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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

산사랑방 2011. 11. 28. 16:46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마라 는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말이 여러 형태로 파생되어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개구리 옆 발질하는 소리”, “지렁이 하품하는 소리”, “개 풀뜯어 먹는 소리” 등의 표현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이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씨나락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씨나락은 한해 농사가 끝나면 수확한 벼 중에서 잘 익고 튼실한 것 중에서 적당량을 골라서 내년의 종자로 쓰기 위해 남겨놓은 볍씨를 말합니다.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민간에 전해오는 민간전승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국어학자인 김교수가 어느날 방언조사를 하기 위해 경상도 지방을 답사고 있었다. 그러다마 어느 마을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날도 김교수는 습관처럼 뭐 좀 건질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혼자서 뚜벅뚜벅 시골 길을 걷고 있었는데, 때는 4월초라 들판에는 못자리판에 모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 때 별안간 한 노인이 괭이를 둘러메고 못자리판을 둘러보다가 넋두리처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원, 쯧쯧! 또 귀신이 씨나락을 반이나 까먹었구먼!"

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김교수는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귀신, 씨나락….

오랫동안 그 말의 어원을 알아보기 위하여 애를 써 왔는데, 드디어 오늘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급히 그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저, 영감님! 방금 영감님께서 귀신이 씨나락을 반이나 까먹었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 인지요?"

그러자 그 노인이 김교수를 흘끔 쳐다보더니 내뱉듯 말했다.

"아, 이걸 보고도 묻소? 못자리판에 뿌린 볍씨가 싹이 반도 안 텄지 않소. 이게 바로 귀 신이 씨나락을 까먹은 게 아니고 뭐겠소?"

김교수는 더욱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면 저,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아, 사실이다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일 충실한 놈으로만 골라 뿌린 볍씨가 왜 싹이 안 텄겠소?"

김교수는 옳다구나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저, 영감님. 어쩌면 이 말의 뜻도 알고 계실 듯한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 라' 라는 말 말입니다. 이건 어디서 유래된 말일까요?"

"허허! 그 말……."

그러더니 노인은 김교수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그런데 대체 당신은 뉘시오?"

"아, 네. 저는……."

김교수는 허리를 굽혀 정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는 노인에게 담배 한대를 권했다.

"모든 말에는 다 어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든가, '새 뒤비지 날아가는 소리', '낙동강 오리알'…뭐 이런 말에도 다 그 말이 생기게 된 배경 이나 까닭이 있다는 것이죠. 저는 학자로서 그런 말이 생성되게 된 어원을 밝혀보고자 하 는 것입니다."

"허허, 그렇다면 당신 오늘 제대로 찾아 왔소. 그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고 하니……."

노인은 담배를 한 입 빨아서, 후-하고 연기를 허공으로 내뱉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지방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얘기지."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예로부터 농사짓는 사람에게 있어서 씨나락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종자씨가 아니라 내일의 희망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나락을 삶아 먹지는 않는다.

씨나락을 없앤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수확을 하면 가장 충실한 놈으로 먼저 씨나락을 담아 놓고, 남는 것을 양식으로 쓴다.

그리고 겨울을 지낸 후 새봄에 그 씨나락을 못자리판에 뿌리는데, 그렇게 충실한 씨앗으로 뿌렸건만 발아가 잘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귀신이 씨나락을 까 먹었기 때문' 이라고 하고, 귀신이 까먹은 씨나락은 보기에는 충실하게 보여도 못자리판에 뿌렸을 때 싹이 나지 않는단다.

"이놈의 귀신, 또 씨나락을 까먹기만 해 봐라."

지난해에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 바람에 모의 발아가 반도 안 되어서 농사를 망친 박노인은, 신경이 몹시 곤두서 있었다. 어떻게든지 이번에는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지 못하게 하여, 농사를 궂히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씨나락은 지금 헛방의 독에 담겨져 있다. 밤잠이 별로 없는 박노인은 온 밤 내내 헛방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뽀시락'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기 무슨 소리고? 틀림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재?"

"참 내, 아이그마, 고양이 소리 아이요. 신경쓰지 말고 주무시소 고마."

선잠을 깬 할멈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짜증스럽게 말하자, 박영감이 화를 버럭 내었다.

"멍청한 할망구 같으니라구. 그래 이 판국에 잘도 잠이 오겠다."

할멈에게 타박을 준 박영감은, 헛방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룶히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의 귀신아! 내가 네 놈의 짓인 줄을 모를 줄 아느냐? 내 다 알고 있으니 썩 물러가 거라."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 박영감은 이제 바람이 문짝을 조금만 건드려도 큰기침을 하며 달려나가, 온 집안을 돌며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이놈의 귀신, 어디로 들어오려고 문고리를 잡고 흔드노? 썩 물러가라, 썩! 썩! 이놈의 씨나락 귀신아!"

야밤중에 갑자기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온 집안 식구들이 깜짝깜짝 놀라 깨어 가지고는 모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른이 엄동설한

한밤중에 바깥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데 어떻게 아랫사람이 뜨뜻한 구들목에 그대로 누워있을 것인가.

온 식구가 다 나가서 박영감의 노기가 가라앉을 때 까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들어오게 되는데, 천리만리로 달아난 잠을 내일을 위해 억지로 청해서 설핏 잠이 들려고 하면 또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만식아! 봉길아! 어서 나와 보그레이. 또 이놈의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으러 왔는갑다."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어떤 날은 하루 저녁에도 두 세번 씩 오밤중에 벌떡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가게 되자, 온 집안 식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일로 완전히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다.

"영감, 잠 좀 잡시더. 꼭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다 카는 징거도 없는기고, 또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을라꼬 마음 먹으모 그런다꼬 못 까묵겠소? 제발 아이들 그만 들볶으소. 그 아 이들이 내일 일 나갈 아이들 아이요?"

보다 못한 할멈이 영감을 붙들고 사정을 해 보지만, 박영감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이 할망구야, 우찌 눈을 뻔히 뜨고 귀신이 씨나락을 뽀시락뽀시락 다 까묵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고? 귀신이 안 까묵으모 누가 까 묵었을끼고?"

 

그 해 겨울 내내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거의 매일 밤잠을 설치다 보니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게 되어 도무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아무리 효자로 소문 난 만식이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만식이는 기어이 아버지에게 대어들었다.

"아부지, 제발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하지 마이소. 인자 고마 미치겠십니더."

노인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김교수를 건네다 보았다.

"어떻소? 그럴 듯 하오?"

흥분된 김교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꾸벅 절을 했다.

"영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허허! 뭘, 그 정도 가지고. 이런 걸 보고 진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하는거요."

그 뒤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을 가리켜서 귀신 씨나락 까먹은 소리 하지 말라는 표현이 생겼다고 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입니다.

 

출처 : 손종흠의 홈페이지
글쓴이 : 죽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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