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추억의 산행기

'빗속의 봉화산' 추억의 백두대간4 (복성이재-중재)

산사랑방 2015. 12. 18. 15:53

                                      

 

빗속의 봉화산... 백두대간 4 (복성이재-중재)

                                                                             

2007. 9.  23. 흐리고 비 

                                                                               

 

 

총산행시간 : 6시간 15분 (13.59km)

 

 



 

산행개요


오늘 진행하는 복성이재에서 중재구간은

반나절 코스의 짧은 구간으로 별 특징은 없으나

지리산에 가려 그 이름조차도 생소하게 들렸던 남원의 봉화산이 그 중심에 있다.


봉화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과거 봉화가 피어올랐던 산으로 그만큼 조망이 탁월한 산이다.


또한 봉화산에 올라서면 백두대간 동쪽능선을 타고 약 500m구간에 걸쳐 철쭉군락이

등산로와 등산로 좌우 산비탈을 비집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5월 중순께

흐드러지게 피어난 봉화산 철쭉은 지리산이나 바래봉 철쭉도 시샘을 낼만큼 절경을 연출한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지는데

북으로는 전북의 오지, 일명 "무진장" 장수군의 깊은 산골 지지계곡과 그 골짜기 좌우로

장수의 진산 장안산 (해발 1,237m)과 무령고개, 그리고 경남 함양과의 경계인 백두대간상의

백운산(해발 1,279m) 의 웅장한 산줄기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뒤돌아 남쪽을 바라보면 아영면 고원지대 들판너머로

천왕봉에서 반야봉과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의 마루금이 장쾌하고 지나온 대간길이

선명하여 추억을 일깨워주는 매력이 숨어있는 산이다.

봉화산 정상의 조망도 조망이거니와 가을철에 이곳을 찾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수만평 드리워진 은빛물결의 억새밭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 봉화산을 지나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거의 전 구간이 싸리나무와 철쭉나무, 억새가 등로를 감싸고 있어서 진행이 힘들 뿐 아니라

물에 흠벅 젖은 억새들의 물폭탄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땅만 보고 엉금엉금...


전혀 조망이 되지않은, 그래서 아쉬움이 많은 대간길이 되고 말았다.

봉화산 구간 만큼은 물 폭탄(?)이 없는 날씨 좋은 날 느긋하게 조망을 즐기며 지나가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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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아쉬움이 많았던 봉화산 구간


대간은 적어도 2주에 한번은 가야한다.

그래야지 그 리듬을 잃지 않는데 3주가 지나가니 머릿속이 텅빈 듯 허전하다.

이러다간 대간을 중도에 하차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추석연휴지만 오전시간을 쪼개어

대간에 들기로 마음을 정하고, 일이 있어 오후2시까지는 대구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3시쯤 출발하기로 한다.


꼭지가 일어나지 않으면 혼자라도 다녀올 생각으로 산행준비를 하고 있으니 꼭지도 따라나서겠다며 일어난다.

김밥집에 들러서 아침에 먹을 김밥을 사고 88고속도로를 달리니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거창을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는 한 두 차례 비온 후 오후에는 개인다고 했으니 조금 내리다가 그치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상예보를 믿지 않기로 했다. 하긴, 어느 대간꾼이 그랬다. 기상청은 '구라청'이라고..ㅠㅠ


05:15 복성이재

지리산 I.C에 내려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린다.

대간 첫 구간부터 호우주의보의 연속이더니 만복대구간만 제외하고는 계속 빗속의 대간이다.

비하고는 별로 친하고는 싶지 않지만 세상사 다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거늘

고남산 구간에서는 그래도 참았는데 오늘 봉화산구간까지 빗속이라니...

오늘도 조망은 다 틀렸구나.

