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추억의 산행기

계룡산

산사랑방 2009. 11. 17. 17:31

 

일   시 : 2004. 01. 25(일)가끔 흐리다가 눈발

산행지 : 계룡산(동학사-관음봉-삼불봉-남매탑-매표소)

동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06:50 대구출발

08:30 유성I.C

08:50 동학사지구

 

09:10 매표소(관음봉 3.6km)

09:25 동학사

11:00 관음봉(816m)

12:25 삼불봉(관음봉 1.6km)

12:40 남매탑

13:50 샘터

14:10 매표소

총 산행시간 5시간(휴식포함) 10.2km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구정명절을 보내고 나니 추위에 기가 질린다.

겨울산행의 묘미는 당연 설경인데 그 환상적인 설경을 보려면

최소한 1,000m급 이상으로 산의 고도를 높여야지 옳은 상고대와 설경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러면 추위과 찬바람과 싸워야 하는데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명절 끝이라 꼭지의 컨디션도 별로 이고 따스한 동해 쪽으로 갈까 망설이는 중에

산그림자님의 호통(?)이 떨어져 추위와 한 번 친해 보기로 한다.

 

산그림자님도 치악에서 대전 쪽으로 가신다하니

일단 일기예보도 마음에 들고해서 가까운 계룡산을 선택한다.

아침최저 영하9도 낮최고 영하1도 오전한 때 흐리고 1~3㎝가량 눈이 내리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으랴..

비록 고도는 낮지만(845m) 약간의 눈도 내린다 하니 아름다운 설화도 볼 수 있으리라..

더군다나 계룡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아닌가..

 

또한 20년전 꼭지와 처녀 총각으로 연애할 때 다녀온 계룡산, 그 추억을 못잊어

작년 내내 가려고 별렀지만 가보지 못했는데

오늘 산그림자님 덕분에 그 추억풀이도 할 겸 계룡산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계룡산은 흰눈과 운무를 뒤집어 쓴 채

벌써부터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매표소를 지나니 산행시에는 꼭 아이젠을 착용하라는 경고문이 보인다.

계곡 따라 빙판의 시멘트 길을 20여분 걸어 동학사에 도착했으나

건물이 너무나 말끔한 현대식이라 절간같은 고요한 옛 정취를 느낄 수가 없어 그냥 지나쳐 초입에 이른다.

돌산인 만큼 끝없이 펼쳐진 돌길, 눈이 얼어붙어 거기다 빙판까지 가세하니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한다.

 

하얀 설경과 더불어 벽면과 지붕이 온통 하얀 동화속같은 조그마한 은선대피소를 지나

무슨 일이 그렇게 슬프게 했을까..

계룡8경의 하나인 낙수져 하얀 포말을 일구는 물안개는 간곳없고 대신 두 줄기 눈물이 얼어붙은 듯

길게 얼음이 되어버린 은선폭포

 

혹시나 여름날 청아하게 울어대던 소리가 들릴지 몰라 고요의 적막에 귀 기울이며

잠시 전망대에서 꿀차 한잔으로 꼭지의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마치 계곡은 하얀 양떼들이 떼 지어 달려 내려오는 모양으로 오름에 약한 꼭지의 발걸음을 뒤로 잡아당긴다.

20년전, 그 당시 계룡산에서 꼭지와 무수히 많은 돌을 밟고 오른 돌너덜길 생각이 난다.

 

그때 둘이서 외출복 차림으로 구두를 신고 오르다

꼭지가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더 못 가겠다고 버티던 돌무더기 길이 아닌가..

그 많은 돌무더기들 하나 둘 시야에서 밀어내니 저 멀리 황홀한 설경

혹시나 햇빛에 녹아내릴까

주섬주섬 우리 눈 속으로 집어넣으며 꼭지를 재촉해 마지막 오름에 힘을 올린다.

능선 안부

좌로는 계룡산 정상 천황봉 가는 길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계룡산

닭 벼슬보다는 차라리 용의 쭈삣쭈삣한 머리를 더 닮은 천황봉 주 능선

하얀 설화와 상고대로 겨울 화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장쾌하고 강한 이미지의 공룡능선을 연상케 한다.

 

자꾸만 뒤로 끌리는 눈길을 바로잡으며 오른 관음봉 전망대

예전에는 돌무더기와 바위뿐이라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었는데

지금 보니 전망대가 새로 설치되어 있는 관음봉이 아닌가..

설화에 에워싸인 관음봉을 안고 한가롭게 떠도는 구름

이 또한 계룡8경이 아닌가..

 

그때 꼭지와의 사랑도 이 단단한 관음봉의 불쑥 쏫아있는 바위만큼이나 변함이 없건만

무심한 세월만이 20여년 흘러가 버린 것을..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와 미끄럽고 좁은 바위 능선 길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뒤에서 자기 더 보고 가라며 보채는 천황봉방향 조망이 쉬이 발걸음을 놓아주질 않아

몇 컷 더 찍어가려고 하는데 질투 많은 나의 카메라, 이젠 배터리까지 삐릭삐릭 밥달라고 보채는 지라

따뜻한 바지 속에 넣어 녹여가며 살살 달래 찍어간다.

지난번 팔공산에서 찍고 난후 만 충전해야 하는데 설마 하고 그냥 왔더니 낭패 직전이다.

 

자연성릉, 그 긴 능선 길과 겹겹의 철계단을 오르니 삼불봉이 눈앞이다.

세 봉우리가 세 분의 부처님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삼불봉

계룡8경중 제2경인 삼불봉 설경이 둥글게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그 설경에 취하여 우리도 부처님의 해탈 속에서 극락을 맛본다.

극락과 몸은 별개인지 꼭지는 연신 머리가 아프다하여 두통약을 먹이고

삼불봉 고개에 이르니 삼불봉 오르는 지름길로

 

 

 

 

 

 

 

 

 

 

통나무로 출입금지라고 막아놓았는데도 여러 산객들이 그곳으로 다닌다.

벌써 두 번째 보는 광경이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꽤 비살 텐데..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보니 2기의 묘한 탑이 반긴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너무나 다정해 보이는 남매탑

하늘도 그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운지 갑자기 하얀 커튼을 치고 함박눈을 뿌린다.

계룡8경중 마지막 하나가 남매 탑에 반쯤 걸린 달의 모습이라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기도 하다.

 

정겨운 남매탑 옆

일자형 벤치에 꼭지와 마주보며 앉아

흰눈을 흠뻑 맞으며 먹는 도시락

그 꿀맛만큼이나 오늘의 산행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되리라..

 

산그림자님과는 또 남매탑과 금잔디고개에서 스쳐 지나게 됨을 ..

만남의 끈은 이렇게 길고 더디게 오는 걸까..

그 만남을 향한 기대 속에

또 하나의 소망을 보태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2004.01.26   18:30