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우리말과 옛글

가산에서 음미하는 송순의 俛仰亭歌(면앙정가)

산사랑방 2011. 8. 31. 07:51

 

 

 宋純의 俛仰亭歌

 

 

송순의 아호이기도 한 면앙정의 뜻은 맹자의 군자삼락 가운데 第二樂인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 이락야 : 우러러 보아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서 남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의 俯仰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면앙정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듯 하다.

 

송순의 면앙정가가 창작된 이 시기는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 두 사화를 계기로

낙향한 많은 사림들이 향리에 은거할 때다. 1530년 영남의 회재 이언적은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에게 몰려 경주 자옥산 자락인 옥산에 독락당을 짓고 은거하게 되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533년 송순 또한 김안로에 밀려 전라도 담양의 향리에 귀향하게 된다.

 

송순은 이곳에서 면앙정을 짓고 부근 산수의 아름다움과 전원을 벗삼아 즐기며 한거

하는 생활로,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면앙정은 정극인의 상춘곡에

이어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가사작품으로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하다.

 

 

2011. 8. 28. 팔공산 속의 '가산(902m)'

 

면앙정은 호남시단의 요람으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임형수, 정철, 임제 등

당대에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풍경은 대구 팔공산 속의 '가산'

이지만 그 경치는 면앙정이 내려다보이는 제월봉에 버금간다 하겠으니 제월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부럽지 않음이다.

 

 

 

 

 

俛仰亭歌(면앙정가)

 

 

无等山(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떼쳐 와 霽月峰(제월봉)이 되어거날

無邊大野(무변대야)의 므삼 짐쟉 하노라

 

(무등산 한줄기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떼어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는 넓은 들에 무슨 생각 하느라고)

 

 

일곱 구배 함머 움쳐 므득므득 버럿난 닷

가온대 구배난 굼긔 든 늘근 뇽이

선잠을 갓 깨야 머리날 안쳐시니

 

(일곱 굽이가 한데 움치리어(오그라들) 무더기 무더기 벌여 놓은 듯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며)

 

 

 

 

너라바회 우해 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를 안쳐시니

구름 탄 쳥학이 千里(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난 닷

玉泉山(옥천산) 龍泉山(용천산) 나린 물이

亭子(정자) 압 너븐 들해 兀兀(올올)히 펴진 드시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옥천산, 용천산에서 내리는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끊임없이 퍼져 있으니)

 

 

넙꺼든 기노라 프료거든 희지 마니

雙龍(쌍용)이 뒤트난 닷 긴 깁을 채폇난 닷

어드러로 가노라 므삼 일 배얏바

닷난 닷 따로난 닷 밤 낫즈로 흐르난 닷

 

(넓거든 길지나 푸르거든 희지나 멀거나

쌍용이 몸을 뒤트는 듯 긴 비단을 가득하게 펼쳐놓은 듯

어디를 가려고 무슨 일이 바빠서

달려가는 듯, 따라가는 듯 밤 낮으로 흐르는 듯하다)

 

 

 

 

므조친 沙汀(사정)은 눈갓치 펴졋거든

어즈러은 기럭기난 므스거슬 어르노라

안즈락 나리락 모드락 흣트락

蘆花(노화)을 사이 두고 우러곰 좃니난뇨

 

(물 따라 벌려 있는 물가의 모래밭은 눈같이 하얗게 펴졌는데

어지러운 거러기는 무엇을 통정하려고

앉았다가 내렸다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울면서 서로 따라 다니는고?)

 

 

 

[2011. 4. 24. 가산의 괭이눈]

 

 

너븐 길 밧기요 기 히날 아래 두르고

꼬잔거슨 모힌가 甁風(병풍)인가 그림가 아닌가

노픈 닷 나즌 닷 긋난 닷 닛난 닷

숨거니 뵈거니 가거니 머믈거니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잇는 듯,

숨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며)

 

 

 

 

어즈러온 가온대 일홈난 양 하야

하날도 젓치 아여 웃독이 셧난 거시 秋月山(추월산) 머리 짓고

龍龜山(용귀산) 夢仙山(몽선산) 佛臺山(불대산) 漁登山(어등산)

涌珍山(용진산) 錦城山(금성산)이 虛空(허공)의 버러거든

遠近(원근) 蒼崖(창애)의 머믄 짓도 하도 할샤

 

(어지러운 가운데 이름난척 하며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 선 것이 추월산 머리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멀리 가까이 푸른 절벽들이 머물러 있는 모습이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 브흰 煙霞(연하) 프로니난 山風(산풍)이라

千巖萬壑(천암만학)을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명셩 들명셩 일해도 구난지고

오르거니 나리거니 長空(장공)의 떠나거니 廣野(광야)로 거너거니

푸르락 불그락 여토락 지트락

斜陽(사양) 과 서거지어 細雨(세우)조차 쁘리난다.

