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우리말과 옛글

정극인의 '賞春曲(상춘곡)'

산사랑방 2011. 7. 4. 22:33

 

조선시대 사대부가사의 첫 작품이기도 한 '賞春曲'은

강호자연에서의 한가로운 정취와 安貧樂道를 내용으로 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송죽 울울리, 벽계수를 앞에 둔 수간 모옥이던가'

 

 

 

 

 

 

 

 

 

賞春曲

                                                                             

                                                                                           - 정극인(丁克仁, 1401-1481, 불우헌不憂軒) -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생애生涯 엇더 한고

녯 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가

천지간天地間 남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이셔 지락至樂을 모를 것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에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여셔라

 

엊그제 겨울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인들 다를소냐

시비柴扉에 거러 보고 정자亭子에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리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들아 산수山水구경 가쟈스라

답청踏靑으란 오늘하고 욕기浴沂란 내일來日 하새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하새

 

갓괴어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걱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더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해더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야 시냇가에 호자 안자

명사明沙 조흔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저 뫼이 긘 거이고.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杜鵑花를 부치들고

봉두峰頭에 급피올라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러 잇내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폈는 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有餘할샤.

 

공명功名도 날 꺼우고 부귀富貴도 날 꺼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있사올고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흩은 혜음 아니하네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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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모옥 : 그저 몇 칸 되는 초가집

세우중 : 가랑비속에

 녹양방초 : 푸른버들 아름다운 풀

조화신공 : 조물주의 신비로운 솜씨

 물물마다 :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헌사롭다 : 야단스럽다.

시비 : 사립문

 소요음영 : 천천히 거닐며 나직히 읊조림

산일 : 산중에서 보내는 나날

 답청 : 봄에 파란 풀을 밝고 노는 것

 욕기 : 기수강가에서 목욕함(공자의 제자에서 유래)

채산 : 산나물을 캠

나조해 : 저녁에

조수 : 낚시하는 것

갈건 : 칡으로 만든 두건

 밧타노코 : 걸러놓고

 준중 : 술동이 안

얼운 : 어른

 미음완보 : 나직히 읊조리며 천천히 걸음

명사 : 곱고 깨끗한 모래

 조훈 : 깨끗한

 뫼 : 들

 두견화 : 진달래꽃

 연하일휘 : 안개와 노을과 빛나는 햇살

금수 : 수놓은 비단

 유여 : 넘치는구나

 단표누항 : 선비의 청빈한 삶 (한소쿠리의 밥과

바가지의 물을 먹으며 누추한 골목에 사는 것으로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의 준말)

흩은 혜음 : 헛된 생각

백년행락 : 평생 즐겁게 지냄

 

 

ㅡ END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