비약이 두려울 정도다. <Photo by Galaxy>





멀리 점봉산이 고개를 내민다.





멀리 붉게 타오르는 하늘아래 대청과 중청의 위용이 대단하다. 역시 설악의 주봉답다.<Photo by Galaxy>





우측으로 첨봉처럼 솟아오른 귀때기청봉과 좌측은 대승령과 안산 방향





멀리 서북 능선의 파수꾼인 가리봉 능선은 맨날 어느 놈이 오고가나 지켜본다.

난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주걱봉이 주걱들고 쫓아올까 겁난다. 조심조심...





멀리 보이는 산능선은 황철봉에서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다.

꼭지와 개고생을 하며 넘었던 그 백두대간...

그뿐인가. 공룡능선에서는 산거북이님까지 오라해서 생고생 시켰었지. 


이곳 귀때기청도 공룡능선 버금가는 곳이다. 여기서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은 백두대간에서

비켜나 있긴 하지만

공룡능선과 더불어 설악의 대표적인 종주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렇게 너덜거리는 돌밭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는 '털진달래'

그녀는 누구의 영혼으로 피어났을까.


이 강인한 생명력 앞에 우리 인간은 또한 얼마나 나약한가.









이런 돌너덜을 1km이상 걸어 올랐다. 점점 가까워지는 정상부...

저곳이 정상인가 해서 부지런히 올라서면 정상은 '메롱'하며 건너편에 우뚝 솟아있다. 힘들게 올랐는데 그 허탈감이란...





정상은 아직 400m를 더 올라가야 한다.





귀때기청 사면의 돌밭에 핀 영혼들...


설악산에서도 털진달래 군락지를 만나기는 쉽지않다.

여기 귀때기청봉과 이보다 더 큰 돌너덜이 있는 황철봉 사면에 조금 있을 뿐이다.





이러한 풍경은 바라만보아도 가슴이 떨린다. 돌 뿐인 이곳은 바람막이도 없다. 겨울이면 영하 20도를 훌쩍 넘겨

매일매일 온몸으로 서리꽃을 피운다. 그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고 이렇게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털진달래...


이 영혼앞에 서면 어찌 가슴이 떨리지 않을까. 그러니 밤새워 달려오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지나던 산객도 이 화려한 영혼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늘상 홀로 외로웠던 구상나무였지만 오늘은 꽃밭에 둘러쌓여 싱글벙글이네.





드디어 해발 1578m인 귀때기청봉 정상에 올랐다. 멀리 대승령을 지나 안산으로 길게 뻗어내린

서북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풍력발전기 하나가 이정목에 묶여서 돌다마다를 반복한다.





대승령 방향으로 정상을 내려서면 이러한 꽃밭을 만난다. 능선 좌우가 털진달래 천국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서 바라본 대승령방향, 예전에는 이 능선을 따라 대승령~장수대로 하산하곤 했는데 오늘은 마음뿐이다.

남은거리 8.7km를 걸을 자신도 없고 한계령까지 거리는 3.9km라고 하니 한계령으로 원점회귀하기로 한다. 이길은 야간에

올랐기에 못 본 풍경을 제대로 감상도 할겸.





정말 꽃과 돌 뿐인 귀때기청봉 사면이다.


왜 이름이 하필이면 '귀때기청봉'일까? 소문은 설악산에서 자기가 제일 높다고 까불다가 대청, 중청, 소청

삼형제에게 귀때기를 얻어맞아서 이꼴이 됐다는... 그래도 털진달래가 이렇게 위로해주니 얼마나 다행이냐.


어쨋든 믿거나 말거나~,,,









'설악'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흥만으로 가슴이 떨릴 수 있다면 그는 아직 청춘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밤중에 여까지 달려오는 걸 보면 나도 아직은 반쯤 미친 청춘인가 보다. 수도~가야 종주할 때가 진짜 미친 청춘이었지...





멀리 공룡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바람을 막아준다. 그래서 저곳은 구름이 산을 넘지 못해 늘 운해가 장관을 이룬다.





'설악'은 한때 설산, 설봉산, 설화산으로 불렸다. 중추에 눈이 내리면 여름까지 녹지않아 붙여진 이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 저 아래 돌무더기를 내려서면 끝이난다.





너덜이 끝나자 등로 주변으로 철쭉이 활짝피어 객을 반긴다.




  

한계령 하산길... 역시 좋으네. 진한 연록의 봄빛이 온몸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많은 계단과 급경사로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전망처에서 뒤돌아본 귀때기청봉, 여기서 지나온 길을 보니 까마득하다.

어떻게 저길 오르고 벌써 여기까지 내려왔을까. 한걸음 한걸음이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긴다.





한계령 가기 전 기암과 철쭉





굽이굽이 이어지는 한계령 고갯길, 저 아래 오늘의 산행종점인 '한계령휴게소'가 보인다.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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