 

(흰 구름과 뿌연 안개와 놀, 푸른 것은 산 아지랭이다.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며 들며 교태를 부리는구나

오르고 내리기도 하며, 넓고 먼 하늘에 떠나기도 하고, 넓은 들판으로 건너가기도 하여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석양(비끼는 볕)에 지는 해와 섞이어 이슬비마저 뿌리는구나)

 

 

 

 

藍輿(남여)랄 배야 타고 솔 아래 구븐 길노 오며 가며 하난 적의

綠楊(녹양)의 우난 黃鸚(황앵) 嬌態(교태)겨워 하난괴야

나모 새 자자지어 樹陰(수음)이 얼린 적의

百尺(백척) 欄干(난간)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水面(수면) 凉風(양풍)이야 이 긋칠 줄 모르난다.

 

(뚜껑 없는 가마를 재촉해 타고 소나무 아래 굽은 길로 오고갈 적에

푸른 들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흥에 겨워 교태를 부리는구나.

나무 사이가樹竹 우거져 녹음이 엉겨 짙어진 때에

긴 난간에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구나)

: 바구니 남, 수레 여

 

 

 

[2010. 4. 11. 가산의 복수초]

 

 

즌 서리 빠진 후의 산 빗치 금슈로다

黃雲(황운)은 또 엇지 萬頃(만경)의 펴거지요?

漁笛(어적)도 흥을 계워 달랄 따롸 브리난다.

 

(된서리 걷힌 후에 산빛이 수놓은 비단 물결 같구나

누렇게 익은 곡식은 또 어찌 넓은 들에 퍼져 있는고?

고기잡이를 하며 부는 피리도 흥을 이기지 못하여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 황운(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 頃(밭 넓이 단위 경)

 

 

 

 

草木(초목) 다 진 후의 江山(강산)이 매몰커날

造物(조물)이 헌사하야 氷雪(빙설)노 꾸며 내니

瓊宮(경궁) 瑤臺(요대)와 玉海(옥해) 銀山(은산)이 眼底(안저)의 버러셰라.

乾坤(건곤)도 가암열샤 간 대마다 경이로다.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과 산이 묻혀 있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얼음과 눈으로 자연을 꾸며 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 같은 눈에 덮힌 아름다운 대자연이 눈 아래 펼쳐 있구나

자연도 富饒(부요)하구나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 옥구슬로 장식한 궁궐과 누대, 옥이 깔린 바다와 은으로 덮힌 산(눈 덮힌 겨울풍광)

 

 

 

[2010. 2. 12. 눈 내린 날의 가산]

 

 

人間(인간)을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업다

니것도 보려하고 져것도 드르려코

바람도 혀려하고 달도 마즈려코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낙고

柴扉(시비)란 뉘 다드며 딘 곳츠란 뉘 쓸려료?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마시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을 것이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 것인가?)

 

 

 

 

아참이 낫브거니 나조해라 슬흘소냐?

오날리 不足(부족)거니 내일리라 有餘(유여)하랴

이 뫼해 안자 보고 져 뫼해 거러 보니

煩勞(번노)한 마암의 바릴 일리 아조 업다.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하리야

다만 한 靑藜杖(청려장)이 다 뫼되여 가노매라.

 

(-자연을 완상하느라고- 아침나절 시간이 부족한데 저녁이라고 해서 넉넉하랴?

오늘도 완상할 시간이 부족한데 내일이라고 넉넉하랴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거로운 마음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은 버릴 것이 아주 없네

쉴 사이가 없는데 길이나마 전할 틈이 있으랴

다만, 하나의 명아주 지팡이 무디어 못쓰게 되어 가는구나)

 

 

 

 

 

술리 닉어거니 벗지라 업슬소냐

블내며 타이며 혀이며 이아며

오가짓 소래로 醉興(취흥)을 배야거니

근심이라 이시며 시람이라 브터시라.

 

(술이 익었거니 벗이 없을 것인가

노래를 부르게 하며, 악기를 타게 하며, 끌어당기게 하며, 흔들며

온갖 아름다운 소리로 취흥을 북돋우거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었으랴)

 

 

 

 

누으락 안즈락 구부락 져즈락

을프락 파람하락 노혜로 노거니

天地(천지)도 넙고 넙고 日月(일월) 한가하다

羲皇(희황)을 모을너니 니적이야 긔로괴야!

 

(누웠다가 앉았다가 구부렸다 젖혔다가

시를 읊었다가 휘파람을 불었다가 하며 마음놓고 노니

천지도 넓고 넓으며 세월도 한가하다

복희씨의 태평성대를 모르고 지내더니 이 때야말로 그것이로구나!)

:복희伏羲(중국 고대의 황제)

 

 

 

 

神仙(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

江山風月(강산풍월) 거날리고 내 百年(백년)을 다 누리며

岳陽樓上(악양루상)의 李太白(이태백)이 사라 오다

浩蕩(호탕) 情懷(정회)야 이예셔 더할소냐

이 몸이 이렁굼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신선이 어떻던가 이 몸이야말로 그것이로구나!

강산풍월 거느리고 내 평생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에 이백이 살아온다 한들

넓고 끝없는 정다운 회포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다 임금님의 은혜로다)

 

: 악양루상의 이태백의 시

岳陽樓上聞吹笛   能使春心滿洞庭

(악양루 위에서 피리부는 소리를 듣자니

봄날 시름이 동정호를 가득 차게 하네)

 

 

 

ㅡ  END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