 

하지만 중재까지 짧은 거리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싶어 꼭지의 얼굴을 보니

비가 오건 말건 아랑곳없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지난번에는 대간이 사람을 잡더니 이제는 “대간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공터 한쪽에 주차를 하고 우의를 입고 복성이재 이정목옆으로 산문에 들어서는데 초입부터

반갑다며 비에 젖은 잡목과 억새풀이 회초리가 되어 온몸을 때리며 달려든다.

내 좋아서 맞는 일, 어데 하소연할  때도 없는지라 그저 "용서하여 주십사~~" 하고 고개를 숙이며 진행한다.

랜턴을 켰지만 10m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둠과 운무가 가득하여 시계는 제로상태

하지만 길은 뚜렷하여 야간의 우중산행임에도 알바의 염려는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육십령에 가야만 ‘대간일병’진급을 시켜준다고 하니 (누가 시켜주는지는 모르지만)

얼른 가긴 가야 할텐데 오늘은 녹녹찮은 대간길이 쉬운 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2시간여 싸리나무와 잡목, 억새와의 전쟁을 치르며 앞만 보고 진행하다보니

어디가 치재인제 꼬부랑재인지도 모르는 채 봉화산에 도착한다.


 

 

 


 

 

 

 



 07:45 봉화산

“왜 이제 왔느냐.”며 기다렸다는 듯 봉화산의 정상석이 반겨주건만

전혀 조망도 되지 않고 거기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서있기 조차 힘든다.

사진을 한 장 찍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내려서니 이제는 키 큰 억새들이 가로막는다.

우중에 억새숲을 헤쳐 나간다는 것, 그거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가을날, 봉화산에 올라서면 조망이 좋고 억새가 환상적이라고 했지만 빗속의 봉화산은 그야말로 “메롱~!” 이다.

“역시 대간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봉화산 정상부의 억새군락지 



 

 

 

 

 

 
 

15분여 억새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우측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길이 있고

중앙에는 백두대간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현 위치를 보니 중재까지 반 틈도 지나오지 못한 것 같다.

30여분 진행하여 잡목숲을 벗어나니 바위암능지대가 나타났지만 여전히 조망이 되지 않는다.

빗속에서도 등로옆에는 하얀 구절초가 활짝 피어서 반겨주는데

때마침 부스럭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산님 두 분이 다가온다.


반가웠다. 우중에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대간꾼이 틀림없으리라.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니 그분들도 “대간 중이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그분들은 중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대간꾼들이었다.


 

 

 

 


 

 

 

 

09:40 광대치를 지나니 길이 약간 걷기가 수월해진다.

양말이 빗물에 젖어들어 신발안에서 드디어 뽀르륵 올챙이 소리가 난다.

그 음향은 이제는 마음을 비우라는 신호로 들린다.

곧이어 <약초재배단지>라는 경고판이 붙어있는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선답자들이 걸어놓은 많은 표시기가 길을 안내하여 준다.

 

 

 

                                                                                   

▲월경산 갈림 길


 

 

 

 

 

 


                                                                    

▲중치(중재)에서 중기마을 하산길의 임도

 


 

 

 


 

10:17 이름도 요상한(?) ‘월경산’갈림길에 도착하여 오를까 말까

잠시 갈등을 하다가 이 우중에 올라가봐야 아무런 조망도 없을텐데 싶어 바로 우회길로 향한다.

봉화산에서 이곳까지 평균고도가 900m정도를 유지한 채 오름과 내림의 큰 고도차없이 이어지고 있어

진행하는데 별로 힘든구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0여분 가파르고 지루한길을 내려서니 잘 다듬어진 산죽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곧 이어 중치(중재) 이정목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서 하산한다고 했더니 꼭지가 의아한 듯 묻는다.

“왜? 벌써 하산하려고? 난 백운산까지 가는 줄 알았네.”

"헐~~" 무서운 꼭지, 오늘은 여기서 산행 끝~~^^*

중기마을로 내려서는 임도길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고

밤나무의 알밤은 후두둑 떨어지며 알몸으로 반겨주니 우중산행의 아쉬움이 다 녹아내리는 듯하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